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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주진오 교수 "정부수립 때 건국이란 말 안 써…의미 깎아내려선 안 돼"

입력 2016-08-15 20:55 수정 2016-08-15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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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계속해서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주진오 교수를 연결할 텐데 지금 연결이 돼 있습니까? 여보세요.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 안녕하십니까?]

[앵커]

오늘(15일) 행사 중에 전화 받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 지금 현재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역사콘서트가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앵커]

제가 아까 조금 앞에 이영훈 교수하고는 인터뷰를 했는데요. 그 내용을 듣지는 못하셨겠습니다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 제가 들었습니다.]

[앵커]

그렇습니까? 그러면 간단하게 반론과 함께 주진오 교수의 입장도 들을 텐데. 우선 광복독립이라는 것은 해방만 가지고 건국을 얘기할 수는 없는 거 아니냐. 다시 말하면 48년 8월에 같은 15일입니다마는…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독립이 시작된 것이다라는 요지의 말씀이었습니다, 이영훈 교수께서는. 혹시 반론 있으십니까?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 사실 1945년 8월 15일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식민지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기념하는 날이고 그 당시의 사람들이 정말 열광적으로 환영했던 그러한 날이었습니다. 왜 그날의 의미를 자꾸만 깎아내리려고 하는지 우선 답답하고요. 사실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기념되었습니다. 그때 대한민국 건국이란 말을 쓰지 않았어요. 바로 그분들이 굉장히 높이 평가하고 있는 국부라고까지 얘기하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바로 1919년을 대한민국 1년으로 간주했고요. 바로 1948년을 대한민국 30년이라고 표기했습니다. 그러면서 바로 그날 정부수립을 기념하는 날이다. 말하자면 말씀하신 대로 임시정부에서 임시라는 것을 빼고요. 이제 정식정부가 수립이 된 거죠.]

[앵커]

알겠습니다. 그런데… 잠깐만, 죄송합니다. 제가 시간 관리를 좀 해야 되기 때문에. 이 교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위대한 출발이고 그건 누구나 다 인정하는 바이고. 그것도 역시 계승한 것도 맞기는 맞는데. 다만 예를 들어서 말씀하시기는 그것은 하나의 잉태이고 출산은 아니지 않느냐, 그렇게 비유를 하셨습니다.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 그렇다면 도대체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이 대한민국의 임시정부의 법통을 개선한다고 되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저는 한국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든지 보수라고 했을 때는 가장 중요한 것은 헌법적인 가치를 지키는 일입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보수가 해야 될 역할인데 왜 자꾸만 헌법적인 가치를 부정하면서 그렇게 억지 주장들을 하시는지 참 이해할 수가 없고요. 왜 우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던 그런 역사적 의미를 자꾸만 이렇게 깎아내리고 그것을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려고 함으로써 자꾸만 혼선을 가져오고 여태까지 우리가 광복절을 8월 15일을 기념했을 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저는 알 수가 없거든요.]

[앵커]

알겠습니다. 제가 가능하면 보충질문을 안 드린다고 말씀드렸는데 주 교수께는 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왜냐하면 앞에 이영훈 교수의 의견에 대한 반론을 듣다 보니까 이 교수의 입장을 제가 또 반영을 해 드려야 되기 때문에 보충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물론 건국절이라는 것은 적어도 이승만 정부 당시에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이건 진행자의 의견은 아닙니다마는. 아마도 그래서 이영훈 교수나 건국절을 얘기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즉 다시 말해서 이승만 정부 당시의 48년을 건국절이라고 얘기한 것은 그 당시에는 있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이제 좀 뒤늦게나마 그 본래적 의미의 건국절을 찾자라는 그런 의미 아닐까요, 이영훈 교수가 얘기하는 것은.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 그런데 만약에 그것이 1948년에는 그랬다 치더라도 그 이후에 이승만 정권이 얼마나 오래 지속됐습니까? 오죽 오래했으면 4·19 혁명으로 무너지기까지. 그렇게 했는데요. 그때까지도 그런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다는 것의 역사적 의미를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앵커]

알겠습니다. 한 가지 질문만 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독립은 국제적인 사건이다. 다시 말하면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식 독립으로써 한 나라가 세워지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라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1919년에 임정은, 임시정부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바가 없지 않느냐. 48년의 정부 수립이야말로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때부터 건국절로 하자라는 의견이었습니다.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 당시의 국제적인 정세가 1919년에 바로 우리가 국제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은 아니죠. 그 당시 국제적인 상황을 고려해야지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마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였죠, 임시정부가. 물론 그러나 당시의 세계 질서가 제국주의 열강들이 지배하고 있는 그런 상황속에서 그것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수많은 분들이 의열단, 한인애국단 이런 걸 통해서 의열항쟁까지 벌여가면서 그런 국제적인 주목을 받으려고 애를 썼고 그것이 나중에 2차 세계대전 중에 중국을 비롯해서 미국, 영국 이런 나라들과 함께 합동작전을 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그런 식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나중에 혹시 두 분이 많이 토론하셨겠습니다마는 기회가 있으면 그런 자리를 갖도록 하죠. 오늘은 일단 여기서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분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주진오 교수님, 수고하셨습니다.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 감사합니다.]

[앵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주진오 교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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