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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미국도 기후공시 의무화 …기업 감축 핵심은?

입력 2024-03-25 08:00 수정 2024-04-01 00:10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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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28)

미국 SEC(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증권거래위원회)가 지난 6일 기후공시를 의무화했습니다. 자국 내 주식시장 상장사를 대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비롯한 기후변화 관련 정보 공개를 의무화한 것입니다. 공개해야 하는 내용은 그저 '얼마나 온실가스를 내뿜었느냐'에 그치지 않습니다. 기업의 경영이나 재무 상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기후 관련 위험이 무엇인지, 그 위험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어떤 절차를 갖고 있는지, 기업이 이 위험을 줄이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하는지, 그 활동에 따른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경영진과 이사회가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앞으로 어떤 기후 관련 목표를 갖고 있는지 등을 정량적, 정성적으로 공개해야 하죠.

[박상욱의 기후 1.5] 미국도 기후공시 의무화 …기업 감축 핵심은?
당장 유동시가총액 7억달러 이상의 기업들은 기업 활동이 기후변화로 어떤 위협을 겪는지 2025년부터 분석해 공개해야 합니다. 2026년엔 온실가스 배출량을 반드시 공시해야 하고, 더불어 기후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활동과 그 계획의 영향에 대해 단순히 '지구를 지키고,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식이 아닌, 정량적인 숫자로도 설명을 해야 합니다. 2029년부터는 공개한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제한적 검증을, 2033년부터는 합리적 검증을 해야만 하고요. 7억달러 미만 규모의 기업에 대해선 좀 더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고 있으나, 최소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파악하고, 이를 어떻게 줄일 것이며, 기업이 기후변화로 어떤 위기에 처하게 되는지 분석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랑 먼 일'이라고 치부하기 어렵습니다. 당장 미국 증시에 상장된 한국 기업도 여럿인 데다, 미국을 비롯해 일본과 EU 등 주요 선진국들도 마찬가지의 내용을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미국도 기후공시 의무화 …기업 감축 핵심은?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 국내 기업들을 보더라도, 상장사 대부분이 7억달러 기준을 가볍게 뛰어넘습니다. 의무 대상 국내 기업의 대다수는 다행히 Scope 1과 2의 배출량을 이미 자체적으로 파악하고 있고, 여러 국제 기준에 부합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매년 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Scope 1 배출은 무엇이고, Scope 2 배출은 무엇일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미국도 기후공시 의무화 …기업 감축 핵심은?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은 Scope 1~3으로 구분됩니다. Scope 1은 쉽게 표현하자면, 기업의 담벼락 안에서 벌어지는 배출을 의미합니다. 해당 기업의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실가스나 법인 차량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실가스를 의미하죠. Scope 2는 간접배출 가운데 전력 사용에 따른 배출을 의미합니다. 어떤 기업이 A 국가와 B 국가에서 동일한 규모와 설비의 공장을 동일한 시간과 강도로 가동하고, 동일한 차종의 법인차량을 똑같이 운행한다고 했을 때, Scope 1의 배출량은 같을 수 있지만, Scope 2 배출량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 나라의 발전믹스가 어떻게 되는지(화석연료의 발전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그 나라에서 기업이 확보한 재생에너지 발 전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같은 양의 전력을 소비했다고 해도, 그 전력에서 비롯된 배출량은 다르니까요.

Scope 3의 경우, 이 밖의 모든 간접배출을 포괄합니다. 자동차 기업을 예로 들면, 이 기업에 납품하는 부품사가 뿜어낸 배출량이나 자동차의 외판 또는 프레임을 구성하는 철강 제품이 원료 수준부터 자동차 부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뿜어져 나온 배출량 등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죠.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 자동차가 판매돼 소비자가 운행하고 폐기할 때까지 그 차에서 비롯된 배출량까지도 모두 Scope 3에 해당합니다. 적절한 배출량 산정 기준을 세우고, 이를 직접 측정하기도 쉽지 않은 만큼, 이번 미 SEC의 공시 기준에서 Scope 3는 빠졌지만, EU의 경우엔 Scope 3 또한 공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미국도 기후공시 의무화 …기업 감축 핵심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공시 의무화가 속속 진행됨에 따라 기업들의 ESG 공시는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2022년 말 기준 150여 기업이 관련 정보를 공시 중입니다. 일본은 200곳에 달하고, 중국도 235곳, 미국은 254곳, 유럽은 1,000곳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ESG 관련 정보를 공시하고 있는 기업의 수가 100곳을 넘는 나라 가운데 한국처럼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이 10%를 넘지 못하고 여전히 한자릿수에 머무는 나라는 없습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온실가스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세계의 굴뚝'이라 불리며 비교 대상으로 꼽히는 중국과 인도도 한국보다 상황이 나은 편입니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가장 많은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설치되고 있는 나라이고, 인도는 2021년 기준 수력발전 9.9%, 풍력발전 4.7%, 태양광발전 4.6% 등 우리와 비교조차 어려운 수준입니다. 지난주 연재에서 설명드렸던 것처럼, 국민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는 2000년 9톤, 2022년 10.6톤으로 2000~2023년 2.8톤에서 8.9톤으로 급증한 중국보다도 여전히 많고, 0.9톤에서 2톤으로 늘어나는 데에 그친 인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죠. 신흥국으로 각광받는 중남미 국가들의 경우에도,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전환에 있어 '글로벌 리더'에 해당합니다. 비교해서 한국이 나아 보일 법한 나라는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처럼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전환을 이야기할 때, '개도국이나 잘하라 그래라', '세계의 굴뚝이 굳건한데 우리가 무슨 상관이냐'는, 현실과 동떨어진 '뇌피셜 기반' 반발이 쏟아지더니 최근엔 'ESG 유행이 저물고 있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넷 속 떠도는 이야기의 수준을 넘어 일부 언론들도 동참하고 있죠. 하지만 이 또한 따져봐야 할 이야기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미국도 기후공시 의무화 …기업 감축 핵심은?
2022년, 지속가능투자와 관련한 글로벌 펀드 순자산총액(AuM)은 30조 3,210억달러로 2020년 대비 줄어들었습니다. 전체 펀드 AuM에서의 비중 역시 35.9%에서 24.4%로 감소했죠. 그런데, 이 통계에서 미국 시장을 제외하고 보면, 내용은 달라집니다. 유럽과 캐나다, 일본,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지속가능투자의 규모는 도리어 늘어났습니다. 글로벌 펀드 AuM 측면에서 보더라도, 지속가능투자의 비중은 37.9%에 달하죠.

그렇다면, 자본시장 규모가 거대한 미국에서라도 ESG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이 맞을까요. 지난 연말, GSIA(Global Sustainable Investment Alliance, 글로벌지속가능투자연합)은 “지속가능투자 상품에 대한 그린워싱을 막기 위해 엄격한 기준이 적용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개정된 기준에 따라 다시 분류해보니, 이전까지 지속가능투자로 분류됐던 것들 중에 더 이상 지속가능투자로 분류할 수 없는 케이스가 나타난 것입니다. 때문에, 지속가능투자에 대한 돈의 흐름이 줄거나 끊겼다고 볼 것이 아니라, 이 투자 시장이 더욱 성숙하고, 더욱 명확한 기준점이 나오게 됐다는 것이 GSIA의 분석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미국도 기후공시 의무화 …기업 감축 핵심은?
주식 시장에서 배출량 공개를 의무화하고, 투자자 또한 보다 명확한 정보와 판단 기준을 추구함에 따라 기업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업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지난 14일 공개된 〈2023 CDP 한국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 공개 기업 수는 175곳에 달합니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유럽을 시작으로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녹색전환이 가속화한 2021년부터 배출량을 공개하기 시작한 기업이 급증하기 시작했죠. 글로벌 시장과 주요 선진국들의 정책 변화를 사전에 감지하고, 기민하게 대응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개할 때엔 Scope 1은 기본이거니와, 대부분 Scope 2, 즉 전력사용량과 그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 또한 공개하고 있고요.

우리가 흔히 생각할 때엔 Scope 1 배출이 Scope 2 배출보다 월등히 많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십상입니다. 당장 공장의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나 법인 차량의 배기구에서 나오는 가스처럼 바로 우리 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입니다. 우선, 국내 기업들의 배출 현황을 살펴보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미국도 기후공시 의무화 …기업 감축 핵심은?
기업 1곳당 평균 배출량으로 비교했을 때, Scope 1 배출량은 180만톤(2023년 기준), Scope 2 배출량은 55만톤으로 Scope 1이 월등히 높습니다. 하지만, 이는 업종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원자재나 유틸리티 산업군의 경우, 기업 수는 각각 27곳, 8곳에 불과하나 Scope 1 배출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Scope 2 배출량을 뜯어보면, Scope 1 배출 그래프에선 실처럼 가늘게 표현됐던 선택소비재(33개 기업), 통신(9개 기업), IT(26개 기업)의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위 '굴뚝 산업'이 아니고서는 Scope 2 배출이 Scope 1보다 더 많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때문에, 당장 제품 생산 과정에서 석탄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는, 그래서 사업장 온실가스 및 미세먼지 배출 '부동의 1위'인 철강 기업을 제외하고, 일반 시민들이 가장 먼저 떠올릴 대표적인 기업 두 곳의 배출 통계를 살펴봤습니다. 바로,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미국도 기후공시 의무화 …기업 감축 핵심은?
현대자동차의 경우, Scope 1 배출량은 70만 4,700톤, Scope 2 배출량은 185만 3,800톤으로 Scope 2 배출이 Scope 1의 2.6배를 넘습니다. 삼성전자 또한 Scope 1 배출량 597만 2,000톤, Scope 2 배출량 908만 1,000톤으로 Scope 2 배출이 월등히 많습니다. 단순히 일회성으로 그랬던 것이 아니라, 꾸준히 그래왔죠. 현대자동차의 경우, 제품의 특성상 Scope 3 배출량은 무려 1억 579만여톤으로, Scope 1과 2를 합친 것의 4배를 넘습니다. 삼성전자 또한 Scope 3 배출량은 1억 2,471만여톤에 달하고요. 어찌 보면, 유럽과 달리 미국에서 Scope 1과 2까지만 공개하기로 한 것이 우리나라 입장에선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질 정도입니다.

결국, 거의 모든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의 핵심은 Scope 2 배출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의 문제가 나옵니다. Scope 1과는 달리, Scope 2는 기업이 조절하는 데에 한계가 명확하다는 점입니다. 전력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효율을 높이는 일이야 기업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콘센트에 코드를 꼽거나 고압 송전선로에서 그대로 끌어다 쓰는 그 전기의 발전 과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실가스는 '전력 소비자'인 기업의 입장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죠. 지금으로부터 수년 전, 이웃 나라인 일본에선 요시다 켄이치로 소니 회장이 직접 장관을 만나 “국내에서 재생에너지를 조달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무언가를 해주지 않는다면 일본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일본 기후변화 이니셔티브의 대표로서 강력히 말하고, 우리나라의 전경련과 같은 단체인 게이단렌이 일본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전 세계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확보 움직임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요. 또, 이런 와중에 국내 기업들이 처한 상황은 어떨까요. 이에 대해선 다음 주 연재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미국도 기후공시 의무화 …기업 감축 핵심은?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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