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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이브] 전우용 "일본, 중세적 배외주의 회귀"

입력 2014-02-06 13:12 수정 2014-02-0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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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선 '반성의 지성' 사라지고
-한국 일각선 '망언 동조' 사관까지…
-힘의 논리, 물질숭배주의가 사관 왜곡

■방송 : JTBC 정관용 라이브 (11:40-12:55)
■진행 : 정관용 교수
■출연진 : 한양대 동아시아 문화연구소 전우용 교수, 김현기 도쿄 특파원

◇정관용-요사이 일본의 망언이 정말 도를 넘어서 어디까지 갈지 예측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그래서 일본 망언에 역사를 아예 한번 정리해 보고자 오늘 역사라이브에서 한양대 동아시아 문화연구소 전우용 교수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전우용-안녕하세요.

◇정관용-정말 금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는데요. 우선 최근에 이런 망언 퍼레이드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고 계세요?

◆전우용-사실 일본이 한국에 대해서 망언을 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죠. 그렇기는 하지만 최근 들어서 심해지는 것은 일본 내에서 그런 발언들을 자제시켰던 양심과 지성의 힘이 약화 돼가고 있는 현상이다.

◇정관용-줄어들고 있나요?

◆전우용-일본 내에서의 정상국가화. 군대도 가졌으면 좋겠다 또는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돼야 한다. 이런 얘기 나오고 있는 것 자체가 이제 2차대전 종전 이후에 반성의 기조, 일본 사회의 한쪽 축을 형성해 왔던 반성의 기조가 이제 본격적으로 퇴조하고 있다는 신호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정관용-전 교수님의 진단대로라면 일본 사회 전체가 그쪽을 향해 달려간다는 식인데 더 우려되거든요, 사실. 일부 정치권만 그런 게 아니라는 진단이시잖아요?

◆전우용-그렇죠.

◇정관용-그런데 정말 그런지 일본 현지 분위기 정리해 봅니다. 김현기 도쿄특파원.

◆김현기-네, 도쿄입니다.

◇정관용-가장 최근에 나온 뉴스가 일본이 가미카제 유서를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한다는 보도가 있었지 않습니까? 한국에서는 연일 이 문제가 화제인데 일본 언론은 이 내용을 어떻게 보도하고 있습니까?

◆김현기-대부분의 신문은 담담하게 사실관계만을 짧게 보도하거나 아예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극우 신문인 산케이만 오늘 1면에 관련 기사를 크게 보도했는데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세계유산담당 기관인 유네스코의 사무국장을 만나서 일본 측 가미카제 유서의 세계유산등록을 방해하고 나섰다는 겁니다. 이 신문은 한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등록까지 역사문제와 연결해 일본을 비판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 정부와 언론이 한통속이 돼 일본 비하를 얘기입니다.

◇정관용-다른 신문들은 간단히 사실만 보도하고는 아예 보도 안 한다, 비판적인 논평을 하는 그런 언론은 아직 없습니까, 그러면?

◆김현기-네, 그렇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비판적인 논조를 유지하고 있는 건 극우신문인 산케이신문이 유일합니다.

◇정관용-비판이라고 하는 건 한국에 대한 비판이죠?

◆김현기-그렇습니다.

◇정관용-그리고 아베 총리는 어제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독도 문제 또 언급했죠? 역사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사실을 아이들이 분명하게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망언들 줄지어 나오는 배경을 어떻게 분석하십니까?

◆김현기-지금 말씀하신 아베 총리의 발언은 최근 일본 문부과학성이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의 학습지도요령 해설서, 말하자면 교과서의 지침에 독도를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못 박아 표기한 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겁니다. 솔직히 아베 정권의 망언 시리즈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인데요. 특히 지난 해 말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에 한국, 중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가 일본을 비난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여기서 밀려서는 곤란하다는 판단 아래 오히려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전략으로 계속 강공 발언을 이어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관용-또 일본 공영방송 NHK의 신임회장의 위안부 관련 망언, 또 회장으로 선출한 NHK 경영위원회 구성원들의 문제 발언, 여기에 대해서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뭐라고 언급합니까?

◆김현기-공영방송인 NHK 회장에 이어서 최고 의사결정기구죠? 경영위원회의 위원들이 연이어 문제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데요. 말씀하신 대로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의 개인의 의견이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아베 총리는 뻔히 드러난 NHK 경영위원회발언에 대해서도 나는 직접 듣지 않아서 모르겠다 하는 식으로 발뺌을 하고 있습니다. 위안부는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었다는 망언을 뱉어낸 모미이 회장에 대해서는 본인이 발언을 취소한다고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어이없는 반응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상당수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NHK 경영위원을 자신의 측근인사들로 채우다 보니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은 하고 있지만, 그 강도가 그다지 세지 못합니다. 정작 NHK 내부에서도 이를 문제 삼는 움직임이 없고요. 이는 아베 사회 출범 이후 일본 사회에 폭넓게 확산된 우경화의 영향으로 볼 수가 있겠습니다.

◇정관용-김현기 특파원 수고하셨습니다. 큰일 났네요. 전 교수님 진단이 맞았는데요. 일본 현지 분위기 보니까 문제 발언들에 해서 지적하는 언론 거의 없다. NHK 내부도 조용하다, 그래요, 오늘 일본 망언의 역사를 한번 정리해 보자고요. 지금 기록상 남아 있는 것으로만 본다면 언제부터라고 봐야 되겠습니까?

◆전우용-일단 망언이라는 말의 정의가 굉장히 넓어요. 그러니까 근거 없는 말일 수도 있고요. 또 논리적으로 안 맞는 말일 수도 있고. 무례한 말, 도발하는 말 이런 게 다 망언이라고 분류가 되기 때문에 언제부터 망언이 시작됐느냐를 따지면 한도 끝도 없죠. 이를테면 일본의 가장 오랜 된 역사책인 고사기, 일본 서기에 있는 내용도, 한국 관련 내용도 오늘날 한국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망언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것들이고요.

◇정관용-그게 언제 나온 책인데요?

◆전우용-기원후 6세기 7세기 유물의 책들이니까 이게 몇 천 년, 1500년 전 책들이죠. 그리고 이제 가까운 과거로 들어가자면 임진왜란 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선조로 하여금 나를 와서 알현하게 해라, 이런 얘기를 했던 그런 것도 있고요. 또 일본 개항 이후에는 일본 내 요시다 쇼인을 비롯한 일부국학자들이나 이런 사람들이 서구 열강에게 손해 보는 걸 한국을 침략해서 벌충하면 된다, 이런 식의 얘기를 했던 것들. 그렇게 보자면 사실은 한국인들이 망언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형태의 얘기들. 그걸 이제 중세적 배외주의라고 보통 얘기를 하는데.

◇정관용-뭐요?

◆전우용-중세적 배외주의.

◇정관용-중세적 배외주의?

◆전우용-네, 배외감정. 우리도 사실 그렇잖아요.

◇정관용-다른 나라를 그냥 배척하는?

◆전우용-배척하고 멸시하고 혐오하고 하는 발언들은 계속 있었기 때문에 문제 삼을 건 아니고요. 그런데 그런 식의 예들은 옛날부터 있었고, 그게 이제 일본인들에게 대대로 우리에게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것처럼 대대로 전승되어 와서 일단 그게 발현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수 있겠죠. 오래 된 걸로 치자면요.

◇정관용-그리고 따지고 보면 일제 시대 동안에 일본이 이른바 한국사라고 가르친 그 역사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망언으로 가득 찼겠네요.

◆전우용-일제강점기 역사가 좀 저희한테 중요한데요, 우리한테. 역사교과서뿐만 아니라 신문기사 그다음에 잡지. 이른바 미디어 환경 전체가 한국인과 한국문화, 한국 역사에 대한 망언들로 가득 차 있었다고 보면 되는 거죠. 독립능력이 없다, 사대주의 현상이 강하다, 모이면 싸움만 한다, 이렇게 식으로 되어 있었고 또 거기에 반박을 할 수도 없었어요. 공개적으로 반박하는 것이 죄가 되는 상황이였으니까.

◇정관용-나라를 빼앗겼으니 뭐...

◆전우용-그러다 보니까 그게 그 시대로 끝났으면 좋은데 그 이후에 현대 한국인의 의식에까지 굉장히 좀 오랫동안 잔영, 그림자를 남기고 있단 말이죠. 예를 들어서 엽전은 맞아야 말을 듣는다.

◇정관용-뭐요?

◆전우용-엽전은 맞아야 말을 듣는다.

◇정관용-옛날에 있었던 말이죠? 맞아요.

◆전우용-아직도 이런 말 쓰시는 분들이 있어요. 연로하신 분 중에는. 말을 바꿔서 조금 중장년층에서는 한국 사람은 좀 가끔씩 밟아줘야 된다, 이런 식의 말이 좀 바뀌었을 뿐이지 그런 식의 자의식을 갖게 만드는. 그 자의식이 완전히 청산이 안 된 거죠. 그런 환경 속에 있었던 거죠.

◇정관용-그 가운데 그것도 가장 우리를 화나게 만들었다고 할까, 한국인들을 자극했다고 할까. 그런 망언 몇 가지만 골라서 하나하나 짚어보도록 하죠.

◆전우용-사실 일제강점기에는 너무 망언이 많아서 망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대응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문제되는 것들이 없어요. 사실 모든 게 망언이었는데. 예를 들어서 당시 일본의 신문들에는 이런 기사들이 수시로 실렸어요. 예를 들어 조선인 여성들은 남의 첩 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여기 와서 조선인 여성들을 첩으로 둬도 무방하다. 이런 식의 안내문 같은 게 수시로 실렸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들에 대해서 반박을 못했는데 일본인의 망언에 대해서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반발이 있었던 최초 그리고 이것도 최후의 사건이죠. 일제강점기에. 1921년 경성의학 전문학교 해부학부의 교수인 구보 다카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자가 교실에서 교육용 두개골이 하나 없어졌어요. 없어졌으면 조사를 해야 되는데 다짜고짜 들어와서는 너희 조선인들은 해부학적으로 열등한 인종이다. 보나마나 이건 너희 조선인이 훔쳐갔을 게 분명하다라고 큰소리를 쳤던 거예요. 학생들이 조선인들은 해부학적으로 열등하다는 증거를 대라고 동맹휴학에 들어가고 대대적인 문제가 됐지 않습니까? 3.1운동 직후니까 감정이 고양됐던 것도 있었고.

◇정관용-1921년.

◆전우용-21년이요. 그 감정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의 조선인에 대한 만행, 망언으로서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힐 만한 거고요. 그밖에 역대 총독이나 정무총감 이런 사람들이 그런데 뭐 일본이 조선을 보호하기 위해서 전쟁을 치렀다든가 일본 덕에 살 수 있게 되었다라든가 감사해라라든가 이런 얘기는 이루 헤아릴 수 없죠.

◇정관용-알겠습니다. 그러면 일제 시대는 제쳐놓고 그때는 시대 전체가 그랬으니까. 해방 이후의 것들로 몇 가지 주목되는 거 짚어본다면요?

◆전우용-가장 먼저 우리가 사건의 여파가 10년 가까이 갔어요. 1953년 휴전 직후에 한일국교 재개문제, 정상화 문제가 얘기되면서 최초의 회담이 열리죠. 회담에 일본 측 대표로 온 구보다 간이치로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와서 첫 마디가 그거였습니다. 물론 협상의 기선을 제압하려고 하는 그런 의도가 있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일본의 한국병합은 한국인의 복지에 많은 기여를 한 일이다. 그걸 가지고 보상 이런 얘기를 하지 마라 얘기를 했던 거죠. 이게 이제 사실은 한일 국교정상화를 그 이후로 10년 가까이 미뤄놓는 굉장히 중요한 망언이었던 거죠.

◇정관용-그게 국교정상화 회담을 와서 그랬다고요? 다른 자리도 아니고? 국교정상화를 별로 할 생각이 없었군요. 그런 말까지 쏟아내는 걸 보면.

◆전우용-그렇게 해서 회담의 주도권, 기선.

◇정관용-주도권이 잡히나요? 반발이...

◆전우용-그쪽에서는 일본의 한국 강점에 대해서 피해보상, 배상 이런 걸 요구하려고 하는데 배상거리가 아니다, 우리 덕에 너희가 잘됐는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정관용-한국인의 정서나 이런 거는 신경도 안 쓰는 거군요?

◆전우용-그런 입장이었던 거죠.

◇정관용-그 후에는, 또?

◆전우용-그 다음에 그러고 나서 이것 때문에 한일회담 재개에 우리 정부에서 전제조건으로 요구했던 것이 구보다의 망언 취소였어요, 공식 취소. 그런데 50년대 말까지 취소를 안 해요. 그리고 제 3공화국 들어서서 한일 회담이 급물살을 타면서 65년 1월. 이때가 바로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졌죠. 그때 역시 수석대표로 왔던 신이치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국내에서 기자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한국을 한 20년만 더 지배를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전쟁 때문에 좌절이 됐는데 양국이 좋았을 것이다라는 얘기를 했죠. 왜냐하면 20년만이라는 얘기가 그때예요. 65년이거든요. 20년만 더 지배했으면 이런 얘기를 말로 표현했지만 여태 한국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이라는 뜻이었던 거죠. 사실 그때 우리가 일본인들이 공장이고 집이고 재산이고 다 놓고 왔다. 창씨개명만 해도 그게 한국인들 괴롭힌 게 아니다, 한국인을 일본인하고 똑같이 대우하려고 해줬던 건데 그렇게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발언을 했죠.

◇정관용-그것도 역시 한일회담 대표가?

◆전우용-이건 뭐 당시 굉장히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죠. 하지만 그때 정부가 협상 타결에 최우선의 목표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국내의 반발 또 일본의 이런 망언들이 좀 이 발언은 접혔던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정관용-그렇게 해서 국교 정상화가 됐고 그 후에 한동안 좀 망언들이 좀 없었던 시기들이 있었지 않나요? 계속 이어졌나요?

◆전우용-문제를 안 삼았던 것인지 국내 보도된 것들도 계속 간간히 나왔습니다. 수시로 특히 일본이 경제 성장하면서 과거 역사를 특히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반성해야 할 역사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역사를 뒤바꿔 기억하려고 하는 시도가 있었고요. 70년대 이후에 일본의 경제적 자신감이랄까요? 이런 것들이 자기 역사를 미화하는 그런 형태로 나타났고 그런 것들이 수시로 표현이 되기는 했었어요. 극단적으로 좀 많이 문제가 됐던 것. 예를 들어 80년대에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파동 같은 경우도.

◇정관용-80년대 초반이죠.

◆전우용-80년 2년, 3년 이 사이에 침략을 진출로 표시해라, 이런 식의 문부성 지침이 내려가서 그게 우리나라에서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 변화가 있었고요. 그런 움직임들이 있었고. 94년도에 나가노 시게토 법무성 장관이 아주 큰 사고를 쳤죠.

◇정관용-어떤 거죠?

◆전우용-예를 들어 난징대학살 같은 건 다 허구다. 그다음에 위안부 이건 군대 공창이고 언제나 있었던 것이고.

◇정관용-공창이다?

◆전우용-이게 한국인을 멸시했다거나 여성을 억압했다거나 이런 거 아니다, 이런 식의 발언들을 해서 한국과 중국 전체를 분노하게 만들었던 그런 사례도 있었고요.

◇정관용-일본의 경제적 상황이라든지 이런 흐름하고 이런 망언하고 이렇게 좀 견주어보면 혹시 불황기에 더 많다든가 호황기에는 적어든다, 이런 특징이 보입니까?

◆전우용-굳이 보자면 사실은 그런 생각이 좀 들어요. 그러니까 쥐 같은 동물도 생존조건이 나빠지면 공격성이 강화되잖아요. 그런데 사람은 이제 그걸 성찰할 줄 아니까 그래서 안 된다는 걸 아니니까 사람인 거죠. 때로는 그게 잘 안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굳이 보자면 일제 때 관동 대학살 또는 히틀러 집권 이런 것들이 전부 극심한 불황기에 나타났던. 대외 공격성 일본인들이 이제 재일조선인을 학살하고 유태인을 학살하고 했던 것들이 이런 것들이 일정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보다도 2차 대전 이후에 일본 사회에 일본 지식계와 양심계를 지배했던 생각은 그런 거였던 것 같아요. 반성.

◇정관용-반성.

◆전우용-패전 직후 일본 지식계에서 많이 나왔던 얘기가 이거예요. 우리가 천황과 자기들의 표현이죠. 일본의 군부지배세력에 대해서 아니요, 노라고 말할 수 있었어야 했다, 하라는 대로 다 해 온 결과가 죄 없는 일본의 서민들이 이렇게 끔찍한 원자폭탄까지 맞아가면서 끔찍한 고통을 겪게 된 것 아니냐. 이런 반성의 기조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게 이제 오랫동안 되어왔던 대외 멸시관, 공격적 사고 이런 것들을 억누르는 효과가 있었는데 경제가 성장하고 성장했던 경제가 불황에 빠져들면서 반성 대신 과거를 미화하고 또 밖으로 공격하는 그래서 아니오를 이제 일본 내의 천황이나 군국주의 파시즘 세력에 대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 국가에 대해서, 한국이나 중국에 대해서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 돼야 한다. 이런 정도로 얘기하는 게 되어 버린 거죠.

◇정관용-사실은 그럼 그럴수록 일본 경제 활성화도 뒤쳐질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하고 관계가 좋아지지 않으면 말이죠.

◇정관용-그게 중요하죠.

◆전우용-짧게 앞으로 우리 정부가 어떻게 대응해 주셨으면 좋겠는지 한 말씀만 주세요.

◇정관용-정부는 계속해서 항의와 유감표시를 해 왔는데도 그걸로 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것보다는 어떻게 대응을 해도 일본... 사실 일본 내의 문제잖아요. 우리 대응으로 바꿀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국민들의 마음 자세가 필요할 것 같아요.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의 핵심을 요약하자면, 한국에 대한 망언의 핵심을 요약하자면 첫째는 한일병합은 한국강제병합은 강제가 아니고 평화적이고 적법하게 이루어졌다는 주장이고요. 또 하나는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인들에게 일부 고통을 줬을지 모르지만 그보다는 한국인들을 근대화시키는 게 도움을 줬다, 세 번째로는 전쟁 때 특수한 인권침해가 있었다 하더라도 일본이 특별히 나빠서 그런 게 아니다, 이걸로 요약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이런 식의 논리는 최근에 들어와서 한국 학계 또는 문화계 또는 한국인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영향력이 커지고 있거든요.

◇정관용-식민지 근대화론?

◆전우용-그렇죠. 사실 일본의 망언을 망언으로 볼 수 없게 만드는 걸로 만들고요. 그러다 보니까 산케이 신문 같은 데서 이전에 교학서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을 때 환호성을 질렀다는 말이에요. 우리의 주장을 한국인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여기에 대한 생각, 다시 말해서 이런 생각의 핵심은 힘, 힘 만능주의. 물질숭배주의가 밑에 깔려 있어요. 그런데 우리 국민들이 스스로를 좀 성찰해야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정신없는 물질은 허망하고 그다음에 정의 없는 힘은 악이다 이걸 잊어버리면 결국 저 논리에 언젠가 흡수될지도 모른다거나 그런 두려움이 있거든요. 그런 걸 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정관용-우리 내부가 우리부터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

◆전우용-그런 얘기입니다.

◇정관용-그 말씀으로 듣겠습니다. 전 교수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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