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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만에 재심 제주4·3 수형인 "무죄 판결받고 눈감겠다"

입력 2018-09-04 15:16

4·3군사재판 불법성 사법부 첫 인정…특별법 개정 탄력 전망
심리 중 '군집행지휘서' 자료 발견, 진상규명 한 페이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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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군사재판 불법성 사법부 첫 인정…특별법 개정 탄력 전망
심리 중 '군집행지휘서' 자료 발견, 진상규명 한 페이지 기록

70년 만에 재심 제주4·3 수형인 "무죄 판결받고 눈감겠다"

"제 나이 이제 아흔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4·3수형인 무죄 판결 어서 빨리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조병태(90·서귀포시 강정동) 할아버지는 4일 아픈 몸을 이끌고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열린 '제주4·3 군법회의 재심 개시 결정'에 대한 기자회견에 참석해 이같이 희망했다.

제주지법 제2형사부(부장판사 제갈창)는 4·3 생존 수형인 18명이 정부를 상대로 지난해 4월 제기한 재심 청구사건에 대해 1년 5개월 만인 지난 3일 개시 결정을 내렸다.

재심 개시 결정에도 최종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정식 재판을 거쳐야 하는 등 아직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전망만은 밝다.

재심 결정 재판부가 제주 4·3 당시인 1948년과 1949년 이뤄진 군사재판의 판결이 불법 구금과 고문에 의해 이뤄진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4·3 생존 수형인의 변호를 맡은 임재성(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이는 이들 수형인에게 씌워진 내란죄, 국방경비법 위반죄의 증거능력이 상실된 것"이라며 "이런 특수성이 있는 사건은 재심 개시 결정이 확정된 것만으로 큰 고비를 넘은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의 날조된 범죄사실에 대해 70년이 지난 현재 와서 검찰이 공소장을 온전하게 작성하기 어려울 것으로도 전망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즉시 항소를 하지 않는다면 올해 말께 1심 판결이 날 것으로 봤다.

◇ 재심 결정 의미

지난해 4월 제주4·3 생존 수형인 18명은 제주지법에 불법 군사재판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이들은 제주4·3 당시 계엄령과 국방경비법에 의해 1948∼1949년 이뤄진 군사재판 자체가 위법했으며 불법 구금과 고문 등으로 모든 것이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청구인들 개개인 별로는 1948년과 1949년 상황이 서로 조금씩 다른 면이 있다.

재판부가 청구인 모두를 재심 개시 결정하면서 국가 공권력에 의해 폭력이라는 상황 속에서 이뤄진 같은 사건으로 판단하는 대표성을 띠게 됐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수형인명부에 따르면 4·3수형인은 2530명에 이른다.

대부분 행방불명되거나 옥고로 숨졌다.

재심 개시 결정으로 18명 외 생존한 수형인 10여명과 숨진 수형인의 유족도 재심 청구 권한이 발생하게 됐다.

사법부가 4·3 군사재판이 불법임을 인정한 최초의 사법적 판단이라는 의미도 있다.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 등이 당시 군사재판이 불법임을 수차례 확인했으나 이는 행정기관의 판단에 그쳤다.

이번 재심 개시 결정으로 군사재판에서 영장주의를 위배한 불법 구금과 불법 고문이 있었다는 것을 사법부가 확인했다.

재심 여부를 다투는 과정에서 18명에 대한 밀도 있는 조사가 이뤄지는 계기가 돼 추가적인 증거도 속속 나타났다.

군사재판에 따른 재판 기록조차 없으나 18명 모두 전과 기록에 내란죄와 국방경비법 위반죄로 기재돼 있다.

청구인 중 오영종(88) ·현우룡(93) 할아버지에 대한 '군집행지휘서'도 지난 5월 발견됐다.

이들 2명 모두 1949년 7월 군사재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

군집행지휘서는 4·3 당시 제주군 책임자로 진압 작전을 주도한 함병선 수도경비사령부 보병 제2연대장(육군대령)이 대구형무소장에게 형 집행을 요청한 공문서다.

임 변호사는 "이 지휘서는 공공기관 사이에 보내진 공문서로 중요한 증거"라고 말했다.

◇ 4·3특별법 개정 추진 탄력

올해 제주4·3 70주년을 맞아 정치권에서 제주4·3특별법 개정 작업이 추진됐다.

4·3특별법 개정안에는 '제주 4·3 수형인에 대해 진행한 군사회의(재판) 일체를 무효로 한다'는 조항이 있다.

정치권에서 특별법 개정 추진을 통해 해결 절차를 밟고 있는데 개별적으로 사법적인 소송을 진행해 도민 바람과 역량이 분산될 수 있다는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양동윤 제주4·3 도민연대 대표는 "이번 재판 결과 18명 모두 무죄가 나온다면 특별법 개정 작업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시일이 지남에 따라 개정 논의 분위기가 사그라지고 있는데 사법부의 판단에 따라 입법부에 대해 특별법 개정 압력을 자연스럽게 줄 수 있다는 의미다.

4·3특별법이 개정되면 재심 당사자 18명 외 나머지 생존인과 숨진 수형인 유족들이 사법부의 판단을 구하지 않더라도 사실상 무죄를 받게 된다.

양 대표는 "수형인 한 명, 한 명이 대죄를 지은 누명을 쓰고 고향에서 기피 대상으로 지목돼 피해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후손까지 연좌제로 고생했다"면서 "이들의 무죄를 받고 싶어하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고 말했다.

또 재심 당사자 18명에 대한 재심을 거치는 과정에서 사법부가 4·3 당시 군사재판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위법성이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 임 변호사는 "재심 개시 결정을 한 재판부가 4·3 당시 군사재판이 절차를 위반했다고 여러 차례 인정했다"며 이런 우려를 일축했다.

재심 청구 방법은 과거 사법기관의 잘못에 대한 해결 방안의 하나로 여러 번 쓰이고 있고 수형인명부 등 4·3 자료를 두고 다투기 때문에 진상규명으로서의 의미도 크다고 봤다.

◇ 제주4·3 수형인은

정부의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4·3은 1947년 3·1절 발포사건 때부터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 7개월간 군경의 진압 등 소요사태 와중에 양민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적게는 1만 4000, 많게는 3만 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잠정 보고됐다.

4·3 피해자 중 4·3 수형인은 제주4·3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서대문형무소 등 전국 형무소로 끌려가 수감된 이들을 말한다.

1999년 추미애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이 명부를 발견하면서 그 인원이 250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수형인은 행방불명 되거나 고문 후유증으로 숨을 거두기도 했다. 살아남은 생존자로 신고된 인원은 33명에 불과하다.

생존자들도 육체적 정신적 후유장해를 겪다가 상당수가 생을 마감했다. 또 '연좌제'로 인해 자녀가 공직 취업에 제한되는 피해를 봤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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