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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또각 또각…또그닥 또그닥'

입력 2016-03-03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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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또그닥 또그닥.

작가의 구둣발 소리는 유난히 컸습니다. 구두굽이 닳지 않게 하려고 뒤축에 어지간히도 큰 징을 박아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1949년 발표된 작가 계용묵의 수필 < 구두 >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교과서에도 실렸던 작품이지요.

문제는 어느 저녁 어스름에 일어났습니다.

유난히 컸던 구두 소리 때문인지. 그를 무뢰배라 여긴, 앞서 가던 젊은 처자가 불안감에 별안간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한 겁니다.

또각 또각… 또그닥 또그닥…

젊은 처자와 점잖은 작가 사이에 벌어진 신경전.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지만 상황은 긴박했지요.

그는 억울했을 겁니다. 구두에 징을 박아뒀을 뿐인데. 별안간 시정잡배가 되어버렸으니 유쾌할 리 없었겠지요.

앞서 가던 처자 역시 억울하긴 마찬가지… 또그닥 또그닥 위협적인 발소리. 더구나 시절이 하 수상한데 말입니다.

테러방지법이 15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이 법이 통과되어야 안전한 나라. 안심할 수 있는 나라가 된다고는 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사람들의 불안감은 더욱 높아집니다.

사이버 망명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지도부가 찬성의견을 냈던 변협에서조차 천여 명의 변호사들이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

즉 테러방지법이 말하는 그 테러위험인물이 행여나 내가 되지는 않을까… 사람들은 걱정합니다.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혹시 나의 뒤를 밟는 것은 아닐까. 또각 또각 걸음을 재촉해야 하는…

젊은 처자의 까닭 모를 의심과 불안… 그것은 안심사회가 아닌 불신사회가 아닐까…

게다가 권한을 지닌 쪽은 점잖은 작가도 아니니 말입니다.

수필 < 구두 >의 마무리입니다.

못내 억울했던 작가는 구두의 징을 뽑아버렸다고 합니다. 시원했을 것 같습니다.

테러방지법을 둘러싼 논란과 우려들 역시 구두의 징처럼 시원하게 뽑히면 그만일 문제라면 좋겠습니다.

오늘(3일)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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