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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人] 유홍준 "일본 잇단 망언, 고대사 컴플렉스에…"

입력 2013-09-16 17:06 수정 2013-09-1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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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 JTBC (15:00-16:30)
■진행 : 정관용 교수
■출연진 : 유홍준 명지대학교 교수

살아 있는 역사박물관. 일본, 욕하기 전에 아는 것이 먼저다?! 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순위권 진입. 20년 동안 330만 독자의 사랑을 차지한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 제18대 만해문학상 수상. 제3대 문화재청청장 역임 후 현재 명지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임 중. 오늘의 라이브인 문화역사계의 새로운 지평을 연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을 만나봅니다.

◇정관용 : 사람 냄새나는 인터뷰, 이런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습니다. 라이브인, 첫 시간 오늘 손님은 여러분들 좋아하시는 유홍준 교수를 모셨습니다. 어서오십시오.



◆유홍준 : 안녕하세요.

◇정관용 : 오랜만입니다.

◆유홍준 : 네, 오랜만입니다.

◇정관용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을 최근에 내셔서 오늘 초대를 했습니다. 일본편 얘기는 조금 있다 하고요. 문화유산답사기 시작한 게 언제였죠?

◆유홍준 : 93년 5월달에 책이 나왔죠.

◇정관용 : 93년? 벌써 20년 전에. 지금 모두 몇 권이 나왔죠?

◆유홍준 : 국내편 7권 나오고 이번에 일본편 2권 나오고요.

◇정관용 : 굉장히 많이 팔렸죠?

◆유홍준 : 나도 잘 모르는데 출판사 통계로는 330만부 나갔답니다.

◇정관용 : 잘 알고 계시면서 왜 모른다고 하십니까?

◆유홍준 : 이제 또 늘어나니까.

◇정관용 : 그럼 국내편으로는 7권으로 끝난 겁니까, 아니면.

◆유홍준 : 아직 3권이 남았는데요. 남한강을 동강에서부터 팔당까지 오는 길 쓰다가 지금 일본편을 먼저 내게 됐고 그 다음에 서울 쓰고 그다음에는 섬이야기로 많잖아요, 2400개인데 강화도에서 시작서 보길도, 청산도, 거제도해서 독도에서 내 답사기를 끝낼까 싶습니다.

◇정관용 : 남한강편, 서울편, 섬편. 세 편이 지금 준비중이다?

◆유홍준 : 네.

◇정관용 : 그런데 갑자기 그 중간에 일본편이 끼어든 뭐가 있습니까?

◆유홍준 : 작년이네요. 작년에 규슈에 답사를 갔다가 부산에서 수학여행 온 고등학생들을 만났는데 얘들이 나를 알아보고 사진 찍자고 그러는데 어디 다니냐고 했더니 온천을 비롯해서 일반 관광객하고 똑같더라고요.

◇정관용 : 수학여행 학생들이.

◆유홍준 : 네. 그리고 하루에 1만명이 오가고 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고대문화는 우리가 해 준 것을 알고 있는데 무얼해 줬냐고 하면 잘 모르고 일본에 가서 어디에 가면 우리 선조들의 채취가 있는가 하면 잘 모르고 구체적인 안내서가 없는 게 좀 안타깝다. 그런 생각으로 이걸 먼저 써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연초에 일본 정치인들이.

◇정관용 : 망언.

◆유홍준 : 망언을 계속 하는 걸 보고 이게 왜 저 사람들이 저렇게 주기적으로 저러는가, 이거의 역사적인 유래와 저걸 우리들이 어떤 자세에서 대처하는 게 좋을까 하는 그런 마음을 갖고 일본편을 먼저 써냈어요.

◇정관용 : 잠깐만요. 말씀 듣다 보니까 망언이 주기적으로 나오는 것의 역사적 유래가 있습니까?

◆유홍준 : 네.

◇정관용 : 그게 뭐죠?

◆유홍준 : 이 사람들이 한마디로 고대사 콤플렉스가 있고 그다음에 우리는 근대사 콤플렉스가 있는데 저들은 어쨌든 근대사의 원죄가 있거든요. 그 원죄에 대한 문제를 왜 클리어하게 하지 못하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역사적으로 좀 봐야겠고 그다음에 중요한 것은 어차피 일본과 우리는 동아시아의 협력 관계로 나아가지 않으면 서로가 힘들게 돼 있지 않습니까?

◇정관용 :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죠.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망언들이 나오고 있는게 일본의 우경화, 군국주의화 그리고 과거 자신들의 만행이나 잘못에 대해서 인정하지 못하는 그것 역시 우경화하려고 하는 정치세력들을 시민들을 그쪽으로 어떻게 보면 왜곡되게 이끌어가고 있는 것, 우리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데 지금 유 교수님 말씀은 그들이 과거 식민지 잘못을 제대로 인정 못하는 뿌리에는 고대사 콤플렉스가 있다는 그 말입니까?

◆유홍준 : 그것도 있고 그다음에 근대사 원죄를 하고 난 다음에 이 사람들이 섬에 갇혀서 사는 데에는 참 익숙한데 섬 밖으로 나와서 동아시아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데는 상당히 미숙합니다.그건 고대에도 그랬어요. 그래서 그러한 것들을 이전투구로 저들이 망언한다고 우리도 망언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더 좀 넉넉한 입장에서 한마디로 얘기해서 너희들도 좀 올바로 살려면 덕이라는 걸 좀 길러봐라 이렇게 타이르기도 하고 그리고 어차피 우리 중국이나 미국이나 EU하고 거대한 블록화된 사회 속에서 살려면 공생공존을 해야 되지 않느냐.그런 관점에서 정치를 운영하고 그리고 문화를 교류해야 되지 않느냐 하는 그런 입장인데 제 입장은 문화유산기 답사기잖아요.

◇정관용 : 그렇죠.

◆유홍준 : 그러니까 문화유산을 보면서 그 문화유산의 뿌리에 우리가 어떻게 행복하게 같이 갔던 때가 있는가.그다음에 우리로부터 받은 것을 일본사람들은 어떻게 자기화시켰는가.우리가 또 인정해 줄 건 인정해 줘야 된다. 그런 입장에서 썼죠.

◇정관용 : 출판기념회에서 한 발언이 양국 쌍방에서 날아오는 독화살을 장풍으로 날려버리는 심정으로 썼다.

◆유홍준 : 날아올 줄 알았어요. 극우, 보수 이 세력들은 양쪽이 다 화석화되어 있잖아요. 그들의 입맛에 맞는 얘기를 해야지 조금이라도 다르면 꼭 날아오게 돼 있죠.

◇정관용 : 그러니까 내용으로 들어가면 아무래도 문화유산 답사에 보면 고대문명을 우리가 넘겨준 흔적이 나오지 않습니까?

◆유홍준 : 확실하게 나오죠.

◇정관용 : 그 얘기를 하면 일본 우익들이 비판할 것이고. 그런데.

◆유홍준 : 일본이 그걸 받아서 자기화했다는 것을 얘기를 하면 한국에서 또 나오게 돼 있죠.

◇정관용 : 실제로 1편 규슈, 2편 아스카나라 두 편인데 가서 보시니까 어느 정도 같고 어느 정도 그들이 발전시켰는지.

◆유홍준 : 유래를 보게 되면 일본이 2300년 전에 신석기시대에서 갑자기 청동기 시대로 쌀농사로 넘어가요. 그게 우리 고려인들이 가서 개척해 준 거라고 누구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정관용 : 청동기를...

◆유홍준: 청동기하고 쌀농사를 가져갔고 일본의 문명의 빛을 가져간 거죠. 그래서 당시 조몽인들이 일본 열도에 10만밖에 살지 않았다는데 도래인들이라고 하죠. 도래인들이 가서 갑자기 인구증가로 일어나고 문명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해서 일본의 고대국가가 680년 이 무렵에 일본이라는 나라 이름과 천황제가 확립이 됐는데 그때까지는 문명의 젖줄을 한반도로부터 가져갔죠.

◇정관용 : 지속적으로.

◆유홍준 : 지속적으로 600년이니까 그러면 한 1700 그 정도를. 그런데 그것을 전에는 솔직하게 쓰는 지성들이 상당히 많았어요. 일본 내에서.

◇정관용 : 일본 내에서.

◆유홍준 : 그런데 이게 점점 어떻게 희석화되냐 하면 한반도를 거쳐서 왔다, 대륙이.그러니까 대륙문화가 꼭 한반도를 거쳐서 왔다라고 쓰기 시작을 했어요.불교가 우리 백제 성왕이 보내줬으면 그냥 그건데 백제로 통해서 중국을 거쳐 저 인도께 왔다는 얘기를 한다는 말이에요.자꾸 희석화시키고 있어서.

◇정관용 : 직접 갖다준 사람보다는 저 멀리 있는 사람을 언급하기 시작하는군요.

◆유홍준 : 그래서 서문에다 조금 비꽈서 썼죠. 아들이 아버지한테 용돈받고 나서 아버지 손를 통해서 회삿돈 들어왔다라고 해도 되느냐. 받은 건 아버지한테 받은 거 아니냐. 그렇죠? 그런데 한일 관계에서 정치가들의 망언은 망언이고 일본의 많은 지성들은 그렇게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또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한 것도 일본 사람들의 경우에 제대로 된 지성들은 그렇게 얘기 안 하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저런 점이 있어요. 한국 사람들이 밑도 끝도 없이 일본의 고대문화는 우리가 다 해 줬다고 그렇거든요. 그게 듣기 싫어서 역자의 경우로 나온 적도 있죠.

◇정관용 : 어쨌든 분명한 것은 청동기, 그리고 쌀 농사문화가 같고 일본이라는 나라가 생기면서부터 어떤 식의 변화가 보이던가요.

◆유홍준 : 그렇게 해서 AD 300년, 1700내년 무렵이 되면 철기시대로 들어가는데요. 이 철은 가야 사람들이 가져갔습니다.

◇정관용 : 처음에는 백제.

◆유홍준 : 아니요, 가야가 더 먼저 가는 것 같아요.

◇정관용 : 그렇죠.

◆유홍준 : 금강가야가 망하면서.

◇정관용 : 잠깐만요. 제가 헷갈렸습니다. 2300년 전 얘기는 백제도 아니죠.

◆유홍준 : 아무것도 아니죠. 우리 고조선 삼한시대죠.

◇정관용 : 그렇죠.

◆유홍준 : 그러다가 그게 우리도 좀 면밀하게 읽어봐야 되는데 하나,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간 사람들이 도래인이라고 얘기하지만 사실은 보트피플인 점이 많습니다.고조선이 멸망하고 망한 삼한이 붕괴되고 결국은 삼국 플러스 가야로 고착되는 게 300년 무렵이거든요.그러면 그 와중 속에서 그 당시에 한 10개 부족들이 열국들이 다퉜는데 그때 패배한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가.

◇정관용 : 하긴, 한반도 내에서 승리한 권력집단은 굳이 떠날 이유가 없죠. 그 먼 모험의 길을.

◆유홍준 :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은 절대로 이민 안 갑니다. 또 없는 사람은 없어서 못 가요.

◇정관용 : 어느 정도.

◆유홍준 : 잘 살다가 토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가거든요.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재력도 있고 문명도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들이 신천지를 개척해서 가는데 해류가 대천 앞바다 해수욕장에서 버린 컵라면 조각이라든지 봉지라든지 쌀막걸리병이 가라츠에 있는 그 섬에 해류를 타고 와서 모여 있어요, 지금도.

◇정관용 : 우리 서해에서 남해를 거쳐서 일본으로.

◆유홍준 : 그냥 해류 따라가면 거기에 도착하게 돼있어요. 그러니까 2300년 전에 뭔 항해술로 갔냐고 걱정할 필요가 없죠. 그다음에 가야의 금강가야가 결국은 국가로 못 갔잖아요. 그때에 금강가야가 쇠퇴하고 신라쪽으로 자꾸 들어가게 되면서 거기 있는 분들이 이번에는 오사카쪽으로까지 갑니다. 그래서 일본의 스에키라고 하는 토기문화가 있는데 그건 가야토기하고 똑같아요. 구별 못해요. 그 다음에 일본의 지배층의 무덤 속에서 나오는 거가 이 스에키하고 철입니다. 무기. 심지어는 말도 가야에서 처음 갔다는 거죠.

◇정관용 : 말까지 싣고.

◆유홍준 : 지금도 이즈미지역이나 이런 데 있는 건 가야문화고 그게 가까운 아스카라고 하는 곳에 안도다다오가 지금 거대한 박물관이 있는데 거기에 가면 잘 전시가 되어 있습니다.

◇정관용 : 유물들이 그대로 있고.

◆유홍준 : 유물들도 있고요.

◇정관용 : 지금 전반적으로 우리를 거쳐서 또 우리를 통해서 우리의 힘이 그쪽으로 옮아간 측면을 쭉 강조해 주고 계신데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그 후에 일본이 독자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발전시킨 것을 확인하셨는지.

◆유홍준 : 이게 아직 멀었어요, 이게 독자적으로 가려면. 이제 겨우 가야사람 갔잖아요.

◇정관용 :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조금 건너뛰죠.

◆유홍준 : 백제에서 장수왕이 밀고 내려오고 하면서 사람들이 가서 지금의 아스카지역에 가요. 아스카지역에 가서 성덕태자, 우리가 잘 아는 쇼토쿠태자, 이 시절 들어오면 도래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고대국가로 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듭니다. 그리고 710년에 나라라고 하는 곳에 가서 왕궁을 짓고 제대로 된 나라의 모습을 갖추죠. 그리고 난 다음에 우리 삼국이 멸망하게 되는 것이 668년에 고구려 멸망하잖아요. 그런데 710년에 나라시대 들어가면 이 사람들이 견당사를 보내면서 당나라 문화를 직접 받고 싶어합니다. 더 나은 것을 받고 싶은 거죠. 그래서 그때부터는 일본이 자기화를 이루게 된다고 봐야죠. 그게 동대사의 대불 같은 걸 만드는 게 그 결과로 나오죠.

◇정관용 : 그냥 그건 어떤 창작입니까?

◆유홍준 : 마치 중국의 불상하고 삼국시대 불상하고 전혀 다르듯이 우리 삼국시대의 도래 불상하고 일본 사람이 만든 하쿠오시대나 나라시대의 불상은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요.

◇정관용 : 전혀 달라요?

◆유홍준 : 그래서 이것이 동아시아 문화 전체 속에서 같은 불교문화라도 중국, 한국, 일본이 독자적인 개성을 갖고 있는 게 넓게 보면 동아시아 문화의 용량이 커진 거죠. 그점에서 축하해 줄만 하죠.

◇정관용 : 그러니까 중국에서부터 인도로부터 쭉 와서 또 한국에서는 한반도에서는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듯이 그게 일본으로 갔고 일본도 독자적으로 만들었다?

◆유홍준 : 네, 그게 8세기 무렵입니다.

◇정관용 : 그래서 이렇게 표현하시는군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시대가 아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일본. 왜라고 하는 5국 시대다. 너무 파격적인 주장이 아니에요?

◆유홍준 : 아니에요. 그런 시각에서 봐야지 그 당시의 왜를 지금 적대적 관계에 있는 왜로 보면 역사가 이해가 안 되는 거죠.

◇정관용 : 그 당시는 굉장히 친했습니까?

◆유홍준 : 아주 친한 정도가 아니고 우리가 백제가 660년에 망했다고 그러는데, 나당연합군에. 그때 망한 게 아니고 660년에 부여하고 공주가 함락됐죠. 백제땅이 얼마나 넓어요. 그러니까 복진이니 흑지상진이니 일어났잖아요. 최후의 전투가 663년 8월 27일날 백총강 전투인데 이때 왜에서 온 군사지원이 백제에 온 지원이 2만 7000명입니다.

◇정관용 : 그 정도나.

◆유홍준 : 3개 사단이 800개의 배를 타고 와서 마지막 전투를 붙었는데 거기서 지죠. 그래서 이 사람들이 급히 퇴각하면서 규슈에 가서 나당연합군이 쳐들어올 줄 알았어요. 그래서 거기에다가 수성이니 대야성을 쌓았는데 그게 백제식성이죠. 그러니까 그 수성이나 대야성을 보면 우리 과거사가 보이고 그리고.

◇정관용 : 알겠습니다.

◆유홍준 : 옛날의 이야기가 살아나죠.

◇정관용 : 삼국시대라고 하는 관점만 갖고 한반도적 시각에서 보는 것도 있을 수 있으나.

◆유홍준 : 동아시아 전체.

◇정관용 : 동아시아 전체를 놓고 보면 그 당시에 왜는 원군을 파병할 정도로까지 관계를 갖고 있었다.

◆유홍준 : 그럼요.

◇정관용 : 문명교류가 얼마나 성숙돼 있으면 그 정도가 됐겠느냐. 그런 흔적들을 하나하나 보고 오셔서 펼쳐내신 거군요.

◆유홍준 : 그렇죠. 그러니까 가면 그런 데를 가서 보고 우리의 역사도 다시 환기할 수 있는 계기가 있으니까 수학여행은 그런 곳으로 가서 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 겁니다.

◇정관용 : 가서 우리가 넘겨준 것 확인해 보고 그걸 일본이 어떻게 또 변화시키고 꽃피웠는지 확인해 보고.

◆유홍준 : 그렇죠.

◇정관용 : 그리고 우리 것하고 비교해 보고 이런 거군요.

◆유홍준 : 그게 동아시아 문화의 총량이 된다는 거죠.

◇정관용 : 지금 일본편이 두 권 나왔는데 일본편도 더 나옵니까?

◇정관용 : 교토는 써야죠.

◆유홍준 : 그다음에는 제가 그만 둘까싶어요. 왜냐하면 복잡해지고 그건 내가 일본 전
공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잘할 수 있는 것까지 쓰고 못다 쓴 건 친구나 후배나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싶어요.

◇정관용 : 혹시 일본전공자들한테 이 책 내시고 비판받은 적 없어요?

◆유홍준 : 아직은 없고요. 오히려 인터뷰를 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정관용 : 일본 전공자들이?

◆유홍준 : 취재기자들이. 그리고 내 답사기가 1, 2, 3권은 일본으로 이미 번역이 돼서 이 책도 곧 번역이 될 텐데 그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요.아마 싫어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관용 : 잘 알겠습니다.역사의 현장, 그 문화유산 하나하나를 확인하다 보면 그 속에 진실이 들어 있죠.

◆유홍준 : 당연하죠.

◇정관용 : 우리가 잘한 점 또 일본이 잘한 점 함께 인정할 건 인정해 주는 분위기로 가자는 말씀 책을 통해 하고 계신 거고요. 이제 남아 있는 한국문화유산답사기까지 일본 거 하나 내고 한국 거 세 개 내시면 이제 네 권 남았지 않습니까? 그 후에는 뭐하시렵니까?

◆유홍준 : 나 정년퇴임이 올해 정년퇴임해요. 그러니까 아직 생물학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때 이거 빨리 마감을 하고 쉬어야죠. 잘 놀아야죠.

◇정관용 : 잘 노시겠다. 워낙 또 사실 노는 걸 좋아하시는데 책 쓰시려고 못 노시잖아요.

◆유홍준 : 그걸 책으로 쓰는 거니까요.

◇정관용 : 유홍준 교수, 앞으로도 계속 좋은 책 저희에게 주시기를 바라면서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유홍준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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