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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우리 집 탈취제는 안전한가요?…"며느리도 몰라요"

입력 2018-03-1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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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우리 집 탈취제는 안전한가요?…"며느리도 몰라요"

<1> 너무 쉽게 살 수 있었던 '판매금지, 회수 조치' 제품

지난 일요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기사가 있습니다. JTBC 뉴스룸의 <탈취제서 가습기 살균제 성분 검출…판매금지 조치도 엉망> 기사입니다.
 


우선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일으킨 PHMG, MIT 성분이 스프레이형 탈취제 등에서 또 나왔다는 발표 내용 자체가 경악스러웠습니다. 환경부는 적발된 제품에 대해 회수 명령 및 판매금지 명령을 내리고 이틀 전, 그러니까 3월 9일부로 조치를 마쳤다고 밝혔습니다. 이들 제품을 '위해 상품 판매 차단 시스템'에 일괄 등록했다는 겁니다. 환경부 설명대로라면 적발된 제품은 전국 소매점에서 볼 수가 없어야 하고, 혹시 매대에 남아 았더라도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찍으면 실시간으로 판매금지 대상이라는 문구가 떠서 살 수 없어야 합니다.

실제 제품은 잘 회수됐고, 정말 바코드는 읽히지 않았을까요? 기대반 걱정반의 의구심은 곧 실망감으로 돌아왔습니다. 혹시나 매장에 남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들른 첫 번째 대형 마트에서 문제의 스프레이형 탈취제가 버젓이 진열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계산대에서 판매가 차단된다는 바코드는 '삑' 읽히자마자 영수증이 주르륵 나왔습니다.이 과정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겨 보도됐습니다.

사실 환경부가 이번에 적발한 제품 개수는 72개나 됩니다.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시중에 나온 '위해우려제품' 1,037개의 안전·표시 기준 준수 여부를 검사한 결과입니다. 시중에 약 2만여 종의 위해우려제품이 나와 있는 것을 고려하면 표본이 아주 적지만, 그 적은 표본 중에서도 72개나 적발된 겁니다. 사용이 제한된 물질을 썼거나, 물질별 안전 기준치를 넘긴 제품, 자가 검사를 하지 않은 제품이 53개, 소비자 안전정보를 표시하지 않은 제품이 19개였습니다.

이 중에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PHMG가 포함된 제품이 2개, 또 다른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MIT가 쓰인 제품이 3개입니다. 코팅제, 김 서림 방지제, 탈취제 등 품목도 다양합니다. 국민들은 일상 속 편리함과 청결도를 높이려고 구매한 물건 때문에 건강을 해치는 비극을 또 한번 경험하고 있었던 겁니다.

 
[취재설명서] 우리 집 탈취제는 안전한가요?…"며느리도 몰라요" ※ 환경부가 적발한 PHMG, MIT(가습기 살균제 성분) 포함 위해우려제품


<2> 온종일 실검 1위 차지한 '초록누리'

소비자들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오늘 아침 아들 교복에 뿌려준 탈취제가, 어제 화장실 청소에 썼던 곰팡이 제거제가, 배갯잇을 뽀송하게 해주던 섬유유연제가 회수 대상 제품일지도 모르니까요.

도매 단계까지의 유통망에 남아있는 제품은 정부와 업체가 회수를 한다지만 이미 매장에서 팔린 제품은 소비자가 알아서 매장에 가져가야 교환이나 환불받을 수 있습니다. 소비자가 가진 제품이 회수 및 판매금지 제품인지는 '초록누리' 사이트(ecolife.me.go.kr)에 게시하겠다고 환경부가 밝혔죠. 초록누리는 2016년 말 개설된 생활환경 안전정보 대국민포털 서비스입니다.

하지만 기사가 나간 다음날 초록누리를 방문한 국민들은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환경부가 단속해 적발했다는 53개의 회수 대상 제품을 한눈에 알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몇 차례 클릭과 제품명 검색을 통해서도 내가 찾은 정보가 이번에 공개된 자료가 맞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사용 후기 게시판에는 환경부의 안일한 대처를 비판하는 글이 속속 올라왔습니다.

결국은 한 네티즌이 제품 리스트가 나온 링크를 후기 게시판에 올리며 "찾기 어려우니 아래 링크를 누르라"는 글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마저도 PC 환경에서만 보일 뿐 스마트폰으로 접속한 많은 국민들에게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인터넷에는 이를 비판하는 기사와 댓글이 넘쳐났고, 초록누리는 하루종일 포털의 실검 1위를 차지했습니다.

환경부는 뒤늦게 문제 제품 리스트를 홈페이지에 접속시 뜨는 팝업창에 소개했습니다. 국민들이 가장 많이 궁금해할 정보를 가장 눈에 띄게 제공하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려웠던 것일까요. '정보가 초록누리에 공개돼 있다'는 것이 아니라 '초록누리에 공개한 정보를 많은 국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다'가 중요하다는 걸 환경부는 몰랐던 걸까요 실천하지 않았던 걸까요. 국민들이 화학 제품 안전성에 갖는 우려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상황을 환경부는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걸까요.

<3> 나머지 제품은 안전한지 "며느리도 모른다"…자가진단의 한계

'천이백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아직도 제품에 쓰인다는 말이야?'  판매 금지 조치를 받은 피죤의 스프레이 탈취제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경부에 물었습니다. "피죤 제품이 적발된 것은 다행인데, 애초에 어떻게 PHMG가 탈취제에 포함되면 안되는것 아닌가요?" 환경부 담당자는 "PHMG도 화학물질이기 때문에 부산물로 생겼을 수 있다"는 답변을 내놨습니다.

다수의 전문가에게 물었습니다. 한 화학과 교수는 코웃음을 치며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답했습니다. 고도의 합성을 통해서 생성되는 PHMG 같은 물질이 화학 반응의 부산물로 생길 수는 없다는 취지였습니다. 환경부에 다시 물었습니다. 환경부는 그제서야 조금 솔직한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본인들도 아직 파악된 바가 없고, 제조사인 피죤 측이 원료 공급사인 AK켐텍사와 PHMG가 포함된 과정에 대해 서로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는 겁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홍역을 앓은 뒤 환경부는 생활화학물질 관리를 위한 여러가지 제도적 보완을 합니다. 세정제·합성세제·탈취제 처럼 생활 속에서 쉽게 쓰이지만 국민 건강이나 환경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되는 화학제품들을 '위해 우려 제품'으로 지정한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위해 우려 제품은 시판될 때 안전기준과 표시기준을 준수해야 합니다. 안전기준은 ①사용이 제한된 원료를 쓰지 않았는지, ②어떤 물질을 기준치 이상으로 함유하고 있지는 않은지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표시기준은 제품 포장에 모델명, 생산연월, 자가검사번호, 유해성분 주의사항 등 소비자에게 알려야 하는 정보를 표시하도록 한 기준입니다.

문제는 출시전 제품이 이 기준을 지켰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모두 업체의 자가검사에 맡겨져 있다는 겁니다. 자가검사 방식도 엉터리 입니다. 제조사가 검사기관에 성분 및 원료 배합표를 제출하는데 이때 해당 물질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되어 있으면 별다른 검사 없이 그냥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환경부측은 왜 이렇게 하느냐는 질문에 "가습기 살균제 같은 물질은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당연히 사용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모든 제품 출시 전에 해당 검사를 거치려면 비용 문제도 크다"고 답했습니다.
한마디로 기업을 무한신뢰하는 것이죠.

하지만 기업이 신뢰를 외면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피죤의 스프레이 탈취제도 자가검사는 멀쩡하게 통과한 제품입니다. 제조사는 원료 공급사의 "사용 제한 물질 없음"이란 대답을, 환경부는 제조사의  "PHMG 없음"이란 말을 믿고 직접 검증 없이 제품출시를 허가했다가 뒤늦게 사후검사에서 적발된 겁니다.

이쯤되면 피죤의 스프레이형 탈취제 소비자는 오히려 행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시판되는 2만여 종의 위해 우려 제품 중 이번에 조사대상이 된 1000여종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PHMG나 MIT 등 위해물질을 포함하고 있는지도 모르는채 계속 써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집에 있는 샴푸, 살균제, 탈취제, 방향제도 '아직 적발되지 않은' 문제 제품일 수 있는겁니다.

<4> "가습기살균제 사태의 교훈은 없었다"

PHMG, MIT 등 가습기살균제에 포함된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알게 되기까지 천 이백여 명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이후 제도 정비에 나선다고 부산을 떨었지만 아직도 문제의 물질이 들어간 제품이 버젓이 팔리고, 걸러낼 수단조차 없다는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기업체가 부담해야 할 검사 수수료는 지난 몇 년 간 우리가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얻은 희생과 교훈보다 비싼 걸까요. 얼마나 더 많은 가족을, 친구를 잃어야 하는 걸까요? 환경부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곳인지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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