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계엄군 과잉진압 기사는 '삭제'…5·18 '언론 검열' 문건

입력 2019-05-31 09:15 수정 2019-05-31 10:33

400쪽짜리 '기사 검열 문건' 최초 입수
'계엄군 조준 사격' 빼고 사망자 명단도 삭제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400쪽짜리 '기사 검열 문건' 최초 입수
'계엄군 조준 사격' 빼고 사망자 명단도 삭제

[앵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사령부가 한 일 가운데 광주 참상을 보도하려한 기사들을 모두 미리 검열해서 이를 삭제한 일도 있습니다. 이 과정이 담긴 400페이지 분량의 문건을 처음으로 저희 JTBC가 입수했는데요. 계엄군의 조준 사격은 시민들의 과격성을 내세운 기사로 고쳐졌고, 병원별로 안치된 시민 사망자 명단은 통째로 없어졌습니다.

김재현 기자입니다.

[기자]

광주 민주화 운동이 있었던 1980년 5월.

당시 계엄사령부 산하 보도검열단이 작성한 문건입니다.

'주요 관제 내용'이라는 내용의 보고서에는 매일 보도되는 기사들을 검열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매체 이름과 기사 제목, 내용이 적혀 있고 그 아래 '전삭'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습니다.

이 기사를 신문 지면에서 전체 삭제하라는 것입니다.

부분 삭제를 뜻하는 '부삭', '보류'로 분류된 기사도 있습니다.

'전삭', '부삭', '보류'된 기사 상당수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내용들입니다.

1980년 5월 22일자 검열 보고서에 담긴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40대 시민 1명이 계엄군이 조준 사격한 총에 맞아 그 자리에 쓰러졌다"는 기사 초고가 담겼습니다.

"계엄군이 애국가 소리를 듣자 메고 있던 M16으로 데모대 전열을 향해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는 묘사도 있습니다.

해당 기사에 대한 검열 판단은 '부분삭제'

실제 이날 발간된 신문에는 계엄군의 조준사격 내용이 모두 빠졌습니다.

대신 "무장한 데모 군중이 도청을 향해 총기를 난사했다" 등 시위대의 과격성이 강조된 기사로 바뀌었습니다.

[이민규/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무기를 다시 반납하고 조금 평화롭게 가는 이런 데 대해서는 절대로 보도해선 안 된다. 일종의 폭도로 규정한 거죠.]

계엄군의 과잉 진압 행태를 담은 기사들은 어김없이 삭제됐습니다.

"시민들의 머리와 등을 짓밟고, 옷을 벗겨 마구 때렸다"는 5월 22일자 동아방송 기사는 전체 삭제됐습니다.

5월 27일 중앙일보가 작성한 병원별로 안치된 시민 사망자 명단도 전체 삭제됐습니다.

[조성호/당시 한국일보 기자 : 대장을 들고서 시청 가서 검열받는 거예요. 처음에는 줄을 간단하게 지우고 심하면 한 칸을 다 없애 버리고 나중에 봐서 전체가 안 된다 싶으면 그냥 쫙 그어 버리고.]

광주민주화운동 기간인 1980년 5월 18일부터 수습 국면에 들어간 6월 1일까지, 16일 동안 삭제된 기사만 1만1000여 건에 달했습니다.

(영상디자인 : 곽세미)

 

 

관련기사

광주의 전두환, 발포…3인 증언으로 재구성한 '그날' 광주시민 앞에 선 김용장·허장환…5월의 진실 증언회 80년, 항쟁의 현장…'그 날의 흔적' 여전한 광주 금남로 "접근하면 하복부 쏴라"…당시 상무대에 '발포 명령' 도청·감시·추방에도…민주화의 숨은 조력자 '월요모임'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