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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고객 횡포와 회사 압박에…상담원 극단적 선택

입력 2014-11-0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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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 통신 대기업의 고객센터 상담사가 목숨을 끊었습니다. 악성민원인의 횡포와 회사의 부당한 압박이 한 젊은이를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마지막으로 남긴 글에 상담사들의 열악한 근무실태와 회사의 부당한 업무강요를 폭로하면서 노동청에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이호진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기자]

지난달 21일 오후, 한 통신 대기업 전북 지역 고객센터 상담사 30살 이 모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자신의 승용차에서 번개탄을 피웠습니다.

이 씨의 가방에서는 봉투에 담긴 유서가 발견됐습니다.

봉투 표지에는 유서 내용을 노동청과 미래부, 방통위에 꼭 알려달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아버지 : 거리 지나가다 젊은 사람 보면 우리 아들 같고, 여태까지 서른 살 먹을
때까지 손가락질 한 번 안 받고 컸어요. 애가 그렇게 착했어요.]

숨진 이 씨는 고객센터 '민원팀' 소속이었습니다.

민원팀은 일반 부서에서 처리하지 못하는, 이른바 '악성 민원인'을 전담하는 부서입니다.

입사 동기 대부분이 그만뒀지만 여유가 없었던 이 씨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퇴직 동기 : 처음에 들어갔을 때 오리엔테이션 하잖아요, 그때만 하고 출근 안 하는 사람이 반 정도 돼요. 화장실도 갈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그만두는 사람이 대여섯 명 정도 되고.]

거의 매일 퇴근 시간을 넘겨 10시까지 일을 하며 회사를 다니던 이 씨에게 위기는 찾아왔습니다.

성실함과 능력을 인정받아 3년 6개월만에 팀장을 맡았던 때였습니다.

당시 이 씨는 퇴직한 동기에게 괴로움을 호소했습니다.

고객 한 명과 무려 6시간 동안 통화를 했습니다.

정상적인 상담은 아니었습니다.

고객이 전화기를 스피커폰으로 돌려놓은 채 다른 볼일 보면 혼자 전화기를 붙잡고 있어야 했습니다.

[퇴직 동기 : 고객님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다 말 없으면 그냥 계속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어요. 고객님 다른 것 하겠죠. 그러다가 가끔 소리가 나면 고객님, 그러다 또 아무말 없으면 가만히 있는 거에요.]

회의를 느끼던 이 씨는 결국 말꼬리를 잡던 한 고객과 문제가 생겼습니다.

감정이 상해 형식적으로 대답했던 겁니다.

고객은 이 씨를 해고시키지 않으면 가만 있지 않겠다고 회사에 항의했습니다.

결국 4월 말, 이 씨는 책임을 지고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친구 : 쉬운 말로 진상 손님인데 직접 찾아가서 손님한테 사과 드리고 만나려고
해도 안 만나주고, 그런 스트레스가 있었나 봐요.]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이 씨는 6개월만에 다시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민원팀 복귀 일주일여 만에 이 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친구 : 저희도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에요. 진실된 것은 OO만 알고 있겠죠.]

이 씨가 남긴 유서는 '노동청에 고발합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부서에 상관없이 단순 문의하는 고객에게도 IPTV와 홈 CCTV등을 팔아야 하는 지침이 있었다고 돼 있습니다.

[퇴직 동기 : 계속 권유를 하다 보면 고객이 짜증 나니까 민원을 또 걸어요. 왜 내가 하기 싫은데 왜 너는 자꾸 하라고 시키느냐, 욕을 퍼붓죠.]

회사가 정한 목표만큼 팔지 못하면 퇴근 못한다고도 적혀 있습니다.

해지 담당 부서는 해지를 막는 부서라고도 털어놨습니다.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면 질책받고, 해지 건수가 많으면 토요일에도 강제 출근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추가 근무를 해도 한 번도 근로계약서에는 있던 시간외 수당은 없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개인 휴대폰으로 터무니 없이 싼 가격을 안내하게 한 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회사는 모르는 척 한다고도 돼 있습니다.

노동청에서 조사를 나오면 예상 질문과 답변을 교육시킨다며, 지금까지 이같은 사실들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적어놓기도 했습니다.

유서는 이 집단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담당자 처벌, 진상규명을 부탁드린다며 마무리됩니다.

[아버지 : 편하게 대기업이니까 편하게 있는 줄 알았지. 이렇게 부대끼고 있는 줄
알았나. 죽고 나서 지금도 편하게 있는 줄 알지. 이런 줄 알았나.]

취재진이 만난 고객센터 측은 유서 내용 대부분을 부인했습니다.

실적이 낮다고 강제로 남긴 적이 없고, 직원들이 스스로 부족한 점을 메우려고 추가 근무를 했다는 겁니다.

일을 시킨 게 아닌만큼 시간외 수당을 줄 이유도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OO고객센터 관계자 : 개인적으로 남아서 일하는 경우가 있어요. 가라고 했는데 안 가는 걸 어떻게 합니까.]

상품 판매 역시 판매 기법의 하나일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씨 아버지는 아들이 죽어야만 했던 이유를 알기 위해 유서대로 노동청에 진정을 할 계획입니다.

[아버지 : 자기가 목숨을 끊을 정도가 됐으면 뭔가 이유가, 깊은 내막이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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