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부실 저축은행 경영진이 은행 돈을 빼돌린 기막힌 수법이 재판 과정에서 하나 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직원 몰래 은행 돈을 빼내려고 은밀한 암호까지 사용했습니다.
서복현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510호 법정.
재판 도중 '이광'이라는 단어가 튀어 나옵니다.
제일저축은행 유동천 회장의 측근 장모 전무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광'은 다름 아닌 이광재 전 강원지사.
이 전 지사를 위해 돈을 준비하라는 회장의 지시를 받고 돈을 인출할 때 지급증에 이런 암호를 적었다는 겁니다.
직원들이 무슨 용도인지 알아채지 못하게 하기 위한 꼼수인 셈입니다.
[장모 전무 : 지급증의 '증'자 밑에 저만 알 수 있도록 약어로 용도를 적었습니다. 정치인 여러 명의 이름을 지급증에 약어로 쓴 뒤 현금출납부서에서 돈을 받아왔습니다.]
이런 암호는 유 회장이 회삿 돈을 개인 용도로 빼낼 때도 동원됩니다.
[장모 전무 : '공'은 공과금, '생'은 생활비, 알파벳 'C'는 유동천 회장과 사모님의 카드값이었습니다.]
이렇게 빼쓴 돈이 합쳐서 1억 원 정도가 되면 유 회장에게 보고하고 암호가 적힌 지급증은 폐기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지급증 수천 장을 써가며 빼낸 돈은 장 전무 혼자서만 모두 60억 원에 이릅니다.
이들은 정형근, 최연희, 이화영 전 의원 등 다른 정치인에게 돈을 줄 때도 비슷한 암호를 썼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아직 재판 중이라며 암호의 구체적인 내용은 추가로 공개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