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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 외교관·교민 살해…한인 범죄 판치는 필리핀

입력 2013-12-07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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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사기 혐의를 받다 해외로 도피한 폭력 조직 두목 출신 조양은 씨가 얼마 전 필리핀에서 붙잡혀 국내로 송환됐는데요, 필리핀 교민들이 불안에 떨었다고 합니다. 요즘 필리핀이 한국인들에게 범죄의 나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한국인이 살해 당했다는 소식도 이어지는데요.

김민상 기자가 필리핀 현지에서 심층 취재했습니다.

[기자]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서 남쪽으로 1시간쯤 거리에 있는 비쿠탄 외국인 수용소.

철조망 너머로 현지인들과 외모가 확 차이 나는 한국인들이 눈에 띕니다.

지난달 26일 취재진이 이 곳을 찾았을 때는 조직폭력배 조양은과 안양환전소 여직원 살해 용의자 김성곤도 독방에 갇혀 있었습니다.

[수용소 관리인 : 한국 대사관이 (조양은과 김성곤을) 격리시켜 달라고 했어요. 중요한 수감자라서요.]

외교부는 필리핀에 수감된 한국인이 살인 용의자 3명을 포함해 모두 63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취재진은 면회를 신청해 한국인 수감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김모 씨/필리핀 외국인 수용소 수감자 : (여기 얼마나 계셨어요?) 두 달 있었어요. (많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어요?) 2년, 3년이요.]

조양은도 필리핀 경찰에 체포된 뒤 이 수용소에서 이틀 밤을 지내고 마닐라 공항을 통해 국내로 강제 송환됐습니다.

교민들을 떨게 했던 조 씨. 마닐라 공항에서 취재하는 필리핀 기자에게 욕설로 위협하는 영상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조양은 : 박아버린다. XX ]

교민들은 수용소 밖을 활보하는 한국인 범죄 용의자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합니다.

취재진은 한국인 범죄자들에게 납치돼 죽을 고비를 넘긴 교민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김모 씨/필리핀 거주 한인 : 두 방 맞았지. 처음에 하나 맞고. 두 방도 여기인데, 하나는 여기로 나왔어.]

한인들에게 끌려가 총 두 발을 맞고 마당에 파묻혔지만 다행히 장기를 크게 다치지 않아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번엔 마닐라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앙헬레스를 찾아가봤습니다.

한국인 밀집 지역입니다.

[김모 씨/앙헬레스 거주 한인 : 여기서 실랑이를 하다가 그냥 총을 쏘고 사라져 버린 거야. 어두컴컴하니까, 여기 불도 잘 안 보여요.]

사업가 강모 씨는 2010년 이곳에서 필리핀 전문 킬러의 총에 살해됐지만 범인은 아직도 오리무중입니다.

유력한 한국인 용의자가 그 해 부산국제수산물도매시장 화장실에서 자살하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진 상태.

[경찰 관계자 : 하다못해 통화 내역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현지에서 폰을 받았지만 국내 회사에서 이것을 판독할 수 없었어요.]

교민들은 아직도 한국 외교관이 피살된 사건을 잊지 못합니다.

2002년 외교관 정모 서기관이 유흥가에서 납치범에게 끌려갔다가 마닐라 인근 강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입니다.

[마닐라 거주 한인 : 외교관이 죽었잖아. 아띠반갱(마취제) 때문에 죽은 거야. 세계적으로 파견된 외교관이 죽은 건 필리핀이 처음이라던데….]

올 들어 필리핀에서 살해된 한국인만 무려 13명, 2006년 4명에서 크게 늘었습니다.

취재진이 도착하기 사흘 전에도 휴양지 세부에서 한국인 두 명이 납치 살해됐습니다.

두 한국인의 시신은 차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됐습니다.

[인근 거주 한인 : 연쇄 살인 사건이에요. 4년 전에 거의 비슷한 사건을 들었는데 그때도 2명을 아주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10만 명의 교민이 살고, 매년 100만 명의 한국인 관광객이 찾는 필리핀.

휴양지로도 인기인 이 곳에서 한국인들이 하나, 둘 소리없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

[앵커]

네, 이 자리에 취재기자 나와 있습니다.

김민상 기자, 필리핀에서 올해만 한국인 13명이 살해 당했다니 보통 일이 아니네요.

[기자]

네, 필리핀 관광객 중 1위가 한국인일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가는데요.

문제는 총기 소지가 가능한 나라이기 때문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겁니다.

[앵커]

총기도 문제지만 수감시설도 굉장히 허술하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죠?

[기자]

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탈옥이 가능합니다. 자세한 내용 보시죠.

+++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30분가량 떨어진 파라냐케.

번듯한 주택가에 총기 상점이 눈에 띕니다.

6700페소, 우리 돈으로 16만 원이면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가스총을 쉽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로베르토 모랄레스/총기 공장장 : 사람 허벅지에 쏘면 걷지 못할 거예요.]

상점 바로 옆 공장에는 10여 명이 수공으로 가스총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로베르토 모랄레스/총기 공장장 : 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물려받았습니다. 입으로 쏘는 대나무 총을 발전시켜 가스총을 제작하게 됐습니다.]

취재진은 권총도 살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총기 공장에서 30분가량 떨어진 빈민가.

필리핀 중개업자가 오토바이를 따라 오라고 신호를 보냅니다.

접선 장소에 차를 타고 나타난 총기 판매업자.

놀랍게도 필리핀 경찰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총을 꺼내 보이더니 비슷한 권총을 일주일 안에 구해주겠다고 큰 소리를 칩니다.

[불법 총기 판매업자 : 4만 페소(약 96만원)가 필요해요. 다음 주 월요일 가능합니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인데도 구입이 가능하냐고 묻자 인증 서류가 없는 총기라 문제 없다고 합니다.

[불법 총기 판매업자 : 서류가 없는 총기라 가능합니다.]

교민들은 이렇게 총기 구입이 손쉬워 흉악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전상호/필리핀 거주 한인 : 총기를 한국 돈으로 20만원이면 구입합니다. (청부업자에게)죽여 달라고 사주하면 50만원이면 죽여 줍니다.]

특히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 한국의 범죄자들이 도피처로 삼다가, 도박에서 많은 돈을 잃고 급기야 현지에서까지 범죄를 저지른다는 겁니다.

[박외병/동서대 교수(전 필리핀 영사) : 귀금속과 여권을 담보로 대출하는 조직이 있어요. 나중에 돈을 갚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행동을 합니다.]

허술한 수감시설도 문제입니다.

환전소 여직원 살해 용의자 김성곤은 경비가 허술한 성탄절을 틈타 교도소에서 탈출했다가 다시 붙잡히기도 했습니다.

수감시설 상태가 어떤지 직접 찾아가봤습니다.

한국인 여행객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김성곤이 지난해 수감된 필리핀의 임시 교도소입니다.

경비가 허술한 크리스마스 저녁을 틈타 저 창문을 통해 탈옥했습니다.

[임시 유치장 관리인 : 김성곤이 성탄절 저녁에 저 창문을 통해 뛰어내렸습니다.]

쓰레기 창고처럼 방치된 필리핀 유치장은 마음만 먹으면 탈출이 가능해 보입니다.

불안한 치안 때문에 2007년 우리 교민 보호를 자처하는 보호단체까지 생겼습니다.

[이동활/필리핀 112 대표 : 필리핀이 한국처럼 다 똑같은 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필리핀) 경찰들은 억울할 때 한국처럼 움직여 주지 않아요.]

현지 교민들의 피해와 걱정을 생각하면 우리 정부가 필리핀에 파견하는 경찰 주재관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박외병/동서대 교수(전 필리핀 영사) : (경찰 주재관은) 교민들이 밀접한 지역의 순찰을 강화하고 여러 가지 범죄를 분석해서 미리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앵커]

총기는 구하기 쉽고 치안은 허술하고. 범죄가 잇따르는 이유가 자명해 보이는데 한국인들이 필리핀까지 가서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가 뭔가요?

[기자]

처음엔 해외 도피 차원에서 필리핀에 가지만, 현지 치안이 허술하다보니 또다시 범죄에 손을 대는 겁니다.

[앵커]

그런 사례도 직접 취재했습니까?

[기자]

네. 환전소 살인사건 용의자 최세용의 경우도 필리핀에서도 한국인 납치를 10건 이상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또 다른 암매장 사건을 자백했습니다. 함께 보시죠.

+++

[고금예/필리핀 실종 피해자 어머니 : 나는 필리핀이라는 나라가 그런 나라인지 우리 아들이 그러고 알았어. 미리 알았으면 절대 못 가게 했지.]

2011년 9월 컴퓨터 회사를 다니던 중 5박 6일의 휴가지로 필리핀을 택한 홍석동 씨.

그러나 홍 씨는 예정된 귀국 비행기를 타지 못했고, 얼마 후 가족들에게 협박 전화가 옵니다.

[납치 협박범 : 어머님… 이게 마지막 전화가 될지도 모릅니다. 1000만원 준비해서 모두 달러로 준비하세요.]

납치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건 바로 최세용.

그는 위조 여권을 이용해 필리핀에서 태국으로 도망쳤다가 추적해온 한국 경찰에 붙잡혀 최근 강제 송환됐습니다.

취재 결과, 그가 2008년 한국인을 납치해 살해했다는 점을 최근 자백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한국에서 살인을 하고 필리핀으로 달아난 뒤 또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겁니다.

[신기석/인천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형사 : 45구경 권총에 소음기를 달아서 뒤에다 대고 쐈어요. 그건 최세용 진술이에요.]

최세용은 경찰에게 피살자의 시신을 묻은 장소를 지목했습니다.

현지에 급파된 경찰이 현장을 둘러봤지만, 6년 전 사건인데다 매장 장소가 험한 산 속이라 시신 발굴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신기석/인천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형사 : 이 사람의 진술이 처음부터 거짓말하려고 다 준비해 왔더라고요. 하나하나 반박자료를 제시하니, (최세용이) 무너지더라고요.]

전문가들은 정부가 필리핀 여행객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장준오/국제형사사법연구센터장 : (여행자에게) 공짜라고 하면 혹해서 가거든요. 다 털리는 거죠. 사람별로 범죄 유형별로 (예방책을) 따로 만들어야 해요.]

필리핀 경찰과 공조를 강화하는 것도 시급합니다.

700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천혜의 휴양지 필리핀.

하지만 그 구석구석에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 모른다는 철저한 대비만이 여행객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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