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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 가출한 외국인 아내 "아이 보고 싶으면 돈 줘"

입력 2013-12-08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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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어느 날 아내가 자식을 데리고 사라진다면 얼마나 황당할까요. 그리고 몇 년 동안 아이와 만날 수 없다면 심정이 어떨까요. 이런 일이 우리 주변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부 다문화 가정의 얘기인데요, 임진택 기자가 '국제결혼의 그늘'을 심층 취재했습니다.

[기자]

김정주 씨는 지난 9월 일터에서 돌아와 현관 문을 열었을 때 눈을 의심했습니다.

집은 마치 아무도 살지 않았던 것처럼 텅 비어 있었습니다.

[김정주/국제결혼 남성 : (냉장고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이쪽에 있었습니다. 그다음에 이쪽에 가스렌지 있었고. (가스렌지까지 다 떼어갔어요?) 네.]

세 살 아들과 홀연히 사라진 중국인 아내. 연락 두절이던 그녀에게서 이혼 소장이 도착한 건 일주일 뒤였습니다.

[김정주/국제결혼 남성 : 이혼 소송을 건 다음에 즉시 중국으로 나간 거죠. 애기 데리고 애를 놓고 8월 28일날 혼자만 (한국으로) 들어왔어요.]

[박영숙/김정주 씨 모친 : 이제 엄마, 아빠 겨우하고 말 익힐 때인데 저렇게 데려가니까 아이가 굉장히 어려움이….]

최근 국제결혼을 한 뒤 아이와 함께 가출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주 여성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연락두절, 아이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편들은 애간장이 탑니다.

[안재성/국제결혼 피해센터 대표 : 이런 아기가 졸지에 사라졌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것도 한달, 두달이 아니고 몇 년간 얼굴을 못본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런데 많은 아내들이 고향에 아이를 두고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이주여성 쉼터 관계자 : 2010년도 그때 제일 처음 들었어요. 베트남 여성이 아이를 데리고 가서…그런 케이스들이 지금 굉장히 비일비재해요.]

하루 아침에 자식과 생이별한 아버지들이 급기야 아이를 찾아 나섭니다.

너무나 그리운 얼굴.

[최상규/국제결혼 남성 : 나야 너무나 잘 알아보고 내 핏줄이니까. 근데 애기도 나를 충분히 보면 알 것 같아요.]

딸 소연이를 못 본 지 2년이 지났습니다. 이재규 씨도 3년 반 동안 떨어진 송희의 사진을 보며 울컥합니다.

[이재규/국제결혼 남성 : 아빠하고 같이 오자. 아빠가면 따라 와야돼.]

아이들은 대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함께 베트남으로 향했습니다.

최대 도시인 호치민에서 남쪽으로 5시간.

인구 120만의 도시 '껀터'에서 다시 몇 시간을 더 들어가야 상규 씨의 딸 미영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길로 가서, '깍꼰' 다리를 건너서 작은 길로 내려가서 왼쪽으로 들어가세요.]

오후 10시.

[최상규/국제결혼 남성 : 애기가 잠 자 버리면…내 생각엔 너무 늦게 온 것 같아.]

차로는 갈 수 없는 좁은 길을 걸어 상규 씨의 처갓집을 찾았습니다.

[최상규/국제결혼 남성 : (미영이 아니야?) 미영아 아빠, 미영아 아빠. 한국 한국 아빠.]

하지만 미영이는 아빠를 몰라봤습니다.

재규 씨의 처갓집은 껀터에서 남쪽으로 2시간을 더 가야합니다.

오토바이로 논 길 10km를 달려 도착한 곳.

[이재규/국제결혼 남성 : 송희…송희]

송희는 학교에 가고 없습니다.

삽시간에 동네 이웃 10여 명이 모이고 분위기는 험악해 집니다.

이 때 서울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소식들 듣고 전화한 아내입니다.

[이재규/국제결혼 남성 : 다 없었던 걸로 해 주겠다고 그렇게 내가 몇 번을 너한테 사정을 하고 문자를 넣고 했는데도 너는….]

그러는 사이 송희가 학교에서 돌아왔습니다.

[아빠한테 와봐.]

재규 씨는 딸을 데리고 가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습니다.

제주도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 김창문 씨.

지난 2010년 이후 3년이 넘도록 딸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김창문 씨가 직접 쓴 이 편지를 처갓집에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현수/베트남 현지 안내인 : 신랑이 불러준 주소인데 맞지 않아요. 여기 114이런데 전화 몇군데 해서 앞뒤를 맞춰보니까 현재 이 주소가 나온 거예요.]

강을 건너고, 경찰에 도움도 청합니다.

봉변을 당할 뻔한 경우까지, 그렇게 이틀을 헤매 소연이의 외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이 곳에 없습니다.

[소연이 외할머니 : 여기 없어. 시내에 있다고. (전화번호를 아세요?) 휴대폰 있는데 잃어버린 날부터 연락이 없어.]

이젠 소연이를 만날 방법이 없습니다.

힘없이 돌아서는 아이 아빠와 취재진. 그때 한 동네 주민이 이상한 말을 합니다.

[현지 통역 : (소연이는) 집, 집에 있데요. 매일 자전거를 타고 논데요. (최근 언제 아이를 봤데요?) 아침에요 (오늘아침?) 네.]

다시 가서 마지막 사정을 해 봅니다.

하지만 식구들은 소연이를 끝내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앵커]

네, 이 자리에 취재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임진택 기자, 그럼 이 아이들은 사실상 부모 없이 자라고 있는 건가요?

[기자]

어머니가 현지에 데려다 놓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아이들은 외할머니나 외가쪽 친척이 키우고 있는 경우인데요, 현지에서는 이런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일주일 정도의 취재기간 동안 여러 명의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요즘 베트남에선 '라이삐엣남' 그러니까 '짝퉁 베트남인'이라는 슬픈 신조어까지 생겨났습니다.

원인이 뭔지 취재해봤습니다.

이주 여성들은 왜 아이를 데리고 집을 떠난걸까. 베트남 호치민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한 아이의 엄마를 어렵게 만났습니다.

[국제결혼 여성 : 그 사람은 애기 없어도 돼요. 자기는 애기 둘 있어요. 아들있고 딸도 있고 어머니도 있고. 우리 애기는 나 잘 키울수 있어요.]

경제적 어려움도 호소합니다.

[국제결혼 여성 : 나 3년 애기 키우기 힘들어요. 3년 계산해봐. (돈) 얼마 나와? (애기 키우기 힘든데 왜 데리고 왔어요?) 아빠는 애기 보고 싶어. 그럼 나한테 돈 줘. 그럼 애기 보내줄께.]

베트남에서 한국 남편은 늙고 무능한 걸로 여겨졌습니다.

[한국 남성의 장모 : 딸이 말하기를 애가 여기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 남자는 늙어서 애를 키울 수가 없다고 했어요.]

하지만 남성들은 다른 말을 합니다.

재규 씨가 보여준 아내의 소셜네트워크 사진 몇 장, 남자친구와 함께 찍었다고 합니다.

[이재규/국제결혼 남성 : 목걸이하고 그런 거 보면 제가 다 해준건데. (그래요?) 네. 반지나 팔찌나 이 목걸이….]

일부 외국인 쉼터가 이혼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주여성 쉼터 관계자 : 저한테 상담 왔던 친구들이 제가 '안돼 한국법으론 할 수 없어' 라고 얘기하면 '아니야 해줄수 있어. 대구에 사람있어'라고.]

외국인 쉼터를 운영하는 대구의 한 교회. 이주 여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국제결혼 여성 : (여기오면 친구 많아요?) 네. 외국사람 엄청 많아요.]

한국 생활의 어려움을 털어 놓습니다.

[국제결혼 여성 : 여기 한국 와서 한국말 몰라요. 이렇게 가족 없어요. 친구도 없어요.]

남편에 대한 불만도 많습니다.

[국제결혼 여성 : 술 마셔요. 그리고 집에 와요. 계속 자요. 이렇게 답답해요. 너무 답답해요.]

이곳에선 이들에게 이혼을 해답으로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국제결혼 여성 : 여기 사모님 도와주지. 나라도 조금 도와주지. (나라에서 돈 나와요?) 네. 남편하고 이혼해주지. 한달 애들 용돈 받아오지.]

다문화 가정의 이혼 실태는 어떨까? 이미 위험 수위입니다.

지난해 다문화 가정의 이혼 건수는 13,700건으로 결혼 건수 29,200건의 절반에 육박했습니다.

특히 미성년 자녀가 있는 부부의 이혼률이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평균 결혼생활 기간도 국내 평균이 13.7년인데 반해 다문화 가정의 경우 5.4년에 불과했습니다.

가장 파탄의 고통은 남편 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에게 번집니다.

2년 전 며느리가 손녀와 함께 베트남으로 가버렸다는 박성영 씨. 수면제에 의지해 겨우 잠이 듭니다.

[박성영/국제결혼 가정 조부 : 어지간해가지고는 잠이 안와요. 버려 버렸어요. 이상해. 저기 앞에까지 나갔다가 쓰러졌잖아요. '쾅'하고 쓰러지니까.]

이채문씨는 지난해 아들 성민이를 007작전을 하다시피해서 데려왔습니다.

[이채문/국제결혼 남성 : (굉장히 밝으네요. 아이가) 네. 밝아요. 엄청 밝아요. 거기있는 것보다 여기가 훨씬 나아요. ]

베트남에선 친권을 주장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채문/국제결혼 남성 : 강제 추방 당하고. 억울해도 내가 참고 있어야 돼.]

성민이는 한국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이성민 : (아빠가) 맛있는 거 사주고요. 그리고 음료수도 사주고요. 많이 사줘요.]

상규씨도 희망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처음엔 상규 씨를 박대하던 장모. 베트남까지 찾아온 정성에 마음을 바꿨습니다.

사위가 미영이와 함께 얼마 동안이라도 지낼 수 있도록 해 준 겁니다.

상규 씨는 언제 다시 볼 지 모르는 딸 미영이와 짧지만 소중한 추억을 만들려 합니다.

[앵커]

참 안타까운 사연인데 어떻게 해결 하는 게 맞는지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임진택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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