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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13회] 작동 안된 '안전'…아찔한 서울 지하철

입력 2014-05-12 09:45 수정 2014-06-0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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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세월호 침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열차 추돌 사고는 참사를 겪고도 안전사고에 무감각한 우리의 현주소를 보여줬습니다. 신호기 오류가 사고 원인으로 발표됐지만 이 사고 역시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249명의 승객을 다치게 한 서울 도심의 안전불감증을 이호진, 홍상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엄모씨/사고 당시 기관사 : 0120 커브 돌면서 정지신호가 난 걸 보고 옆에 차가 있는 걸 봤죠. 그 상태에서, 그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죽었다고 생각했고 ….]

[이미경/사고 열차 탑승객 : 서 있던 사람들이 거짓말 안 하고 바닥에 뒹굴고, 부딪히고, 다 쓰러졌어요. 다 쓰러진 다음에 '우당탕탕'하면서 열차가 멈췄어요.]

[사고 열차 탑승객 : 2609 정전이 바로 된 거예요. '펑'하는 소리와 같이.]

지난 2일 오후 3시 30분쯤 서울지하철 2호선 열차 2260호는 평소처럼 승객 200여 명을 태운 채 신당역을 지났습니다.

상왕십리역에 진입하기 직전 기관사 엄모씨의 눈에 빨간색 '정지’ 신호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신호기와 동시에 보인 건 앞쪽에 정차해 있던 열차 2258호였습니다.

당시 열차 2258호는 상왕십리역에서 스크린도어가 제대로 닫히지 않아 출발이 1분 32초간 지연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기관사 엄씨가 앞 열차를 발견했을 때 두 열차간 거리는 120m였지만 시속 68km로 달리던 뒷 열차는 앞 열차를 추돌한 후에도 10m 가량을 더 가서야 멈췄습니다.

[사고 열차 탑승객 : 자동차 급정거할 때 앞으로 쏠리잖아요. 그런 것처럼 (앉아 있다가) 옆으로 쏠렸거든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열차 안에서 승객들은 극도의 불안감을 느꼈고, 안내 방송이 채 나오기도 전에 열차 밖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이미경 / 사고 열차 탑승객 : 타는 냄새가 확 나. 그래서 사람들이 뒹굴며 넘어지고 전 동차가 멈추니까 다 비명지르며 우르르…. 너무 무서워서 거기 있는 여자들 다 전화하고 카톡하고 도망가면서. 어떤 아주머니는 너무 놀라서 전화기도 팽개치고….]

[사고 열차 탑승객 : 0114 여성분들 쓰러지고 난 뒤에 '빨리 나가야겠다'해서 빨리 문을 열고 나왔어요.]

[강광수/사고 열차 탑승객 : "다 밖으로 나갔어요. 금방. 거의 2, 3분 안에 다 나갔던 것 같아요. 그 때부터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한 거죠. 이게 무슨 일인가에 대해서.]

같은 시각 열차에 타고 있던 시각장애인 정택호씨는 더 큰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정택호 / 사고 열차 탑승객 : 너무 두려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아우성이 들리면서 두려웠습니다.]

정씨는 바로 앞에 있는 사물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중증 시각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일을 마치고 장애인복지관에 교육을 받으러 가는 길이던 정씨는 추돌 직후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한동안 아무런 대처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정택호 / 사고 열차 탑승객 : 4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1631 순간 여기서 갇히면, 이대로 갇히면 어떻게 되나. 이대로 끝나는 건가….]

사고 열차 기관사 엄씨는 이 추돌 사고로 오른쪽 어깨에 골절상을 입었습니다.

[엄모씨 / 사고 당시 기관사 : 0346 속도 자체가, 그 정도 속도에서 그 정도 거리면 일단 무조건 박는다고 봐야죠.]

추돌 직후 엄씨는 다친 어깨를 부여잡고 승객 칸으로 향했습니다.

앞 칸에 있는 승객들을 일단 다 밖으로 내보낸 엄씨는 다시 운전실로 들어가 안내방송을 했습니다.

[엄모씨 / 사고 당시 기관사 : 뒤에 계신 분들 앞으로 이동을 하시라고. 내 딴에는 그렇게 방송을 했는데 어떤 분들은 막 고함을 쳤다고 하시고 그러더라고요. 저도 너무 다급하니까….]

같은 열차 안에 있던 지하철 보안관 박찬웅씨가 엄씨를 도와 승객들을 대피시켰습니다.

[박찬웅 / 지하철 보안관 : 역사 밖으로 대피를 하십시오, 다 위로 올라가십시오. 그리고 젊은 청년들한테, 학생은 쓰러져 있는 분들 부축해서 올라가시라고.]

하지만 실시간 열차 운행을 체크하는 통합관제센터는 추돌 사고가 나기 직전까지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서울 메트로 통합관제센터 관계자 : 앞 차한테 가라고 출발을 하라고 (무전을 했다). 후속 열차가 들어가니까. 앞 차 승무원이 그런 상황 발생하면 통보를 하게 돼 있는데 전혀 안 하는 바람에….]

결국 관제센터는 사고 2분 뒤인 3시 32분, 승강장 내 비상벨을 통해 상황을 듣고 나서야 조치를 취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 메트로 통합관제센터 관계자 : 승강장에서 SOS를 누르면 우리한테 바로 떠요. 팝업창에 위치도 뜨고 화면도 뜨고. 0550 저희들이 119 받았을 때 (이미) 대피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 사이 승객들은 얼마 전 있었던 세월호 사고를 떠올렸습니다.

[권유진 / 사고 당시 탑승객 : 세월호도 있었고 대구 지하철 사고도 있었잖아요. 그런 게 다 생각이 나면서 무서워….]

[정택호 / 사고 열차 탑승객 : 이러다가 진짜 죽는 거 아닌가 싶은…. 요즘 사회적으로 많이 어렵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도 같이 떠오르고요.]

큰 사고는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반드시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법칙이 있습니다.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하인리히의 법칙인데요. 이번 사고 역시 얼핏 경미해 보이는 잘못된 관행들이 모여 초유의 지하철 추돌로 이어졌습니다.

[엄모씨 / 사고 당시 기관사 : 지하철 생기고 나서 그런 사고가 처음이에요. 신호가 안 나오는 경우는 있을 수 있어도, 신호기가 고장 났거나 이럴 수는 있어도, 그런 식으로 고장 날 수가 없는 건데.]

서울지하철 개통 이후 처음으로 지하철 추돌사고가 일어난 다음날, 2호선 운영주체인 서울메트로는 사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신호가 고장 나는 바람에 사고가 났다는 겁니다.

[장정우 / 서울메트로 사장 : 전방 열차 기준으로 정지, 정지, 주의 순서로 돼야 되나 사고 시점에서는 신호기가 정지, 진행, 진행 순서로….”

뒤따르던 열차가 상왕십리역으로 다가갈 때 역에 열차가 있으면 정지로 표시됐어야 할 신호기 두 개가 진행으로 잘못 표시됐다는 겁니다.

서울메트로는 자체 조사결과, 사고 사흘 전 신호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장정우 / 서울메트로 사장 : 데이터 수정 작업 후에 당일 03시 10분부터 저희가 확인한 바로는 해당 신호 운영 기록장치가 오류가 발생해서….]

지난달 29일 새벽 1시 10분쯤, 속도 변경을 위해 을지로입구역 연동장치 데이터를 바꾸고 두 시간 뒤 어떤 이유인지 신호 체계에 오류가 생겼다는 겁니다.

해당 구간은 하루 평균 550대의 열차가 지나다니는 곳입니다.

신호가 고장 나고 나흘 동안 수천 대의 차량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 위험을 안고 달렸던 겁니다.

신호를 인식하는 ATS, 열차 자동 정지 장치는 진행 신호만 받아들여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엄모씨 / 사고 당시 기관사 : 그 상태에서 (브레이크) 다 땡겨도 순간적으로 본능적으로 일단 역부족이라고 본 거죠.]

무엇 때문에 신호 고장이 생겼는지를 정확히 밝혀지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신호 고장은 정말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을까.

사고 직후 서울메트로를 압수수색하는 등 원인 규명에 나선 경찰은 수사 착수 사흘 만에 그렇지 않았다는 대답을 내놨습니다.

[백경흠 형사과장 / 서울 성동경찰서 : 5월 2일 01시 30분 경 서울메트로 신호팀 직원이 신호기계실에서 모니터상 신호오류가 난 것을 확인하고도 통상적 오류로 생각하며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사고 14시간 전인 새벽 1시 30분, 을지로입구에 있던 신호기계실 직원이 신호에 오류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겁니다.

이 직원은 오류를 확인하고 인근 역에 연락을 취했지만 별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 신호판에서 생기는 통상적인 문제라 생각했습니다.

[서울 메트로 신호팀 관계자 : 정보를 주고받는 통신상의 문제에 가끔 오류가 있어요. 그 가끔 있는 오류를 통상적인 오류라고 하는 것이에요.]

현장을 찾아가서 신호가 제대로 들어오는지 확인했다면 치명적인 오류를 발견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서울 메트로 관계자 : 확인하려면 자기가 직접 현장에 내려가서 현장하고 일치 여부를 파악해야 하는데 을지로입구역에서 상왕십리역까지 가려면 시간대가 그렇기 때문에….]

249명이 다치는 지하철 추돌을 막을 수 있었던 기회는 그렇게 날아갔습니다.

14시간이 지난 뒤인 사고 2분 전, 기회는 다시 찾아왔습니다.

앞 열차 2258편은 상왕십리역 5-1번 스크린도어 1개가 닫히지 않아 출발하지 못하고 승강장에 정차해 있었습니다.

이미 4분 가량 늦어 해당 차량 기관사는 관제소로부터 운행을 서두르라는 지시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서울 메트로 노조 관계자 : 그 와중에 상왕십리역에서 승강장 안전문이 닫히지 않고 발차를 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기관장과 차장 입장에서 최대한 개통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스크린도어가 닫히지 않는 문제는 서울지하철 2호선에서 한 달 평균 100건 씩 발생하는 흔하고 일상적인 일이었습니다.

기관사는 평상시처럼 관제소에 알리지 않고 그대로 출발하려 했습니다.

관제소와 무전을 하는 동안에는 다른 35대의 차량이 관제소에 연락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웬만한 일이 아니면 무전 보고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서울 메트로 노조 관계자 : 2호선의 입장은 정시 운행이라든지 이런 것에 매몰돼 있기 때문에 그렇게 나름 빨리 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뉴얼은 달랐습니다.

취재진이 확인한 매뉴얼에 따르면, 1개 이상의 문이 닫히지 않으면 기관사가 즉각 관제소에 알린 뒤 조치를 취하라고 돼 있었습니다.

원칙대로 했다면 추돌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지만 그 동안 큰 문제가 없었다는 이유로 매뉴얼을 따르지 않은 게 결국 사고로 이어졌습니다.

[서울 메트로 노조 관계자 : 121개 역사가 스크린도어가 완성이 되면서 아까 보여드렸던 이런 장애들이 무수히 발생이 되는 거예요. 아까 관례적인 업무로 돼버린 거죠.]

얼핏 사소해 보였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았던 실수는 또 있었습니다.

운행중인 열차들에 대한 종합적이고 전반적인 감시와 통제를 해야 하는 서울메트로 종합관제소입니다.

당시 근무자는 4명. 상왕십리역에 2258호가 평소보다 오래 서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뒤차와 간격이 좁혀지면서 추돌 우려가 커졌습니다.

그런데 관제소에서는 뒤차에게 앞에 차량이 서있다거나 속도를 줄이라는 등 아무런 경고를 주지 않았고 앞차에게만 빨리 운행하라고 지시했다는 겁니다.

자동 제어 시스템에 의해 운행이 통제될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서울 메트로 통합관제센터 관계자 : 우리가 처음에 불러서 나오면 괜찮은데 한 번 두 번 불러서 안 나오면 일방적으로 이제 얘기를 하거든요. 그 쪽에 이상이 있으니까 놓쳐서 안 받았는지 뭐했는지, 운전실에서 들리기는 들리거든요. 무전기가.]

두 열차가 가까워져 있었다는 사실조차 사고가 난 뒤 승객의 신고를 받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관제소에서는 신호 이상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미리 알려주지 않은 신호팀이 문제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관제소가 뒤차에 알리지 않은 사실 역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전영석 / 한국교통대 교수 : 위험정보는 조직 구성원 모든 사람한테 공유가 돼줘야 그 위험을 어떻게 적절히 컨트롤해서 사고를 예방할 거냐…. 조직 차원에서 그 위험 정보를 덮고 감추려고 한다면 하면 상당히 심각하다고 봐요.]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통해 여러 단계에서 동시에 작동했어야 하는 안전 시스템들이 그동안 얼마나 허술하게 작동해 왔는지가 드러났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박흥수 /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연구원 : 중층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안전시스템이 하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인데….그게 안 되다 보니까 동시에 다 한 포인트에 몰려서 사고가 난 거죠. 어느 한 요인보다는 복합적인 요소들이 한순간에 다 결합돼서 사고로 연결된 거죠.]

2호선 추돌사고의 책임을 지고 장정우 서울메트로 사장이 결국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박원순 / 서울시장 : 오늘 서울 메트로 장정우 사장이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책임질 부분은 반드시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서울시는 지난 8일 전면적인 지하철 운영시스템 개선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 이번엔 코레일이 운영하는 지하철 1호선 열차가 또다시 신호 고장으로 역주행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상 초유의 지하철 추돌사고로 수백 명이 다친 지 불과 엿새 만이었습니다.

개통 40년에 누적 이용객이 40억 명을 넘어선 시민의 발 서울 지하철.

앞으로도 시민들은 출퇴근길에, 혹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지하철에 몸을 맡겨야 합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두려움은 여전합니다.

[정택호 / 사고 열차 탑승객 :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치적으로 어떤 일이든 거기 계신 분이 유지, 유지해서 잘 활동을 하셔서 어려운 일들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에 모두가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결국은 대중교통을 또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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