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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13회] 청와대로 향한 유가족 '분노의 24시간'

입력 2014-05-1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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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탐사플러스 전진배입니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3주가 넘었지만, 아직도 많은 실종자들이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침몰 당시 단원고 학생들이 찍은 휴대전화 동영상이 하나씩 복원되면서 선원들과 구조 당국의 너무나 무책임했던 대처가 낱낱이 드러나 유가족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쓰리고 아픈 상처를 감싸주기는커녕 유족들을 두 번 울리는 일부 언론의 행태를 참지 못하고 아이들의 영정 사진을 들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통곡의 바다가 되어버린 24시간의 행진을 탐사플러스 취재진이 동행햇습니다.

손용석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8일 경기도 안산에 차려진 정부합동분향소.

흐린 날씨에도 세월호 침몰 희생자들을 향한 추모객들의 발길을 이어집니다.

희생자들의 영정이 놓여진 분향소 제단에는, 하얀 국화 더미 사이로 빨간 카네이션이 담긴 바구니가 놓여 있습니다. 어버이날을 맞아, 아직까지 아이를 찾지 못한 단원고 학부모를 위로하기 위해 친구들이 놓고 간 선물입니다.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지 못한 부모들은 피켓을 들고 침묵 시위를 벌입니다. 숙연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갑자기 분향소 한쪽에서 소란이 일어납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 맞아요? 정확히 해요. 정확히 누구냐고. 데리가 나와. (모시고 나갈게요.) 나와.]

유가족들이 항의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분향소를 찾은 KBS 간부들이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 사과하라고 그래. XXX야. KBS 오지 마.]

무엇이 이들을 분노하게 만들었을까.

지난 4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성명서를 통해 김시곤 보도국장이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서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건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유가족들은 발언 당사자인 김시곤 국장을 불러달라며 분노를 터트립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 빨간 넥타이 매고 앵커에게 검정 옷도 입지 마라고 했답니다.]

저녁 8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유가족 100여 명이 분향소에 안치된 아이들의 영정사진을 꺼내들고 긴급 성명을 발표합니다.

[단원고 학생 유가족 대표단 : 여기서 몇 시간을 참았습니다, (김 국장) 오라고. 오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를 가만히 놔두시라고요. 자, 우리 전부 다 (KBS로) 갑시다.]

아이들을 가슴에 품은 가족들은 서울행 버스에 나눠 타고, KBS 본사가 있는 서울 여의도로 향합니다.

분향소에 나란히 있던 아이들의 영정사진 자리는 곳곳이 비었고, 버스 안 유가족들은 화가 가라앉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KBS 본관 앞엔 이미 경찰 병력이 대거 집결했고 버스가 건물 전체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김시곤 나와. 나와."

유족들을 막아선 경찰들도 어쩔 줄 모르고, 눈물로 하소연도 해봅니다.

"오죽하면 사진까지 놓고 들어가냐고."

2시간 가량 항의가 이어진 끝에 자정 무렵에야 KBS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유족 : JTBC 하나만 들어오세요. 카메라 들어와서 정말 우리가 때리는 지 안 때리는지 확인해 주고. 중립적으로 봐주세요.]

유족들은 JTBC 취재진과 동행할 것을 원했으나 KBS 측은 JTBC 기자의 출입을 막았습니다.

[KBS 관계자 : 기자들은 안돼요.]

실랑이 끝에 유족들이 들어갔지만 요청했던 면담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유경근/단원고 학생 유가족 대표단 : 이런 상황이라면 KBS 사장의 공개 사과와 그 사과를 방송할 것, 그리고 문제의 발언을 한 김 국장을 파면시킬 것을 공식 요구한다. 이제 청와대로 직접 갑시다.]

새벽 2시, 대통령을 직접 만나겠다며 청와대로 향했습니다.

길을 안내하는 경찰차량이 시속 20km의 느린 속도로 운행하자, 항의방문을 늦추는 거냐며 유가족들의 항의가 다시 이어집니다.

[비키란 말이야, 그러니까. 비키라고, 이 사람아.]

결국 광화문에서 유가족들은, 버스에서 내려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시작합니다.

30여 분을 걸어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 도착한 유가족들은 다시 경찰과 마주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 안전한 나라, 편안한 나라, 행복한 나라에서도 살 수 있도록 저희 희생 가족의 (대통령) 면담을 허락해 주십시오.]

여기서도 경찰과의 대치 상황은 계속 이어집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 제 딸이예요. 나 시위하러 온 거 아니란 말이예요. 내 딸. 내 딸. 비키시란 말이예요.]

한 어머니가 무릎을 꿇고 경찰에게 매달립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 비켜주세요. 비켜주세요.]

다함께 어머니들이 무릎을 꿇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 제발 부탁합니다. 하지만 너무 억울합니다. 우리 딸들, 아들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 전원 구조됐다고 해서 애들 물에 빠져서 옷 사입혀 데려올려고 했어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 5일, 6일, 7일 지나면서 무슨 생각한 줄 아세요. 올라만 와라. (2514) 안 나온 부모는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죽은 애 안고 울고 있는 부모한테 좋겠다고 그래요. 죽은 자식이라도 찾아서 좋겠다고 그런다고요. 우리 올라온 사람들]

일순간 눈물바다가 되고, 경찰도 눈물을 참느라 고개를 숙입니다.

청와대에 들어가지 못한 유가족들은 결국 찬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 앉습니다.

영정사진을 품에 안은 한 유가족이 학생들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영상을 화면에 띄웁니다.

세월호 4층에 있던 고 김시연 양의 휴대전화에서 복원된 영상입니다.

이 영상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당시 아이들은 나름대로 현명하게 상황판단을 했지만 선장과 선원들이 아이들을 배에 붙들어뒀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한 동안 관제센터에 구조나 도움 요청을 하지 않은 점도 알 수 있습니다.

동영상은 여학생들의 비명으로 시작합니다.

[야 진짜, 너무 심해 이건.]

촬영이 시작된 시간은 오전 8시 50분, 최초 침몰 신고가 접수되기 2분 전입니다.

[커튼 찍어, 커튼.]

커튼은 창문에서 45도 넘게 벌어졌고, 아이들은 움직여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내 옆으로 올 수 있겠어?]

[못 움직이겠어.]

[너무 무서워.]

[야, 나 진짜 무서워.]

[우리 지금 벽에 붙어 있다.]

영상은 5분 뒤, 오전 8시 56분 다시 촬영됐습니다.

[우리는 진짜로 죽을 위기야. 이 정도로 기울었다. 오늘은 4월 16일.]

하지만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만 계속됩니다.

[선내에 계신 위치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잡을 수 있는 봉이나 물건을 잡고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은 귀를 의심합니다.

[야, 미쳤나봐.]

[이런 상황에서 막 그러지 않냐? 안전하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그러면 지들끼리 다 나가고.]

[지하철도 그렇잖아. 안전하니까 좀만 있어달라고 했는데, 진짜로 좀 있었는데 죽었다고. 나간 사람들은 살고.]

오전 9시 41분, 영상 속의 아이들은 구명조끼를 입은 채 겁에 질려 있습니다.

당시 아랫층에 있던 기관사들은 이미 탈출했고, 선장과 항해사들은 조타실을 빠져나와 해경 보트로 구조되던 중이었습니다.

선실 외부 상황을 전혀 모르던 시연양은 마지막 기도를 남깁니다.

[우리 반 아이들 잘 있겠죠? 선상에 있는 애들이 무척이나 걱정됩니다. 진심입니다. 부디 한 명도 빠짐없이 안전하게 (수학여행) 갔다올 수 있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밝고 예쁜 아이들이 끔찍한 위기의 순간에서도 서로를 감싸며 용기를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에 도로는 순식간에 통곡으로 채워졌고 지켜보던 시민들도 눈시울을 붉힙니다.

유족들은 아스팔트 바닥에서 밤을 지샜습니다.

KBS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보도본부 간부들이 폭행, 억류를 당했다"면서 "유족들의 참담함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공영방송 보도본부 간부들에게 행한 폭행과 장시간 억류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심지어 보도국장 사진을 분향소에 붙이고 사실과 다른 내용을 적시하며 모욕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KBS의 주장은 유가족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지 못했습니다.

오전 9시30분쯤 청와대 박준우 정무수석이 유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후 2시, KBS 김시곤 보도국장이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김시곤/KBS 전 보도국장 : 세월호 참사는 기본적으로 안전불감증에 의한 사고였다. 따라서 이번 참사를 계기로 안전불감증에 대한 뉴스 시리즈물을 기획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0415 언론노조 KBS 본부가 전체 내용은 거두 절미한 채, 일방적으로 반론은 단 한마디도 싣지 않은 채 왜곡해 지난 3일 성명서를 낸 것입니다.]

김 국장은 관련 발언을 보도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시곤/KBS 전 보도국장 : 일방적 주장을 사실로 보도하거나 반론을 실지 않는 보도에 대해서는 반드시 정정보도 및 반론 보도를 요청하고 그에 따른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하겠다는 점도 분명히 밝혀둡니다.]

발언 당시 동석했던 간부도 뒤 이어 해명했습니다.

[안양봉 과학재난부장 : 세월호 사고가 일단락 되는 시점에서 적절하게 안전불감증을 점검하는 안전 한국 기획시리즈 같은 보도가 있어야 된다. 이런 말씀을 하셨고요. 세월호 사고자는 300여명이다. 한 달에 교통사고 사망자도 500명이 넘는다. 그런데 교통 사고에 체감하는 정도가 적다. 그만큼 우리 주변이 안전에 소홀하다.]

김 국장은 앵커가 검은 옷을 입지 못하게 지시한 것은 실종자 가족을 배려한 것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김시곤/KBS 보도국장 : 아직도 생사가 불분명한 실종자들이 더 많은 상황에서, 상복을 입고 나온 것은 실종자들이 이미 사망한 것으로 결론지은 것 아니냐. 그리고 이는실종자 가족들을 정말에 빠트리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김 국장은 그러면서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그런데 길환영 KBS 사장에게도 즉각 사퇴하고 요구하면서 또다른 파문이 일었습니다.

[김시곤/KBS 보도국장 : KBS 사장은 언론 독립에 대한 확고한 가치를 가진 인사가 되어야 한다. 언론에 대한 어떤 가치관과 신념도 없이 권력의 눈치만을 보며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온 (KBS) 길환영 사장은 즉각 자진 사퇴해야 한다.]

유가족들이 처음 KBS 사장 등과의 면담을 요구한 지 24시간이 지난 이날(9일) 오후 3시30분쯤, 길환영 KBS 사장이 청와대 인근에서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가족들을 찾아왔습니다.

길 사장은 유족들 앞에서 김 국장의 발언이 부적절했다고 인정했습니다.

[길환영/ KBS 사장 : 보도국장의 정말 부적절한 발언으로 인해서 여러분들 마음에 다시 한 번 깊은 상처를 드리게 된 부분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돌아가면 바로 보도국장에 대한 사표를 수리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요구했던 KBS 사장의 사과와 보도국장의 사퇴가 받아들여진 후 유족들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안산 단원고 생존학생 대표 :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셔서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음을 잘 알지만, 그래도 죄송하다는 말, 그리고 친구들 다 같이 오지 못하여 송구스럽다는 말 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슬퍼지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딸 잃음을 모두 알 수 없지만 저도 친구를 잃은 거기 때문에 친구를 잃은 한 학생의 입장에서 지금도 너무 슬프구요. 무슨 말을 해야 될 지 모르겠네요.]

마침내 24시간의 긴 항의를 마치고 분향소로 돌아온 유가족들은 아이들의 영정을 다시 친구들 곁으로 데려왔습니다.

아들의 영정을 다시 올린 어머니는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합니다.

[세월호 희생자 유족 : 2학년 9반 이보미 아빠예요. 우리 아이 노래 들으신 분도 있고, 안 들으신 분도 있을 겁니다. 저희 아이 노래, 사진과 함께. 옆엔 큰 딸이예요. 마지막으로 공식적으로 부른 노래 한 번 들려드릴게요.]

[세월호 희생자 유족 : 2학년 9반 김혜화. 잠을 못 이룹니다. 저희 딸 4월 25일날 장례 치르는 날이 저희 딸 생일이었습니다. 제 마음과 여기 계신 또한 진도에 계신, 팽목항에 계신 실종자 가족들 애탈 것입니다.]

[세월호 희생자 유족 : 제 딸이 4월 15일날 학교 마치고 수학여행을 갈 때 저에게 보내준 카톡입니다. 잘 보십시오. 공주가 보낸 겁니다. 아 짜증나, 엄마 아빠 나 지금 인천항인데 안개가 많이 껴 가지고, 원래 6시에 출항하는데 지금 11시까지 대기래. 나 배고파. 잘 가고 있어? 자는 중. 엄마 폰 전원 없음. 잘 가.]

[세월호 희생자 유족 : 5반 박성호 엄마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우리 이 꽃다운 아이들이, 꽃도 못 펴본 아이들이 이렇게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의 죽음이 묻혀서는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왠지 아십니까? 오늘은 우리 아이들이 죽었지만 내일은 모레는, 당신의 아이들, 당신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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