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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전두환 첫 육성증언…"압축성장 비결은 용인술"

입력 2012-03-14 22:44 수정 2013-11-27 10:33

연희동 사저 지하에서 예일대 학생과 간담회…"대통령 7년씩 두번하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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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사저 지하에서 예일대 학생과 간담회…"대통령 7년씩 두번하려 했었다"

[앵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8년 퇴임한후 지금까지 대통령 재임시절을 회고하는 인터뷰를 한 적이 없습니다.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전두환 전 대통령이 오늘(14일) 예일대 학생들과 만나 재임시절 7년을 회고했습니다.

JTBC 카메라 앵글에 잡힌 전 전 대통령의 첫 육성 회고, 남궁욱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예일대 경영대학원 학생들과의 대화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 지하에서 열렸습니다.

원래 차고를 고쳐서 응접실로 꾸민 곳입니다.

전 전 대통령은 "좁아서 미안하다"면서도 집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여기에 앉아 있는 모두가 걱정 안 해도 된다. 북(한) 쪽에서 전쟁을 좋아하기 때문에 걔네들이 포를 쏘든지 뭘 써도 여기는 안전하다. 핵무기·원자탄 이외에는 어떤 걸 (북한이) 쏴도 안전하다.]

집을 짓게 된 경위도 자세히 설명합니다.

[내가 월남 (파병) 가서 연대장 하면서 그동안에 우리 집사람이 집을 혼자 지었다. 그래서 특히 이 집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고….]

오늘 간담회는 예일대 신지웅 교수와 학생들이 1980년대 한국경제가 압축성장한 비결을 육성으로 듣고 싶다며 간담회를 요청했고 전 전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이뤄졌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재임기간을 평가하는 자리를 외부인사들 가진 건 1988년 2월 퇴임후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렇게 '5공화국의 경제정책'이 주제인 만큼 전 전 대통령은 핵심 경제참모였던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을 대동했습니다.

[(나는) 원래 전문 분야가 군사작전이다. 경제문제에 대해선 사공일 박사에게 질문을 하고….]

그래도 마이너스 경제성장률과 고물가에 허덕이던 80년초 한국 경제를 빠르게 안정시킨 비결을 묻자 자부심에 차 직접 답변에 나섭니다.

[(1980년대)우리경제 성공한게 물가안정이 가장 성공요인이었다. 물가가 안정되니까 금융적인 여유가 생기고, 이래서 투자할 수 있었고 이런 여유로 해서 우리 나라에서, 자원 없는 나라에서 그래도 저축을 모두 열심히 해주고 해서 그 여분을 갖고 한 분야 한 분야 발전시키고 개척한 것이 이 정도까지 발전하지 않았나 믿고 있다.]

이렇게 예금고 얘기를 하다 추억에 젖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군인이나 공무원을 보면 같은 날 봉급을 준다. 같은 날 봉급을 주면 허세를 부리는 남자가 있다, 허세. "봉급받아 마누라 다 갖다 줄거면 우린 뭐하러 일하냐" 이러면서 (동료를) 유인해 술을 마신다. 무슨 말인지 알겠죠? 그래서 내가 대통령이 돼서 (각 가정에서) 가장 가까운 은행으로 송금하면서 부인 앞으로 보낸 거다, 봉급을. (그래서) 직장 다니는 사람들한테 "대통령 나쁜 놈이다"라고 욕을 많이 먹었다더라.]

이 대목에선 이순자 여사도 나섭니다.

[이 여사 : 조금 전에 대통령이 재밌게 말한다고 그렇게 했지만 월급까지 바로 은행에 넣는 것을 해서 예금고를 올리려는 노력을 정부 주도형으로 했기 때문에 예금고가 33%로 올라서 자립성장이 가능하게 됐다.]

전 전 대통령은 간담회 내내 이처럼 물가를 안정시키고 예금고를 올려서 압축성장을 할 수 있었던 첫째 비결로 '용인술'로 꼽았습니다.

적재적소에 사람을 잘 써 경제를 살렸단 겁니다.

[내가 군사작전 이외엔 전문가가 아니니까 여러 전분야를 선발해 보좌진을 쓰고 주요직을 맡겼다. 개인적으론 전혀 인연없는 사람을. 내가 아는 사람보다 내 보좌진이 아는 사람들을 전부 좋은 사람들을 추천해서 그 사람들 덕을 많이 봤다.]

영어를 곁들인 이 여사의 부연설명이 또 이어집니다.

[이순자 여사 : 이 양반 재임했을 때 우리가 이북보다 못살았다. 그거 아는 사람 별로 없다. 저는 마누라지만 (그래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애브리 이어(매년) (성장률) 10퍼센트…. 아마 그런 나라 우리 나라뿐이었다, 80년대에.]

비서진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쓰기 위해 요즘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간담회에선 바로 이 회고록에 담길 법한 얘기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그 중엔 대통령을 한번 더 하려 했다는 고백도 나왔습니다.

[(내가) 대통령을 7년 했는데, 7년·7년 두번 하려다가 우리 나라 선배 대통령들이 "4년·4년 두번 한다"고 해놓고 3~4번 하려다 여러 가지 정치혼란이 생기고 (그랬다). 이래서 나도 7년·7년 두 번을 프랑스 식으로 그러려다 '잘못하면 내가 (유혹에) 빠져 3~4번 해야겠다'는 이런 모순에 빠진다거나 불행한 사태가 일어날까봐 난 딱 7년만 했다. 내가 7년을 딱 하고 시범을 보이고 모범적으로 한번 하고 그 다음에 후임 대통령들은 5년씩만 해라 이랬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까 그 분들에게도 7년을 하도록 해줬어야 하는데 5년으로 한 것이 지금와서는 후회가 된다. 5년은 너무 짧다.]

7년 단임제 약속을 지키고 민주적으로 정권을 이양한 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잘했다고 평가받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80년대 초 정치적 혼란기에 집권하게된 과정은 여전히 정치적 논란을 빚고 있는 대목입니다.

전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대통령이 되는 게 처음부터 목적은 아니였다는 주장을 내놨습니다.

[누구나 다 무슨 일을 맡으면 거기에 대한 연구를 하고, 그걸 해야겠단 구상을 하는데, 내가 원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대통령이 됐다면 이것보다 훨씬 더 잘했을 것이다. 그런데 전임 대통령이 급작스럽게 돌아가시고 사건을 내가 책임지고 조사를 하다보니까 내가 대통령이 됐다. 그때부터 대통령 공부도 하고…. 그런데로 실패하지 않고 (임기를) 끝낸 것이 감사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재임기간 동안 군사적 통치를 했단 비판에 대해서도 다른 목소리를 냈습니다.

[나는 군인 출신이니까 민주주의도 군인식으로 할 위험성이 있는데 사공일 장관 같은 분이 옆에 있어서 미국에서 교육받고 와서 아주 최선을 다해서 거의 미국식과 같은 민주주의를 했다.]

전 전 대통령은 "한국이 계속 핵무기를 개발했다면 어떻게 됐겠느냐"는 질문도 받았습니다.

그에 대한 그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답변엔 뼈있는 농담도 섞였습니다.

[우리나라는 핵 보유를 할 필요가 없다. 왜냐면 가장 친한 미국이 핵 보유를 하고 있고, 이북이 핵 보유를 하고 있는데 저 사람들 빨리 없애지 않으면 자살하는 거다. 소련이 위협 느낀다. 중국 스스로도 위협을 느낀다. 이북 김정일이 술 한잔 먹고 취해서 (핵 발사 버틍을) 눌러버리면 북경이 달 날아가지 않나.]

이렇게 간간이 유머감각도 발휘했습니다.

[너무 어려운 질문을 안 했으면 좋겠어. 공부를 안 했기 때문에. 원자재가 충분하면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됐겠지. 어디 (자원 많은) 좋은 데가 있으면 (질문한 학생이) 소개해달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재임중 국정철학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권력이 남용되지 않는 사회라고 강조했습니다.

[작은 권력이 있다고 해서 권력을 남용하면 이런 사회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항상 잘 판단해서 사리를 판단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권력남용이 없는 사회가 돼야 다 국민들이 행복한 삶을 사는 사회가 될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최초 육성 증언은 내일 밤 10시50분 JTBC를 통해 보다 상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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