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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전입 독려하는 지자체…연말 극심한 '인구쟁탈전'

입력 2019-12-30 21:16 수정 2019-12-3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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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얼마 전에 우리나라의 인구 자연증가율이 사상 처음으로 0%가 됐다는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물론 인구가 이제 감소세로 전환될 가능성이 매우 크지요. 이건 국가 전체 평균이고 이미 일부 지방에서는 인구 절벽이 시작된 지가 오래입니다. 공무원들이 다른 지자체 주민을 위장전입시키는 이른바 '인구 빼앗기'까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정해성 기자입니다.

[기자]

전남 순천시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입니다.

주민들의 위장 전입을 대놓고 비판합니다.

현수막을 건 곳은 다름 아닌 순천시 산하 주민자치위원회들입니다.

[류인상/순천시 남제동 주민자치위원장 : (인구가) 9000명도 무너지겠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순천시가) 주민자치회랑 이야기해서 플래카드 한번 걸어보자.]

순천시가 '인구 도둑'이라고 지목하는 건 인근 광양시와 여수시입니다.

지난 11월부터 최근까지 광양시와 여수시로 전입신고한 순천 시민만 2800여 명.

순천시 측은 이중 상당수를 위장전입으로 보고 있습니다.

[백운석/순천시 기획예산실장 : 하루에 100~200명 가까이 나갈 때가 있고. 여기에 거주하면서 주소를 옮긴다는 건 주민등록법 위반입니다.]

광양시와 여수시 공무원들이 교회와 같은 커뮤니티에 접근해 위장전입을 부추기고 있다는 겁니다.

[순천시 공무원 : 여수시청 직원이 하나 있는 것 같더라고요,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 거기에서 10명 정도 여수로…]

광양시와 여수시 측은 실거주자들의 전입을 유도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취재진이 입수한 광양시청 내부 문건입니다.

지난 11월, 광양시는 연말까지 6300여 명을 전입시킨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애초 계획보다 570여 명이 더 많습니다.

부서별로 최대 276명을 할당하기도 했습니다.

매실원예과, 산림소득과, 철강항만과 등 인구정책과 상관없는 부서도 눈에 띕니다.

해당 문건을 만든 광양시 공무원은 위장전입을 유도한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광양시 전략정책실 관계자 : 불법행위를 절대 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고. 우리 관내에 거주하면서 주소 이전이 안 된 분들은 우리 지역으로 들어오시면 좋겠다…]

인구 유치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을 지난해 8월 중단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달에도 공무원이 대리로 전입신고를 하면 실적으로 반영한다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최모 씨/순천시민 : 다른 지역에서 뺏어오면 그 공무원이 승진한다고 했어요. 주민등록증만 찍어서 카톡으로 넣어 주면 내가 다 알아서 할 거라고.]

승진하려면 최소 50명을 전입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광양시 공무원 : (실적) 보고대회를 연다거나, 부진 부서를 불러다 놓고 나무라는 거죠. 승진할 때 노골적으로 물어보거든요, 시장이 '몇 명이나 (전입)시켰어?']

지금 지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구 쟁탈전'.

이 갈등의 이면엔 인구수 등에 따라 결정되는 지역 예산이 있습니다.

바로 교부세입니다.

순천시에 따르면, 인구 한 명당 지자체가 받는 교부세는 평균 30에서 40만 원 정도로 추정됩니다.

광양시가 목표로 세운 6300여 명을 실제 전입시킬 경우 최대 25억 2천만 원가량 받는 셈입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더는 자연적인 인구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에 달했다는 겁니다.

올해 10월 기준, 전국 출생아 수는 2만 5648명.

1년 전보다 3.1% 줄었습니다.

출생은 계속 줄어드는데 사망은 늘면서 인구 자연증가분은 128명, 인구 자연 증가율이 최초로 0%대에 진입했습니다.

표를 보시면 2010년 4.9%를 기록한 뒤, 계속 감소 추세입니다.

직격탄을 맞은 곳은 지방입니다.

올해 10월 기준, 인구가 줄어들면서 사라질 위험에 처한 시·군·구는 전체 228곳 중 97곳입니다.

빨간색과 주황색, 이곳이 위험지역인데 40%가 넘습니다.

보시다시피 대부분 수도권이 아닌 지방입니다.

이런 지역에선 지방재정 자립도가 낮아지는 반면, 노인을 대상으로 한 복지, 의료비 부담은 커집니다.

방금 보신 순천과 여수, 광양은 소멸 위험 직전의 '주의단계'에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소멸 위험이 덜하지만, 전입운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인구 영업사원'으로 내몰리는 지방 공무원들의 현실이, 어느 한 곳의 문제가 아닌 겁니다.

취재진은 불법을 넘나드는 위장전입의 현장을 직접 가봤습니다.

광양시청이 관리하는 정수장입니다.

산 정상에 있는 데다, 일반인 출입이 제한된 구역입니다.

정수장 측에 최근 전입신고를 한 것으로 파악된 순천시민 이름을 댔습니다.

[A씨/광양시청 공무원 : (OOO 씨는 여기 계시는 분이에요?) 안 계십니다. (OOO 씨랑 OOO 씨는?) 저희는 전혀 모르죠.]

하지만 취재가 계속되자, 위장 전입 사실을 시인했습니다.

광양시 한 공무원에 의해 최근 6명이 전입됐다는 겁니다.

[A씨/광양시청 공무원 : 6명을 전입했다고 하더라고요. (여기에?) 관사에요. (관사에 사람이 살고 있나요?) 안 살지. 살 수가 없습니다.]

전입 장소는 정수장 내 숙소입니다.

숙소에 들어가 보니, 사람이 산 흔적은 찾기 어렵습니다.

[(사람이 안 산 지는 꽤 오래된 거죠?) 네. (지금 여기에 6명이 전입된 상태고?) 네.]

연말만 되면, 공무원들에 의한 위장 전입이 비일비재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B씨/광양시청 공무원 : 공무원들 집이거나 아는 사람들 집에 위장전입시키기도 하고.]

지방 지자체들의 인구수는 다음 해 정부 교부세 배정의 주요 기준이 됩니다.

[백운석/순천시 기획예산실장 : 저희가 평균적으로 보면 한 30만원에서 40만원. (한 명당?) 네.]

주민 숫자에 초점을 맞춘 인구 대책부터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삼식/한양대 정책학과 교수 : 인구 (통계) 자체가 왜곡되니까 그걸 기반으로 지역에서 기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데 상당한 혼선을 일으킬 수 있어요. 지역사회를 오히려 망가뜨릴 수 있는 정책입니다.]

(영상디자인 : 곽세미 / 인턴기자 : 김승희·박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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