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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6주기…"'바보 미소' 당신이 그립습니다"

입력 2015-02-16 22:08 수정 2015-02-25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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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6년 전 오늘,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 떠났습니다. 우리 현대사의 고비 마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한 발 나아가는 데 힘을 실어주었던 고 김수환 추기경입니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던 추기경을 주정완 기자와 함께 만나보시죠.

[기자]

[김수환 추기경/1987년 박종철 추모미사 : 이 정권의 뿌리에는 과연 양심과 도덕이 있는지, 아니면 이 정권의 뿌리에는 총칼이 있을 뿐인지.]

권력자들에겐 양심의 소리를 일깨우는 시대의 예언자였고,

[김수환 추기경/1999년 서울 장지동 화훼마을 방문 : 여러분을 찾아뵌 것이 어떤 의미로는 너무 늦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소외된 이들에겐 다정한 친구였던 김수환 추기경.

순교자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어머니 권유로 신부가 되고 한국 천주교회 첫 추기경이 됐습니다.

[대한뉴스/1969년 5월 31일 : 로마에서 추기경 서품을 받고 돌아오는 김수환 서울대교구장이 교황기를 든 성직자와 신도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영광의 순간은 잠깐.

민청학련 사건 등 시국사건마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정부를 비판하면서 공안당국의 표적이 됐습니다.

[김수환 추기경/1979년 농민 납치·폭행 사건 기도회 : 권력을 잡고 있으면 진실을 얼마든지 그 권력에 의해서 유린할 수 있다. 인권 유린이 권력에 의해서 얼마든지 저질러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80년대 민주화 운동 시절, 김 추기경이 머물던 명동성당은 핍박받는 이들의 마지막 피난처였고 민주화의 성지였습니다.

[김수환 추기경/1987년 박종철 추모미사 : 지금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 아들, 너희 제자, 너희 젊은이, 너희 국민의 한 사람인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

87년 6월 명동성당으로 피신한 학생들을 정부 관계자들이 체포하러 오자 엄준히 꾸짖어 돌려보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생전 인터뷰(평화방송) : 여기 공권력이 투입되면 맨 앞에 당신들이 만날 사람은 나다. 그리고 내 뒤에 우리 신부들이 있다. 당신들은 나를 밟고, 신부들도 밟고, 수녀들도 밟고 넘어서야 학생들하고 만난다.]

김 추기경 선종 이후 보수화 된 한국 천주교회가 기계적 중립을 내세우는 바람에, 명동성당은 더 이상 약자들의 성소가 아니라는 지적은 안타깝습니다.

30년간 한국 천주교회 수장으로 네 분의 교황을 모신 김 추기경.

103위 순교성인의 시성식을 열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두 차례 방한을 성사시키는 등 한국 천주교의 위상도 드높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에도 화려한 성장의 그늘에 가린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일 역시 게을리 하지 않았고, 종교간 벽을 허물고 화합하는 일에도 앞장 섰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생전 인터뷰(평화방송) : 모든 종교는, 특별히 큰 종교는 다 존경할 만한 데가 있고, 그 안에 영성이랄까, 신비가 있어요. 그걸 존중하는 거야.]

김 추기경 제안으로 시작된 장기기증 약속은 13만 명을 넘었고, 자신도 사후 각막 기증으로 시각 장애인 2명에게 빛을 선물했습니다.

스스로 바보라고 부르며 넉넉한 미소로 소외된 이웃을 끌어 안았던 김 추기경.

점점 더 고단해지는 삶, 하지만 기댈 데 없는 현실. 선종 6주기를 맞은 오늘, 그가 더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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