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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에볼라 의료진' 정상훈 "3주 관찰 끝나…포옹해도 안전"

입력 2015-02-11 22:05 수정 2015-02-11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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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매년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지요. 작년의 선정된 인물이 바로 에볼라 바이러스 의료진들이었습니다. 에볼라 전사들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에볼라와 싸우면서 환자를 돌보는 대단한 분들인데요. 오늘(11일) 에볼라 구호활동을 다녀온 의사 한 분을 저희가 어렵게 모셨는데 구호활동을 한 국내의료진 가운데서는 최초의 언론 인터뷰이기도 합니다. 또 이분께서는 한국인 의사로서 최초로 에볼라 지역에 들어갔던 분이기도 하고요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정상훈 활동가를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 안녕하세요.]

[앵커]

에볼라 발병지역을 다녀오신 의사분 중에는 지금 처음으로 언론하고 처음 인터뷰하시는 셈인데요. 국경없는의사회에서도 어느 분들이 가셨는지 몰랐는데 오늘 하여간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서신 셈이 됐습니다. 그러면 언제 가셨습니까. 시에라리온으로 가셨다고 들었는데.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 네 그렇습니다. 11월 말에 시에라리온으로 들어갔고요. 1월 초에 출국을 했으니까 5주 정도. 시에라리온에 카일라훈이라는 지역에서 근무했습니다.]

[앵커]

제가 듣기로는 시에라리온이 그 당시에는 굉장히 발병 환자가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 네 그렇습니다. 카일라훈에 에볼라 관리센터에서 근무를 했는데요. 제가 갔을 때 50명 넘는 환자분들이 계셨고요 하지만 제가 나올 때쯤에는 환자들이 급격히 줄어서 마지막으로 환자가 없는 상태로 카일라훈을 떠났습니다.]

[앵커]

다행입니다. 그럼 그 이후에는 상당히 기간이 지금 지나 있는 상황인데 활동을 끝내신 다음에도 그 사이에는 뭘 하셨습니까 격리돼 계셨나요.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 물론입니다. 3주간 자가 관찰이 끝났기 때문에 저하고 포옹하셔도 됩니다.]

[앵커]

그건 좀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아마 지금 말씀하신 그 뜻은 에볼라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 같은데요.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 그렇습니다. 사실 미국에서 한때 피어볼라라고 공포와 에볼라를 합성한 단어가 유행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에볼라에 대한 공포가 사실 이상으로 과장된 면이 있다고 봅니다. 제가 시에라리온 지역에 갔을 때 느꼈던 것은 이 에볼라 감염이 충분히 통제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앵커]

그런데 의료진도 많이 숨졌잖습니까?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 그러니까 그 경우는 현지 의료인을 말하는 거고요.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원래 일하고 있던 의료진 같은 경우에는 사실 에볼라 환자들과 함께 살고 있잖아요. 지역 사회에서. 그 분들의 대부분은 에볼라 관리센터나 의료기관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감염이 된 거고요. 저와 같은 해외 활동가 같은 경우에는 몇 분이 감염이 되긴 했지만 사실 전체 국경없는의사회만으로 따져도 700명 넘는 분들이 나갔다 들어오시고 했는데 세 분 정도만 감염 사례가 있을 겁니다. 실제로는 위험이 높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아무튼 그러나 들어오는 경로는 충분히 차단되어 있으니까 크게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 그렇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한국 사회를 에볼라 감염으로부터 막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사실은 더 많은 의료진이 서아프리카 지역으로 가서 그 지역의 에볼라 감염을 막는 것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앵커]

원천적으로 예방하자, 그런 말씀으로 이해하겠습니다. 도착하자마자 개인적으로 굉장히 충격을 받으셨을 거 같습니다.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 제가 한국에서 꽤 오랫동안 진료활동을 했는데요, 제가 맡은 환자의 반 이상이 사망하는 그런 경험은 하지 못했거든요, 제가 갔을 때 50분 정도 있으셨는데 정말 반 정도는 사망하셨고요, 반 정도는 생존하셨는데요. 굉장히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고 특히나 잘 아시지만 아직 에볼라 치료제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의료인의 역할이 굉장히 제한적이거든요, 결국은 저희가 의사로서 해드릴 건 많지 않고 단지 환자들이 스스로 싸워 이겨서 생존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의사로서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앵커]

돌보았던 환자 중에 특별히 잊지 못하는 환자도 있을 거 같습니다.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 굉장히 사례는 많았는데요, 한 분 정도 말씀드리면 20대 젊은 남자환자였는데 입원한지 며칠 만에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져서 반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거의 자극의 반응이 없는 상태로 이틀이 지속됐는데 의료진 내부에서 논쟁 아닌 논쟁이 있었어요, 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이분의 고통을 지속하는, 고통을 늘리는 거밖에 되지 않는다, 차라리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환자를 위해 나은 거 아니냐 이런 의견이 있었고요. 하지만 치료를 계속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 다음날부터 이 환자분이 의식을 되찾더니 회복이 조금씩 조금씩 되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일주일 뒤에 건강하게 퇴원을 하셨고요, 이 젊은이의 형과 15~6살 정도 된 여동생도 다 환자였거든요, 먼저 완치된 상태였고. 그러나 이 3남매의 부모님은 돌아가신 상태였고요, 에볼라로.]

[앵커]

아주 잘 된 행운이 따른 일이 수도 있었던 거 같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굉장히 많이 보였을 거 같습니다.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 물론입니다, 제가 현장에 갔을 때 한마디로 그 느낌을 표현하자면 가혹하다는 건데요, 이게 더 잔인한 게 뭐냐면 에볼라 감염이 사회적으로 약자 그래서 보호해야 한다는 어린이나 임산부의 경우에는 에볼라 감염에 굉장히 취약하고 사망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있는 동안 어린 환자 특히 5세 이하의 환자들이 꽤 있었는데요, 제가 있는 5주 동안에. 안타깝게도 한 명도 생존하지 못했습니다, 5세 이하의 어린이의 경우에는. 그것이 너무 비참하고 안타깝더라고요.]

[앵커]

의사로서는 특히 견디기 힘든 순간의 연속이었을 거 같습니다.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 저만이 아니고 갔던 모든 의사 분들이 그런 아픈 경험을 했습니다.]

[앵커]

두려움을 느끼진 않습니까? 의사로서도? 늘 그분들과 같이 있는데.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 당연히 느끼고요. 사실 이제 저희가 들어가기 전에 며칠 정도 교육을 받고, 저도 당연히 정보를 많이…미리 좀 사전교육을 했고 각오도 했죠. 하지만 처음 이제 에볼라 관리 센터에 고 위험 지역이라고, 환자들과 접촉하는 병동을 고 위험 지역이라고 부르거든요. 거기에 보호 장구를 입고 들어가서 처음으로 환자분의 팔에서 혈액을 채취하려고 할 때 정말 좀 떨리더라고요. 사실 한국에서 굉장히 많이 해본 일인데도, 환자분의 몸에 바늘을 찌르고, 이게 혹시라도 제가 이 바늘에 찔리게 됐을 경우에 저도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좀 두려웠는데 익숙해지게 되더라고요.]

[앵커]

지금 그 현장 화면을 잠깐 좀 보고 있는데요. 여기 지금 정상훈 활동가가 나오고 계십니다. 방역복을 입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일일 것 같습니다.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 예 입는데 한 10분 15분 정도 걸리고요. 그래서 들어가기 전에 저희가 카일라훈으로 가기 전에 한 이틀정도 저 옷을 이제 개인보호 장구라고 부르는데요. PPE라고 말씀하시는데, 저거 입는 훈련을 한 이틀 정도 합니다. 훈련을 해도 처음에 이제 제가 들어간 날 한 10분 정도 지나니까 정말 빨리 나가고 싶은 그런 맘이 들 정도로 굉장히 저기가 아프리카기 때문에 그리고 이제 천막 시설로 되어있기 때문에 들어가면 정말 땀이 비 오듯이 흘러서 적응에 좀 시간이 필요하죠.]

[앵커]

저렇게 치료활동을 한 다음에 이제 벗는 작업도 있는데 저것도 그렇게 쉽지 않다면서요?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 의료진이 사실 지금까지 그러니까 해외 활동가들이요, 몇 명 이렇게 에볼라에 감염된 사례가 있는데, 사실 대부분 바로 이 개인보호 장구를 벗는 과정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노출된 것으로 지금 추정되고 있습니다.]

[앵커]

그럴 수밖에 없겠죠. 그러니깐 환자를 접촉하고 난 다음이니깐.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 지금 이제 화면에서 보이듯이 개인보호 장구의 표면은 에볼라 바이러스에 오염되어 있다고 봐야 되거든요, 이걸 벗을 때 그런데 이제 저희가 이 저 옷을 입고 환자병동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50분으로 제한이 되어 있어요. 이제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에. 이 50분 지나고 나면 정말 빨리 나가고 싶은 맘이 들기 때문에 서두르게 됩니다. 그래서 실수를 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이렇게 옷을 벗을 때 표면에 노출 될 수가 있기 때문인 거죠.]

[앵커]

화면은 다시 완치돼서 좋아하는 분의 모습인데 이분 지금 퇴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의료진들이 박수쳐주고. 여자 분이죠? (그렇습니다) 직접치료 하셨나요?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 제가 치료한 환자는 아닌 것 같아요.]

[앵커]

저렇게 한번 겪고 나면 면역이 생겨서 다시 에볼라에 감염이 되지 않는 건가요?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 일정기간은 그런데요, 아직 현대 의학의 지식이 얼마동안 이분들이 면역을 갖는지 아직 완전히 밝혀져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일정 기간 면역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앵커]

여기뿐만이 아니라 보니까 정 선생님은 아르메니아, 레바논 이런 곳도 다녀오셨더라고요. 봉사활동하시러. 다 위험지역일 때 가신 걸로 알고 있는데, 대개 의사가 되시면 개업을 해서 경제적으로도 많이 벌고, 그냥 쉽게 얘기하면 그렇게 생각들을 하십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안하십니까.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하면서 그런 질문을 몇 차례 받았는데요. 사실 저도 이제 뭔가 더 멋진 답변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았는데 제가 드리는 말씀은, 저는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이런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건 제가 사람 된 도리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단지 하고 있다는 안도감 그것이 저를 만족하게 하고 또 행복하게 하는 것 같고요. 그래서 이런 활동을 하면서 또 매번 활동을 할 때마다 세상에 대해서 배웁니다.]

[앵커]

그러면 만일에 에볼라 발병 지역으로 또 가야된다고 하면 또 가시겠네요.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 그런 얘기를 했었는데요, 만약에 이 유행이 다시 심해진다든지 또 다른 일손이 필요하다면 저는 다시 갈 생각이 있습니다.]

[앵커]

결혼하셨죠?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 네 했습니다.]

[앵커]

사적인 질문은 잘 안 드리는 편인데, 이번 경우는 드려도 될 것 같습니다. 많이 말리지 않습니까? 자녀분도 둘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 네 12살과 5살. 두 아들이 있고요. 다행히도 저희 가족이 크게 말리지 않았습니다. 일단 세 번째 현장 활동이었고요 그 과정에서 글쎄요 저를 굉장히 믿어주는 것 같아요. 무슨 근거로 믿어주는지 모르겠는데요. 저를 이제 믿어주기 때문에 특별히 말리진 않았고 오히려 제 친구들이 많이 말렸습니다. 제 친구들이 어떻게 말렸냐면 뜻은 좋은데 네가 꼭 갈 필요 없는 것 아니냐. 그렇게 좀 많이 말렸는데, 제가 답변하기로는 모두를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럼 누가 가겠는가. 누군가는 먼저 시작해야하는 것 아니냐. 뭐 이런 생각에서 하게 되었고, 그래서 가족들은 오히려 크게 말리지 않고 저를 정말 믿어주고 지원해주고 기다려준 게 이 자리를 빌어서 정말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앵커]

네 알겠습니다. 에볼라 발병지역 시에라리온에 한국 의사로서는 처음으로 다녀오신 국경없는의사회 정상훈 선생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정상훈 의사/국경없는의사회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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