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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줄었다지만…의료계 "현실 벗어난 법 개정해야" 한목소리

입력 2019-02-14 16:45 수정 2019-02-14 17:31

"실태조사보다 무뇌아 낙태도 안 되는 법 개정이 먼저" 요구
'낙태 연간 5만건' 조사 결과에 "현장과 괴리 커" 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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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태조사보다 무뇌아 낙태도 안 되는 법 개정이 먼저" 요구
'낙태 연간 5만건' 조사 결과에 "현장과 괴리 커" 불신

헌법재판소의 인공임신중절(낙태)죄 위헌 여부 결정이 머지않은 가운데 정부가 국내 낙태실태 조사 결과를 14일 발표했다. 인공임신중절 건수가 연간 약 5만건으로 대폭 감소했다는 이번 조사 결과를 두고 의료계는 현장과 동떨어진 수치라고 지적하며, 낙태 여성과 의사를 '범죄자 취급하는' 형법과 무뇌아 낙태도 할 수 없는 모자보건법 개정이 먼저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조사결과 응답자의 75%가 낙태죄를 규정하는 형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했다.

◇ 의료계 "조사결과, 신뢰하기 어렵다"

14일 보건복지부의 인공임신중절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낙태 건수는 약 5만건이다. 2011년 발표된 16만8천건에서 많이 감소한 수치다.

의료계에서는 '연간 5만건'이라는 수치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재 국내 낙태 수술 추정치는 조사 주체에 따라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과거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우리나라의 하루 평균 낙태 수술 건수를 약 3천건으로 추정했다. 연간으로 따지면 100만건을 넘긴다. 100만건이 안 되더라도 적어도 50만건은 넘길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히 음지에서 이뤄지는 데다 공개를 꺼리는 낙태 시술의 특성상 이번 조사에서도 제대로 된 결과가 도출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동석 회장은 "낙태가 형법상 처벌 대상인데, 처벌 대상인 여성과 의사들에 설문한다고 해서 솔직히 말했겠느냐"며 "범죄를 저지른 후 자수를 하라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도 사회 변화에 따라 과거보다 낙태 시술이 일부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봤다.

김 회장은 "피임에 대한 인식이 확산하고 결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자연임신율이 떨어지는 등의 사회 변화가 낙태 시술 감소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무뇌아 낙태도 범죄…"숫자 아니라 법 개정부터 해야"

당장 의료계는 한해 몇건의 낙태 시술이 이뤄지느냐를 파악하는 것보다 현실에 맞지 않는 법을 개정하는 게 급선무라고 본다.

현행 모자보건법에서는 ▲ 본인이나 배우자에 유전학적 정신장애가 있거나 ▲ 전염성 질환이 있거나 ▲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 강간 등에 의한 임신 ▲ 임신이 지속하면 산모 건강이 위험해지는 경우 등 5가지 사유의 낙태만 허용된다.

이 때문에 무뇌아 등 태어나더라도 생존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태아를 낙태해도 산모와 의료인 모두 처벌 대상이 된다.

김 회장은 "단순히 인공임신중절을 합법화하느냐 마느냐를 넘어 무뇌아 낙태도 할 수 없도록 규정한 모자보건법을 의학적 근거와 현실에 맞춰 개정해달라는 것"이라며 "현행법상 낙태 처벌 대상은 여성과 의사로 한정돼 있는데 이 역시 개선돼야 할 문제"라고 했다.

앞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해 복지부가 낙태를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제하고, 적발 시 의사의 자격을 1개월 정지하겠다고 하자 낙태 수술을 전면 거부한 바 있다.

당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낙태 수술의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한 고민 없이 여성과 의사에 대한 처벌만 강화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형법 개정 필요성에 여성 75% 동의…"낙태에 대한 시대적 요구"

여성의 건강권을 들어 낙태 합법화를 요구해왔던 여성계에서는 실태조사의 '숫자'가 아닌 '내용'에 주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낙태 건수는 차치하더라도 대규모 조사를 통해 여성들이 낙태에 갖는 생각과 현실의 불합리함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낙태죄를 규정하는 형법과 임신중절 허용 사유를 규정한 모자보건법 개정 필요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형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응답은 75.4%, 모자보건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응답은 48.9%에 달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의 김진선 집행위원은 "형법, 모자보건법 개정 필요성에 공감하는 등 낙태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드러난 결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낙태 시 가장 필요했던 정보가 '낙태 가능한 의료기관'(71.9%)으로 꼽히는 등 여성이 낙태와 관련해 가장 기본적인 정보도 얻을 수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한편, 일각에서는 복지부가 헌재의 낙태죄 위헌 여부 결정을 앞둔 이 시점에 조사 결과를 발표한 데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굳이 이 시점에 낙태 실태 조사결과를 발표한 건 헌재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아니냐"며 "실태 조사를 할 게 아니라 현실에 맞지 않는 구시대적 처벌조항을 개정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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