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오늘(19일)은 '세계 아동학대 예방의 날'입니다. 학대받는 아동이 얼마나 많으면 이렇게 날까지 정해 경각심을 불어넣어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드는데요. 지난 10월만 보면 전국에서 한 달간 접수된 아동 학대 신고가 1400건에 달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50% 가까이 늘어난 건데요. 9월에 아동특례법이 시행되면서 신고가 늘어난 걸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매 맞는 아이들이 그만큼 많은데도 그동안 '보호 울타리'의 밖에 있었다는 얘기인데요. 손용석 기자가 취재한 사례들은 말 그대로 아픈 아이들과 못난 어른들입니다.
손용석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11일 새벽 2시, 경기도의 한 병원 앞입니다.
신고 전화를 받은 아동보호기관 상담사들이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한정화/아동보호상담사 : 지금 아빠가 인사불성이라서 대화가 안 되고, 술을 마시고 아이를 많이 때렸나 봐요. 남자아이 배를. 엄마와 같이 병원으로 오고 있어요.]
경찰로부터 아동 학대가 있다는 연락를 받고 긴급 출동한 겁니다.
피해 아이와 어머니는 경찰이 병원에 데리고 왔습니다.
[경찰 관계자 : 어머니가 직장암 수술하고 요양 중에 있다가 오늘 쉬러 와서 정서적으로 불안해요. 아버지가 덩치가 좋은가 봐. 술만 먹으면 때리나 봐.]
[학대 아동 보호자 : 애 아빠가 여기 가슴을 막 때리는데 겁이 나더라고.]
아버지가 가위로 아들 가슴을 때렸다는 끔찍한 얘기도 합니다.
[학대 아동 보호자 : 오늘도 쓰레기라 부르며 애를 때리는 거예요. 전 XX년이라 부르고, 매일 소주 한 병 반 이상 먹어요. 이번엔 가위로 애를 때리며 죽이려고 하고.]
새벽 3시, 결국 아이는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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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울리는 아동 학대 신고 전화. 신고자는 바로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때렸다는 겁니다. 심하게 맞을 때는 구토까지 나올 정도였다고 합니다.
[학대 피해 아동 : 여기도 다쳤는데 다 나았고요. 여기도 변기통에 박아서 어제하고 지난번엔 병원에 가서 학교도 못 갔어요. 어떨 때는 아빠한테 맞은 후로 막 토할 것 같아 겨우 참았어요.]
아버지는 왜 아들을 때렸을까.
[학대 피해 아동 : 양치질을 했어요. 아빠가 빡빡 닦으라고 해서 닦았는데 더 빡빡 닦으라고 해서 '어떻게요?' 하니까 때렸어요. (머리는 왜 아파?) 변기통에 맞았다니까요. (부딪혔어?) 그래서 울었어요.]
아이의 소원은 단 하나입니다.
부모의 다툼이 잦았고, 이 때문에 아빠가 폭력을 휘두른다는 겁니다.
[학대 피해 아동 : (엄마 아빠한테 바라는 게 있어?) 다신 안 싸우는 거요.]
취재진이 옆에서 지켜본 아동 학대 신고 전화의 가해자는 대부분 친부모였습니다.
실제 통계를 봐도 지난해 가해자의 80%가 부모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김희정 부장/세이브 더 칠드런 : 대부분 아동학대 사망 사건도 조사를 하면 시작은 단순한 체벌로 시작해요. 어디 한 대 때리기 시작해서 점점 강도를 더해가면서 학대까지 가거든요.]
결국 주변에서 작은 학대부터 눈여겨 보고, 이를 막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강현아 교수/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 (울산계모 사건도) 지속적인 학대가 있었다는 건 많이 나왔어요. 다리가 부러졌고, 손에 화상도 입었고, 엄마가 실수로 샤워기를 틀었다고 했는데 이런 것을 (주변에서) 조금 더 고민을 했더라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만 해주셨더라도…]
하지만 적극적인 신고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보호 기관의 즉각적인 대처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력 부족이 문제입니다.
[안소영/굿네이버스 용인지부장 : 저희 관할 지역만 해도 아동 인구가 28만명 정도 됩니다. 하지만 저희 상담원은 6명입니다. 한 상담원당 4만 명이 넘는 아동을 맡고 있어요.]
관련 기관들의 유기적인 협조도 부족합니다.
[아동보호 상담사 : 거주지 확인도 하는데 협조가 잘 되는 동도 있지만 잘 안되는 곳도 있어요. 개인정보보호 때문에.]
아동 학대 예방이 말로 그치지 않으려면 어른들의 더 많은 반성과 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