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발언을 계속 쏟아내는 등 미국의 압박이 점차 거세지고 있지만 이를 상대할 국내 통상 당국은 조직 개편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통상 조직을 현재의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분리해 외교부로 이관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조직 개편이 마무리될 때까지 당분간 혼선이 예상된다.
외신 등에 따르면 미 상원은 한미 FTA 재협상을 진두지휘할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 로버트 라이시저에 대한 인준안을 지난 11일 가결했다. 무역대표부 수장이 상원 인준을 받아 정식 취임, 한미 FTA 재협상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산업부는 협상 파트너인 USTR 대표에 누가 오느냐에 촉각을 곤두 세웠다. 협상을 총괄할 USTR 대표의 정책 성향에 따라 한미 FTA 재협상이 좌우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보호무역주의자로 알려진 라이시저 대표는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정부에서 USTR 부대표를 지냈다. 라이시저는 USTR을 떠난 이후에도 미국 철강 산업을 대리하면서 중국 등을 겨냥해 악명 높은 '반덤핑 법'을 공격적으로 활용해 수입을 억제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미 대통령도 한미 FTA 재협상 발언을 이어가며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문 대통령 취임 첫날인 지난 10일 한미 정상간 통화를 하면서 제일 먼저 FTA 재협상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FTA 재협상 테이블에 앉게 될 미 대표는 정해졌지만 한국 측 대표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통상 업무를 산업부에서 외교부로 이관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등 아직 조직 개편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통상 조직을 외교부에서 산업부로 보낸 박근혜 정부에 대해 "잘못된 결정이었고, 통상 부문은 다시 외교부로 맡기는 게 맞겠다"고 했다.
통상 조직이 산업부로 넘어가면서 기존 장관급 조직이 차관보 소관인 실(室) 단위로 축소되면서 현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판단에서다. 통상 조직이 외교부로 옮겨가면 참여 정부 당시, 장관급인 통상교섭본부장이 부활할 수 있다.
허윤 서강대 교수는 "미국과 중국은 통상을 자신들의 글로벌 전략을 실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에 얼마나 기여할 것인지 등 경제적 요인만 갖고 미시적으로 접근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통상 마찰을 관리할 범 정부 컨트롤 타워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통령 직속기구인 국가무역위원회(National Trade Council)를 신설해 통상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안덕근 서울대 교수는 "지금까지는 단순히 통상 규범에 합치되느냐를 주로 봤는데 이제는 규범 합치여부와는 별개로 다양한 통상 압력에 대한 전략적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대외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미국도 통상 정책을 총괄하는 NTC를 신설했는데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도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허 교수는 "통상 뿐 아니라 외교, 안보, 농어업 등을 포괄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정책 조정능력을 갖는 조직이 적합하다"고 주문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