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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닭은 초식동물인데…닭고기·계란 남긴 걸 먹인다?

입력 2015-02-13 20:14 수정 2015-02-1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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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닭은 초식동물인데…닭고기·계란 남긴 걸 먹인다?
밤사이 달린 댓글이 천여 개가 넘었습니다.

'충격이다… 이런 사료를 먹이다니 책임자를 찾아 문책해라'
'먹는 건 중국산이 국산보다 낫다'
'정말 나쁘다, 돈 벌자고 못할 짓이 없다'

우리 먹거리에 대한 불신의 골은 깊었습니다. 사료는 소비자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분노는 더 컸습니다.

그중 유독 눈길이 멈추는 댓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닭과 소는 초식동물이다. 닭고기, 소고기 먹다 남은 걸 다시 닭과 소가 먹는다니…'

남은 음식물에는 상당 부분 육류가 포함됐을 터였습니다. 잡식인 돼지와 달리, 초식인 닭과 소에게 남은 음식물을 먹인다는 건 말그대로 '상식 밖'의 행위였던 겁니다.

'아뿔싸'

10분이나 되는 심층 리포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저는 이 부분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동물의 선천적 식생을 거스르는 인간의 일탈 행위가 어떤 결과를 불러 올수 있는지 파헤쳤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AI(조류독감) 피해액은 예상 밖으로 매우 큽니다. 2013년에 약 3500억 원이었는데, 지난해는 이를 훨씬 웃돌 것으로 우려됩니다.

무엇보다 정부가 AI의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고 있지 못합니다. '철새를 통해 옮겨졌다'는 대답 뿐입니다.

정부는 AI 예방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남은 음식물 사료'(이하 '짬 사료')가 이토록 광범위하게 사용된 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그렇습니다.

'짬사료'는 이미 AI의 주요 원인으로 수차례 지목됐습니다.

정책 입안자들이 양계 농가에 대한 현장 답사를 했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그 현장을 보고도 '짬사료' 유통을 방치했다면 심각한 직무유기가 아닐수 없습니다.

수 차례 찾은 '짬 사료' 양계 농가. 그 현장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참담함, 그자체였습니다. 감히 '위생'이라는 말을 꺼낼 수도 없었습니다. 걸쭉한 짬들은 보기에도 흉측했고 과음한 뒤 토한 것과 똑같은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닭들도 이런 사료를 즐겨 먹을리가 없습니다. 대량으로 남은 짬사료는 농장에 그대로 버려졌습니다.

남은음식물 매립, 폐기는 형사처벌 사항인데, 농가들이 '짬사료'를 대량으로 버리는 행위는 처벌이 없었습니다.

축산업자들 사이에선 이를 '짬 세탁'이라고 불렀습니다.

'돈세탁'을 통해 부정한 돈이 버젓이 유통는 것처럼 '짬세탁'을 통해 음식물쓰레기가 아무데나 버려지는 현실을 꼬집은 겁니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런 행위를 왜 보고만 있을까.

정부는 지난해부터 음식물에서 나온 물기(음폐수)를 바다에 버리는 행위를 금지시켰습니다. 당장 민간음식물처리 업체들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전국에 110개 음식물 처리업체 중 89개(80%)를 민간에서 운영합니다.그런데 민간 업체는 건조공정이 없습니다. 비용 때문입니다. 걸쭉한 음식물을 보송보송해질 때까지 말리려면 많은 에너지 비용이 필요합니다.

민간처리 업체는 오히려 '우리가 이렇게라도 안하면 음식물쓰레기 대란이 난다'고 말합니다. '짬사료'를 금지하면 당장 하루 650톤의 남은 음식물을 처리할 방법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공의 영역'을 민간에 떠 넘긴 꼴이라고 지적합니다. 정 안되면 민간 업체에 건조공정 비용 만이라도 지자체가 보조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처음 제보를 했던 양계농가 A씨는 이제 '짬사료'를 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짬사료'를 끊고부터는 폐사도 크게 줄고 달걀 냄새도 좋아져 오히려 매출이 늘었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것을 제가 왜 그 더러운 짬을 들여와 1년동안 생고생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짬사료는 공짜입니다. 일부 처리업체는 짬사료를 받아주는 댓가로 양계 농가에 톤당 몇 만원씩 뒷돈을 주기도 합니다. 남은 음식물도 없애고 사료 비용도 줄이고. 처음에는 분명히 그런 취지였을 겁니다.

'누이좋고 매부좋은 윈윈 전략'

하지만 진지한 고민없이 눈앞의 편익만을 쫓은 결과는 재앙입니다. 누이도, 매부도 모두 죽이는 최악의 선택인 겁니다.

보도 후 하나 걸리는 게 있습니다. '이제 닭 못 먹겠다'는 시민들 반응입니다. 가뜩이나 어렵다는 양계농가입니다. 그 한숨소리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닭고기, 달걀을 넘어 먹거리 전체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불편한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임진택 기자 jt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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