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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통합' 기치로 대선 가도 뛰어든 손학규

입력 2012-06-14 17:56

학생운동 이끈 재야 출신..복지부장관ㆍ경기도지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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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 이끈 재야 출신..복지부장관ㆍ경기도지사 역임


'민생·통합' 기치로 대선 가도 뛰어든 손학규

민주통합당 손학규 상임고문이 대권 가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손 상임고문은 14일 "국민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애민 대통령',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민생 대통령', 분열과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을 하나되게 하는 '통합대통령'이 되겠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손 상임고문은 재야 운동권 출신이다.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 시절 법대 고(故) 조영래 변호사, 상대 고(故) 김근태 전 의원과 `3인방'으로 불리며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유신체제 종식 후 영국 유학길에 올라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인하대와 서강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를 정계로 이끈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1993년 경기도 광명시 보궐선거에서 민자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뒤 내리 3선을 했고, 대변인을 거쳐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경기도지사로 당선되면서 대권주자의 반열에 올랐다.

경기도지사에서 물러난 뒤 대권 도전을 노렸지만 2007년 3월 대선후보 경선 방식을 놓고 한나라당의 한계를 지적하며 탈당을 결행, 정치인생의 최대 전환점을 맞았다.

2007년 말 민심의 우위에 기댄 대세론으로 바람몰이에 나섰으나 정동영 상임고문에게 패해 대선 후보 자리를 내줘야 했다.

2008년 초 대선 참패의 상처로 허덕이던 당에 구원투수로 투입돼 총선을 진두지휘하며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에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박진 후보에게 패했다.

그러나 2010년 10ㆍ3 전당대회에서 예상을 깨고 당대표에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전국 단위 선거에서 선출돼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도 완전히 뗐고, 이후 거대 여당과 맞붙어 투쟁하면서 명실상부한 야권 지도자로 입지를 굳혔다.

지난해 4ㆍ27 재보선에서는 `사지(死地)'인 경기 분당을에 출마해 강재섭 전 대표를 꺾고 당선돼 또 다시 전성기를 맞았다.

지지율은 15%대로 치솟았고, 야권 내에서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손풍'(孫風)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ㆍ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졌고, "원칙있는 포용정책" 발언으로 정체성 논란에 휩싸였다.

급기야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에는 "후보조차 배출하지 못했다"는 엄혹한 비판에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하루만에 번복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손 상임고문은 이때부터 야권통합에 올인했다.

그는 당 안팎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뚝심 있게 야권통합을 밀어붙였고, 결국 대의원들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통합 결의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19대 총선에서는 "총선 승리를 돕겠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경기 시흥(63) ▲경기고, 서울대 정치학과 ▲서강대 교수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지사 ▲통합민주당 공동대표 ▲민주당 대표 ▲14∼16,18대 국회의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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