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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 33년…"헌법 전문에 민주화 역사 새겨야"

입력 2020-06-08 18:57

5시 정치부회의 #국회 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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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정치부회의 #국회 발제


[앵커]

내일(9일)은 33년 전, 이한열 열사가 쓰러진 그날입니다. 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동료의 품에서 피를 흘리던 이 열사의 모습은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죠. 민주화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했지만, 아직도 그날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헌법 전문에 민주화의 역사를 새겨 넣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기도 합니다. 관련 소식을 조익신 반장이 정리해봤습니다.

[기자]

내일 6월 9일

1987년 6월 9일
이한열, 최루탄에 쓰러지다

이 청년의 피에 많은 걸 빚졌다

(사진 : 정태원 전 로이터 기자)

박종철 고문치사 규탄
호헌 철폐 국민대회

'6·10 항쟁' 전날 결의대회

SY - 44 총류탄
공중 발사 수칙을 어긴 채 시위대를 직접 겨냥

최루탄 파편이 뇌에 박혔다

"젊음이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나이"
- 이한열 읽기 중

그 21세 젊음이 쓰러졌다

신촌 이한열기념관엔 주인 잃은 그의 운동화가 있다
(사진 : 강재훈 한겨레 사진기자)

그가 쓰러진 날…

한 여학생이 신발을 주워
병원의 어머니께 건넸다

"나가서 집에 가려면 운동화가 있어야 할 텐데…"

그는 끝내 집에 못 가고 7월 5일 숨졌다

6·10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이한열 열사의 죽음. 한열이를 살려내라, 시민들의 분노가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이한열 열사가 쓰러지기 5개월 전, 이미 사람들은 한 젊은이의 안타까움 죽음을 목도했습니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 그렇게 한 생명이 꺼져갔습니다. 

[영화 '1987' : 경찰의 명예를 걸고 말씀드리는 건데요. 가혹 행위는 결단코 없었습니다. (아니 그럼 어쩌다 죽었다는 말입니까) 아니 그게 조사받는 와중에 조사관이 책상을…책상을…]
[영화 '1987' : 그 학생이 겁이 잔뜩 질려가지고 조사관이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어?)]

선배가 있는 곳을 불라며 자행된 경찰의 모진 고문에도 박종철 열사는 목숨을 다해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지키려고 애썼던 그 선배, 박종운 씨는 지금 이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우상호/더불어민주당 의원 (JTBC '썰전' / 2018년 1월) : 이 분이 그 당을 선택해서 갔을 때 박종철 씨 유가족들이 받은 상처는 너무 깊었어요. 이 분들에게는 같은 편인 거예요. 그게. 내 아들을 죽인, 그 사람들과 같은 진영으로 갔다고 하는 상처가 있어서. 되게 힘들어 하셨어요.]

하긴, 남다른 역사 인식을 가진 분들도 간혹 있긴 하니까요.

[곽상도/당시 자유한국당 의원 (2018년 1월 / 화면출처: 디지털경제) : 저희들 새로운 희망으로 좋은 결실을 맺자고 하는 신년이 되어야 되는데 대통령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그거 보고 울었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여러분 그거 누가 밝혔습니까? 보수 정부에서 밝힌 겁니다.]

역시 공안검사 출신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 봅니다. 전두환 정권이 과연 그랬을까 싶습니다. 오늘 공개된 당시 보도지침입니다. 서울대학생 시위 기사, 비판적 시각으로 다뤄줄 것, 학생의 날 데모 기사 보도하지 말 것, 언론에 말 그대로 재갈을 물렸던 그 정권입니다.

'L의 운동화'. 이한열 열사가 33년 전 6월의 그날에 신었던 운동화입니다. 독재정권의 폭압에 깨져나갔던 시민들의 삶처럼, 그의 운동화도 산산조각이 났었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떨어져 나갔던 그 조각 하나하나를 다시 모아, 지금은 옛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운동화에 새겨진 역사의 기억은 아직 단단하진 못합니다.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사 (2017년 6월) : 더 넓고, 더 깊고, 더 단단한 민주주의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6월 항쟁으로 성취한 민주주의가 모든 국민의 삶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구체적인 삶의 변화로 이어질 때, 6월 항쟁은 살아있는 현재이고 미래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국회에 제출했던 개헌안입니다. '부마민주항쟁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항쟁의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란 문구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민주화의 역사, 반석 위에 아로새길 때가 된 듯합니다.

< "퇴임 뒤 잊혀진 사람 되고 싶다"…양산에 '터' >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뒤 돌아갈 터를 잡았습니다. 기존 사저가 있던 경남 양산입니다. 

[강민석/청와대 대변인 (지난 5일) : 문 대통령의 기존 사저는 양산 매곡동에 있습니다만, 인근의 하북면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새 사저 부지를 마련한 이유는 경호 문제 때문입니다. 문 대통령은 퇴임 후 양산으로 내려가시겠다는 입장을 이미 밝혔습니다.]

문 대통령은 퇴임 뒤, 자연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습니다.   

[신년 기자회견 (1월 14일) : 대통령 이후에 무슨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이라든지, 현실 정치하고 계속 무슨 연관을 갖는다든지, 그런 건 일체하고 싶지 않습니다. 일단 대통령 하는 동안 전력을 다하고, 대통령 끝나고 나면 그냥 잊혀진 사람으로 그렇게 돌아가고 싶고요.]

아마 이 분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봉하마을의 꿈, 오랜 친구와 함께 이루고 싶었던 그 꿈을 다시 꾸고 싶은 듯합니다. 비록 일부는 아직까지도 악몽으로 남아있지만 말입니다.

[유시민/노무현재단 이사장 (지난해 5월 / 화면출처 : 유튜브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 이미 퇴임한 대통령 가지고 이 집을 아방궁이라고 그렇게 비난하면서 온 보수 언론에 도배를 하고. 그 사람들이 지금, 여기 묘역에 참배까지 하러 오면서 그거에 대해서 사과 한마디 하는 사람이 없어요. 지금까지.]

완벽한 가짜뉴스로 판명 난 '노방궁' 공격, 하지만 당시 저잣거리에선 진실이었습니다. 새삼 청와대가 왜 구구절절 부지 매입 배경을 설명했는지 이해가 갑니다.

[강민석/청와대 대변인 (지난 5일) : 문 대통령은 국가기관이 임무수행 불가 판단을 내린 만큼 부득이하게 이전 계획을 하게 된 것입니다. 대신 매곡동 자택 규모보다 크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사저 부지 매입비는 대통령 사비로 충당합니다.]

금싸라기 땅인 강남 논현동이나, 내곡동에 사저를 마련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나저나 퇴임 뒤 조용히 살고 싶다는 문 대통령의 소망이 과연 이뤄질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벌써부터 이렇게 방문객들이 몰려 시끌벅적하다니 말입니다. 손주를 자전거에 태우고, 유유히 동네 나들이를 나서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오늘 국회 발제 이렇게 정리합니다. < "퇴임 뒤 잊혀진 사람 되고 싶다"…양산에 '터' >

(화면출처 : 이한열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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