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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재생에너지 조달 가장 어려운 나라”로 꼽힌 대한민국

입력 2024-04-01 08:01 수정 2024-04-01 09:20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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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29)

[박상욱의 기후 1.5] “재생에너지 조달 가장 어려운 나라”로 꼽힌 대한민국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과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 등을 정기적으로 공개해야 하는 기후공시 및 ESG 공시가 EU와 일본, 미국 등 세계 주요 주식시장에서 속속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자사 사업장 담벼락 안, 굴뚝 등에서 직접 뿜어져 나오는 온실가스(Scope 1)를 비롯해 기업이 사용한 전력으로 비롯된 온실가스(Scope 2)는 국가나 지역에 상관없이, 관련 공시를 의무화한 곳에서 모두 공개하도록 하고 있죠. EU의 경우, Scope 1, 2는 물론 Scope 3(기타 간접배출)까지 공개하는 것을 의무로 합니다. 때문에 “기후공시, ESG 공시로 기업에 대한 압박이 커졌다”,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도 공시 의무화를 서둘러야 한다” 등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죠. 하지만 이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목소리는 정작 핵심을 가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각국의 공시 의무화와 그에 따른 국가의 올바른 대응 방향은 무엇일지, 지난주에 이어 살펴보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재생에너지 조달 가장 어려운 나라”로 꼽힌 대한민국
각국 증권거래위원회가 기업과 보조를 맞추지 않고서 홀로 공시 의무화를 강행하며 앞서가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 기후공시, ESG 공시를 의무화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154개 기업이 공시를 하고 있습니다. 의무화가 아니더라도, 이미 많은 투자자들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투자 여부 판단의 주요한 잣대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각 나라에 부여됐고, 그에 따라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그 기업이 지속적으로 사업을 원만히 영위할 수 있는지를 따져볼 수 있는 지표가 됐습니다. 2021년 7월, 폭우와 그에 따른 침수로 독일 바이에른주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라인란트팔츠주 등에서 180명이 목숨을 잃고, 일대 산업이 마비됐던 것처럼,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로 침수 피해를 입은 포스코가 사상 처음으로 포항의 고로를 멈출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기후변화 그 자체도 기업의 경영 활동 자체에 이미 큰 영향을 미치게 됐죠. 각국의 기후공시, ESG 공시에서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뿐 아니라, 기후변화로 인해 예상되는 리스크에 대해서도, 그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과 그 전략에 투입되는 비용에 대해서도 공개할 것을 의무화한 이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재생에너지 조달 가장 어려운 나라”로 꼽힌 대한민국
때문에, 어떤 항목을, 어떤 기준에서 공개할 것인지에 대해선 이미 수년 전부터 논의가 이어졌고, 각 기업들은 자국 정부의 기후대응 관심도나 속도에 상관없이 이 논의에 귀를 기울여왔습니다. 당장 미국 SEC의 기후공시 의무화에 대상 가운데 가장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는 '시가총액 7억달러 이상 기업'에 해당하는 국내 기업만 보더라도, 이미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자사의 배출량과 기후 리스크를 공개 중이죠.
 
[박상욱의 기후 1.5] “재생에너지 조달 가장 어려운 나라”로 꼽힌 대한민국
지난주 연재에서 살펴봤던 것처럼, 아무리 'ESG 투자는 한물갔다', 'ESG는 패션이다'는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전 세계적인 투자 흐름에서 지속가능성은 점차 메인스트림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그 비아냥은 일부 핵심인사의 발언 속, 어휘 표현만을 갖고 섣부른 판단을 내린 것일 뿐, 글로벌 투자시장은 무엇이 진짜 ESG인지, 무엇이 진짜 지속가능투자인 것인지 구분 짓는 틀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고 있고, 투자자들은 그러한 새로운 틀에서도 여전히 '진짜배기'인 기업을 찾아 투자하고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재생에너지 조달 가장 어려운 나라”로 꼽힌 대한민국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온실가스 배출의 감축입니다. 그런데, 국내 주요 대기업의 배출량을 살펴보더라도, 전력 사용에서 비롯된 배출량인 Scope 2는 기업의 직접 배출량인 Scope 1을 가뿐히 뛰어넘습니다. 이는 자신들이 사용하는 전력 가운데 재생에너지 발(發) 전력의 사용 비중을 100%로 하겠다는 RE100 이니셔티브에 세계 주요 기업들이 왜 속속 동참했는지를 설명해주는 가장 간단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북극곰을 지켜주세요', '지구가 아파요'와 같은 1980~90년대 구호에 대한 때늦은 반응이 아니라, 기후변화가 직접적으로 기업의 현재 안위를 위협하게 됐고, 투자자들의 투자 기준이 미래 안위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입니다.

2021년 기준, 전 세계에서 만들어진 전력 가운데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25%에 육박합니다. 이 또한 같은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더욱 쉽습니다. 20~30년 전까진 앙상하게 뼈만 남아 위태롭게 얼음조각 위에 서 있던 북극곰에 관심이 없다가, 뒤늦게 이 북극곰이 애처로워 보였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젠 위태로워진 주체가 저 멀리 북극의 곰이 아니라 국가 스스로라는 점을 인식한 결과입니다. 지난주 연재에서 소개해드린 일화처럼, 일본에선 요시다 켄이치로 소니 회장이 직접 고노 다로 당시 행정개혁상을 만나 “국내에서 재생에너지를 조달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무언가를 해주지 않는다면 일본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했을 만큼, 국가의 재생에너지 확보 능력은 곧 자국 기업의 잔류와 해외 기업의 유치를 결정짓는 핵심 기반이기 때문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재생에너지 조달 가장 어려운 나라”로 꼽힌 대한민국
결국, 에너지전환의 선봉에 서있는 EU를 비롯해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도, 자국 산업의 부흥과 해외 기업의 유치에 여전히 목마른 BRICs도 너나 할 것 없이 재생에너지 확대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22.5%의 일본도, 21.3%의 미국도, 23.4%의 중국도 모두 대규모 원자력발전소를 가동 중인 나라입니다. EU에서 탈퇴해 위의 통계에선 빠졌지만, 여전히 원전을 적극 가동 중인 영국 또한 재생에너지의 발전비중이 2022년 기준 39.9%에 달합니다. 2020년엔 일시적으로 가스화력발전이 줄어들면서 재생에너지 비중은 41.5%까지 치솟기도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2022년 기준, 고작 7.1%밖에 되지 않는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기록하면서도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 안 된다', '늘어나도 적당히 늘어야지, 기저와 핵심은 원전이다' 같은 논의가 주를 이루고 있는 나라도 있습니다. 이 나라에선 요시다 소니 회장처럼 기업이 장관에게 재생에너지 확대를 강력히 촉구하는 것은 언감생심이고요. 물론, 수년 전 이 나라에선 원전 해체 기술의 확보도 없이 탈원전 선언이 나오기도, 수전해 원전 기술의 확보도 없이 수소 경제 로드맵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오늘날엔, 이들 모두 정부의 전폭적인 R&D 지원이 필요한 '미래 먹거리 기술'임에도 R&D 예산을 삭감시켰죠. 탈원전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신규 원전의 설치를 위해서라도 수십년 된 구형 원전의 해체는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일인데도 말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재생에너지 조달 가장 어려운 나라”로 꼽힌 대한민국
동방의 한 작은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사이, 나머지 지구에선 국가뿐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RE100 이니셔티브에 가입한 기업의 수만 따져보더라도 이젠 403곳에 달합니다. 제조나 소재, 인프라 등 RE100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에서도 가입이 잇따라 이들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덧 38%에 육박할 정도입니다.

세계 각국의 에너지전환 노력과 기업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어느덧 RE100은 회원수의 증가와 같은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으로도 성장하게 됐습니다. 이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중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50% 가량에 이릅니다. 이중 자체적으로 '재생에너지 100%를 달성했다'고 밝힌 기업은 79곳, 그러한 RE100 달성이 공식 확인된 기업은 33곳, 아직 100%는 아니지만, 90% 이상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음이 확인된 기업은 67곳에 달합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글로벌 기업 중에서도 T-모바일은 99.4%, 샤넬은 97%, 인텔과 칼스버그는 92%, 아스트라제네카는 91%, BMW는 80% 등 RE100에 근접한 달성률을 기록한 곳이 여럿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재생에너지 조달 가장 어려운 나라”로 꼽힌 대한민국
처음 RE100이 유럽과 북미 지역을 시작으로 퍼져나갔다면, 최근엔 아태지역 기업의 가입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2022년 신규 가입 기업 54곳 가운데 4분의 3 가량이 아시아태평양에 기반을 둔 기업이었죠. 대륙별로 기업 수가 균형을 이루는 것도, 특히나 온실가스 감축이 절실하고도 어려운 제조 분야의 무게가 아태지역에 실려있는 만큼, 점차 아태지역 가입 기업 수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재생에너지 조달 가장 어려운 나라”로 꼽힌 대한민국
우리나라의 RE100 가입 기업은 31곳으로, 수십여개 나라가 모인 EU는 물론이고, 미국이나 영국, 일본보다 여전히 그 수가 적습니다. 하지만 가입 기업의 전력사용량 측면에서 보면 한국은 가장 핵심에 있습니다. 31개 가입 기업의 연간 전력 사용량은 6만 173GWh로, 단일 국가 기준으로 따져봤을 때엔 미국(10만 325GWh) 다음으로 많습니다. 가입 기업 1곳당 평균 전력 사용량을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기업당 1,941.1GWh로 중국(기업당 8,809.4GWh) 다음으로 가장 많습니다. 또, 개별 가입 기업 기준, 한국 기업이 전력 사용량 1위를 기록했습니다.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측면에서 봤을 때, 한국은 가장 전력부문의 에너지전환이 시급한 나라인 셈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재생에너지 조달 가장 어려운 나라”로 꼽힌 대한민국
지난 3월 6일, 전 세계 기업들의 지속가능경영을 평가하는 CDP(Carbon Disclosure Project, 탄소공개프로젝트)는 〈RE100 연간 공개 보고서 2023〉을 공개했습니다. RE100 자체와 가입사들의 현황을 비롯, 북미, 유럽 등 지역 단위를 넘어 일부 주목할 만한 나라에 대한 추가적인 분석도 내놨는데,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멕시코, 아르헨티나, 남아공과 함께 주요 분석 대상국으로 꼽혔습니다.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RE100 가입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 비중은 9%로, 분석 대상 국가 9개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멕시코(54%), 아르헨티나(44%), 중국(50%)과는 비교조차 어려운 수준이고, 인도네시아(35%), 베트남(30%), 남아프리카공화국(28%), 일본(25%), 인도(23%)에도 미치지 못했죠. CDP는 “한국 정부가 2023년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2030년 재생에너지의 발전비중 목표로 21.6% +a를 제시했다”는 점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아직까지 +a에 대한 목표가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전 세계 RE100 가입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한국은 재생에너지 확보에 있어 가장 어려움이 많은 지역으로 꼽혔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재생에너지 조달 가장 어려운 나라”로 꼽힌 대한민국
세계 각국의 RE100 기업이 자국 내 RE100 이행 및 달성 과정에서 장벽이 있다고 토로한 비율을 보면, 한국은 40%로 다른 국가 대비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재생에너지의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부족한 조달 방법에 있었습니다. 재생에너지의 비싼 가격 같은 경우, 우리나라(27개 기업)보다 싱가포르(31개 기업), 대만(37개 기업)에서 더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죠. 국내에선 32곳이나 되는, 사실상 RE100에 가입한 거의 모든 국내 기업이 조달 옵션의 부족을 문제로 꼽았습니다. 그런데, 이들 기업의 경우 해외 사업장에선 상대적으로 순조롭게 RE100을 이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앞서 언급한 소니의 사례처럼 공개적으로 정부에 “떠날 수 있다”고 경고한 기업은 없지만, 숫자로 그 말을 갈음한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국내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사용 현황은 기업마다 어떻게 다를까요. 업계에선 이런 세계 시장의 변화에 어떤 걱정을 하고 있을까요. 숫자와, 그 숫자만으로 담을 수 없는 현장의 목소리에 대해선 다음 주 연재를 통해 보다 자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재생에너지 조달 가장 어려운 나라”로 꼽힌 대한민국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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