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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꿈은 죽지 않는다' 신영록의 미소

입력 2014-12-29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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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꿈은 죽지 않는다' 신영록의 미소


신영록 선수를 만났습니다. 2011년 5월에 심장마비로 그라운드에 쓰러졌다가 생명을 건진 뒤 힘겹게 재활 치료 중인 그를, 2014년이 지나가기 전에 대한축구협회에서 만났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들과 한 게임업체가 후원금을 전달하는 자리였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신영록이었습니다.

행사는 오전 11시부터인데, 취재기자는 40분 정도 먼저 축구협회에 도착했습니다. 협회 정문을 들어서면 전시된 유니폼들이 보이는데, 그 사이를 서서히 걷고 있는 신 선수가 보였습니다. 미소를 띠고 있는 신 선수, 걸음은 불편해보였지만 묘하게도 리듬감이 느껴졌습니다. 박항서 상주 감독이 신 선수를 부축해 김병지 선수와 홍명보 윤정환 감독, 최태욱 이민성 선수 등 2002년 4강 주역들이 나란히 앉아있는 테이블로 안내했습니다. 서로 근황을 물으며 반가움을 표시하는 자리, 신 선수는 빠르게 오가는 대화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진 못했지만, 고갯짓으로 대화에 참여하며 내내 웃어보였습니다.

디디에 드록바처럼 저돌적으로 그라운드를 누벼 별명까지도 '영록바'였던 신영록. 많이 호전됐다는 소식을 계속 들어왔지만 실제로 마주한 신 선수는 아직은 버거워보였습니다. 사고 후 벌써 4년여, 신 선수의 일상은 이렇습니다. 서울의 병원에서 인지·언어·물리치료 등을 꾸준히 받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 전은수씨와 함께 산책도 하고 커피숍도 다니며 차츰 일상적인 삶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초기 주 5회였던 재활치료는 비용 문제 때문에 주 3회로 줄였습니다. 5회 기준으로 한 달 비용이 500여만원, 현재까지 든 치료비만 3억여원입니다. 프로축구선수가 개인사업자라서 산재로도 인정되지 않아 별도의 지원이 없기 때문에,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는 복지원에서 치료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전문병원에 비해 복지원의 치료는 일정치 않다고 합니다.

손이 많이 떨려 혼자서 연필을 잡거나, 젓가락을 쥐거나, 숫가락으로 떠먹거나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누군가 옆에서 도와줘야 합니다. 옷을 입는 것도 가벼운 점퍼의 지퍼를 내리는 수준입니다. 혼자서 아주 서서히 걷는 것도 가능한데, 운동선수였고 아직 젊다보니, 비슷한 증세의 다른 환자들보다 재활속도가 빠른 편입니다. 가족들의 간호도 수년 째 정성입니다. 어머니는 아직 단 한 번도 병원밥을 먹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극 정성만이 아들의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신 선수의 통원을 책임지고, 체대를 나온 동생도 형의 재활에 든든한 지원군입니다.

신 선수는 이제 모든 걸 기억합니다. 다만 알고 있는 걸 표현하는 입의 움직임이 느리고, 손이 떨릴 뿐입니다. 초기엔 인지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누군가를 만나도 이내 잊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만난 사람을 다 기억하고, 또 대화 내용을 알아듣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을 피한다고 합니다. 자신을 향한 동정이나 가엽게 보는 시선을 그대로 느끼고 불편해서일 겁니다.

사고가 발생 4년여, 신 선수는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담당주치의에겐 "언제쯤 나아지냐"고 계속해서 되묻고, 팬들에게는 "계속 좋아지고 있다"고 또박또박 얘기합니다. 그저껜 신 선수의 단짝 친구들이 집에 찾아왔다고 합니다. 프로축구가 시즌 중이거나 신 선수가 병원에 있어 만나지 못했던 이들은 오랜만의 만남에서 '눈이 부시도록 좋아하고 웃었다'는 게 신 선수 어머니 설명입니다.

그 자리에서 신 선수는 "축구 하고 싶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고 합니다. 어머님은 "영록이 꿈은 10년이 지나서라도, 20년이 지나서라도 언젠간 이뤄질 거라 믿는다. 끝까지 안고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언젠가 일어나서 다시 그라운드 위에 굳게 서는 그날까지, 모든 이의 성원이 지속되길 바랍니다.

송지영 스포츠문화부 기자 jydreams@joongang.co.kr
사진 = 중앙 포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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