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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 명 숨진 형제복지원 사건…'비상상고' 여부 주목

입력 2018-09-02 20:58 수정 2018-09-02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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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980년대 부랑인을 단속한다며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끌고 가 끔찍한 폭행과 노동 착취를 한 사건. 바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입니다. 영문도 모른 채 잡혀간 사람들 중 이곳에서 숨진 사람만 500명이 넘습니다. 그런데도 과거 우리 법원은 이곳이 적법한 시설이라고 판단해 복지원 원장에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는데 그쳤습니다. 30년 만에 이를 다시 판단할 방법에 대한 논의가 이번주 이뤄집니다.

박민규 기자입니다.
 

[기자]

도와달라는 구호는 바람과 비에 지워졌습니다.

국회 앞 농성을 시작한 지 300일째.

마음에 남은 상처와 사연은 설명하기조차 힘듭니다.

그저 앉아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다리고,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칩니다.

거짓말같은 폭력과 공포도 36년 전 무심히 찾아왔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최승우/당시 14살 : "순경이 저를 보고 딱 쳐다보더니만 '너 이리로 와봐, 인마'"]

가방에 든 빵이 "훔친 게 아니냐"고 했고, 그 길로 끌려갔습니다.

그 순간은 인생을 바꿨습니다.

[최승우/당시 14살 : "소대장이 와서 저를 성폭행했죠. '아저씨 말 잘 들으면 집에 보내줄 테니까…'"]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최승우/당시 14살 : "사람을 막 몽둥이로 패면서 질질질 끌고 오더라고요. 그 분 눈을 봤는데 눈이 하얗더라고"]

복지원에 있던 3천명 모두, 다르고도 비슷한 사연을 가졌습니다.

가난한 9살 아이는 2살 위 누나와 끌려왔습니다.

[한종석/당시 9살 : "내 보는 앞에서 누나를 질근질근 밟죠. 내가 울고불고하면 나도 그 자리에서 두들겨 맞죠."]

아이에게는 죄수번호가 붙었고 죄목은 '부랑아'였습니다.

1981년 전두환씨가 '부랑아 단속'을 지시하면서 강제수용은 시작됐습니다.

승진 점수와 보조금을 줬고, 공무원들은 가난한 아이들을 아무렇게나 잡아들였습니다.  

[한종선/당시 9살 : "조작이 들어간 거죠. 부랑인으로 만들어야지 자기들 평점이 올라 가겠죠"]

상처는 질기고 오래 남았습니다.

[최승우/당시 14살 : "동생은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하고 2009년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죠"]

1987년 검찰 수사가 시작되고 복지원은 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감금은 법령에 따른 정당한 직무행위'라는 것이 당시 법원 판단이었습니다.

[김용원/1987년 수사검사 : "대구고등법원에서 두 번씩이나 유죄라고 판결했는데도 무죄를 대법원이 고집했던 거죠"]

검찰개혁위원회는 오는 수요일, 검찰총장에게 이 사건 '비상 상고'를 권고할지 결정합니다.

총장이 대법원에 직접 '사건을 다시 판단해달라'고 요청하는 제도입니다.

피해자들은 다시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한종선/당시 9살 : "그래도 미안하다라는 말이라도 좀 해주면 용서해보려고 시도는 해볼 것 아니에요,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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