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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사활] 클린스만 감독의 미소와 헤어질 결심

입력 2024-02-19 15:50 수정 2024-02-1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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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해지 관련 사항은 변호사와 상의해야 합니다. 금전적 부담에 대해 제가 회장으로서 재정적 기여를 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고민하겠습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사안 관련 임원 회의를 마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사안 관련 임원 회의를 마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소 띠며 떠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을 결정한 대한축구협회의 입장을 발표한 정몽규 회장이 위약금 문제에 대한 질문에 내놓은 답입니다.

클린스만 감독과의 사이에 체결된 계약서에 대한 법률 검토를 하겠다는 취지가 담겼습니다. 하지만 '회장으로서 재정적 기여', 즉 사비 출연 취지 발언을 공식 석상에서 한 만큼 법률 자문을 받아도 '주긴 줘야 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경질된 클린스만 감독과 코치진이 해외 언론 인터뷰와 기고한 글을 통해 '자신들은 문제가 없었다, 성공적인 결과였다.'고 자화자찬하고 책임을 협회와 선수, 언론 탓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논란 끝에 헤어질 결심, 결국 그 끝은 돈입니다. 축구 팬인 법조인들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일반 축구팬들도 '먹튀' 클린스만 감독에게 다 줘야 하느냐고 불만입니다.

고용이냐 위임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카타르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을 마친 조현우 등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카타르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을 마친 조현우 등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1년 12월 축구협회는 당시 조광래 감독을 전격 경질했습니다. 조 감독은 축구협회와 감독 계약을 체결한 뒤 월드컵 예선 1위, 아시안컵 4강 진출(최종 3위) 등의 성과를 냈습니다.

하지만 2011년 하반기 일본과의 친선경기와 레바논과의 원정 예선 경기에서 패한 뒤 경질됐습니다. 선수 선발 과정에서 협회와의 갈등이 큰 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계약 기간이 8개월 정도 남았을 때입니다. 당시 협회는 경질 이후 조 감독에게 잔여 연봉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1년 이상 지난 뒤인 2013년 조 감독 측은 대한상사중재원에 중재요청을 냅니다.

관련 자료 등을 찾아보니 당시 조 감독 측은 국가대표 감독도 협회의 지휘 감독을 받는 근로자라며 '부당해고'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손해배상 차원에서 남은 연봉을 모두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일반적인 노동자가 회사에 노무를 제공하고 회사가 보수를 지급하는 약정(민법 제655조), 일종의 근로계약이란 것 입니다. '고용' 관계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축구협회의 시각은 달랐습니다. 협회와 감독의 관계에 대해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 대해 사무의 처리를 위탁하고, 상대가 승낙하면 효력이 생기는 '위임'(민법 제680조) 이라는 입장이었습니다. 언제든 계약을 끝낼 수 있는 게 위임입니다.

협회는 ① 취업규칙이 적용되지 않고, ② 협회와 감독의 관계엔 '조언과 협의'가 있을 뿐이란 점을 주장했습니다. ③ 고정급(월급 또는 주급)을 받지만 4대 보험 대상이 아니며, ④ 인지도와 영향력이 협회와 대등한 수준 등을 그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조 감독에게 불리한 시기도 아니었고, 정당한 이유와 절차에 따른 경질이란 점을 강조하며 고용계약을 적용해도 문제가 없다는 점도 함께 주장했습니다.

법조계, 최선만 다하면 되는 위임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에서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열린 2024년도 제1차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에 화상으로 참여하고 있다.〈출처=연합뉴스〉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에서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열린 2024년도 제1차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에 화상으로 참여하고 있다.〈출처=연합뉴스〉

국가대표 감독 경질 후 잔여 연봉 지급문제를 다룬 사건, 조 감독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습니다. 사건은 중재 신청 뒤 협회 내 상황이 바뀌며 협회가 조 감독에게 잔여 급여를 모두 주고 일단락됐습니다. 조 감독과 함께 일했던 코치도 중재를 통해 잔여 연봉을 모두 받았습니다.


조 감독 사건이 중재원의 판단을 받기 전 마무리되면서 협회와 국가대표 감독의 관계, 지위에 대한 법적 판단을 받아볼 기회가 사라졌습니다.
다만 법조계 안팎에선 협회와 감독의 계약에 대해 고용이나 도급과 다른 '위임' 관계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협회의 지시 감독을 적극적으로 받는 것도 아니고(고용), 일의 결과 완성 여부가 목적도 아니기(도급) 때문입니다.

감독이 고도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판단을 해서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위임받은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부 노동과 민사 사건을 주로 다루는 변호사들은 계약 내용의 구체적인 내용과 실질적 갑을관계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절대 '갑'이었던 클린스만?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에글라 훈련장에서 클린스만 감독이 선수들의 스트레칭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에글라 훈련장에서 클린스만 감독이 선수들의 스트레칭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통상적인 국가대표 감독 계약의 경우, ① 계약의 목적 (좋은 성적) ② 위임업무의 범위 (선발, 훈련, 지도 등) ③ 계약의 기간 (대회 기간 또는 대회 종료 때까지) ④ 당사자의 준수사항 (서로 간의 의무와 규정 준수 등) ⑤ 계약의 해지 (만료 때 또는 중도 해지 등의 방법과 요건, 보수 지급 여부 등)로 구성됩니다.

그런데 법조인들 모두 클린스만 감독이 특별하다고 말합니다. 영입 당시 협회가 논란에도 불구하고 모셔온 외국인 감독이란 점 때문입니다.

인지도가 있는 외국인 감독을 영입할 땐 그들이 제시한 조건을 받을지 말지가 계약 성사의 핵심이라고 합니다. 계약서 문구를 바꾸거나, '특약'으로 담기는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계약 기간을 외국인 감독이 원하는 방식으로 보장하고,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 떠나도 잔여 연봉을 모두 지급하는 방식 등입니다.

이 밖에 외국인 감독과의 계약 땐 분쟁 발생시 맡길 법원을 정하는 내용을 담기도 합니다. 한국 법원에서 할지, 모국의 법원이나 스포츠중재재판소(CAS)를 이용할 지 입니다. (※ 일부 법조인은 분쟁이 발생했을 때 기준이 되는 법률인 준거법을 감독 측의 요구에 따를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다만 그럴 경우 마지막 자존심까지 내놓는 것이라 현실적이지 않다는 법조인도 있습니다.)

또 감독과 함께 하는 코치진에 대한 선임 범위와 권한, 신분보장 등도 담깁니다.

보통 이런 제안을 감독의 에이전시가 자국의 로펌 자문을 받아 협회 측에 제안한다고 합니다.

계약서엔 협회가 '갑', 감독이 '을'로 표기되지만 실질적으론 감독이 절대 갑이 되는 구조라는 겁니다.

표면적으로 알려진 클린스만이 챙길 돈 70~100억원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을 마친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 대표팀 감독이 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인터뷰를 하던 중 웃고있다. 〈사진=연합뉴스〉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을 마친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 대표팀 감독이 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인터뷰를 하던 중 웃고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반적인 연봉 계약의 경우, 비밀 유지 의무를 담고 있어 당사자 사이에 합의가 없으면 공개할 수 없습니다. 대한축구협회도 클린스만 감독도 먼저 나서서 공개할 수 없는 겁니다.

여러 방식을 통해 알려진 클린스만 감독의 연봉은 20만 유로, 한화로 약 29억 원 정도라는 겁니다.

계약 기간 3년 6개월 중 남은 기간이 2년 6개월, 잔여 임기 동안의 연봉을 지급해야 하는데 대략 72억원 정도가 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실제 계약서에 담긴 조건과 특약에 따라 이 돈이 줄거나 늘 수 있습니다. 클린스만 감독과 함께 한 코치진까지 고려하면 100억원을 넘길 수도 있습니다.

물론 계약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클린스만 감독 측이 제안한 계약조건을 100% 수용했을 리도 만무해 '최대' 예상액을 넘진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클린스만 감독은 2016년 11월 미국 대표팀 감독에서도 경질된 바 있습니다.

2011년부터 5년간 축구 대표팀을 맡았고, 계속된 부진에 미국축구연맹이 그를 해임하며 위약금으로 620만 달러를 지급했습니다. 현재 환율 1300원대를 기준으로도 약 80억원 정도가 됩니다.

분쟁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는 만큼 계약서의 내용 안에서 합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략적인 클린스만? ... 대한민국 축구의 국제호구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사안 관련 임원 회의를 마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회의 결과를 발표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사안 관련 임원 회의를 마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회의 결과를 발표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흥미로운 건 대한축구협회의 경질 발표 전후 클린스만 감독의 말과 행동입니다.


아시안컵 4강전 패해 후 인터뷰에서 선수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 한 발언을 했습니다. 또 화상회의로 축구협회 회의에 참여한 직후 경질이 발표되기 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자신의 성과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모든 선수와 나의 코치진 그리고 한국 축구 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시안컵 준결승으로 이끌어준 여러분의 성원과 준결승전 패배 이전까지 지난 12개월 동안 13경기 연속 무패의 놀라운 여정에도 대단히 감사드린다”

경질 후 독일 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를 통해 '경기 결과가 성공적이었다'라거나 '대회 분석을 위해 서울에 왔지만 설 연휴라 아무도 없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또 정몽규 회장과 우연한 대화가 발단이 되어 감독이 됐고, 친분을 과시합니다.

그의 코치진 역시 선수들과 한국 언론 탓을 하는 글을 써 구설에 오르고 있습니다.

법조인들은 이런 모습을 잘 구성된 전략의 하나로 분석했습니다.

11개월 동안 성적도 나쁘지 않은데 경질되는 것은 본인보다 협회나 선수들의 책임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는 모습이란 겁니다.

특히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는 협회와 정 회장을 상대로 '재판이나 중재로 가서 좋을 것이 없다'는 취지로 날린 견제구란 해석도 내놨습니다.

클린스만 감독의 행보를 통해 계약서의 해지 요건을 조심스럽게 가늠해 보기도 합니다.

잔여 계약 기간의 연봉(손해배상액 또는 위약금) 외에 일종의 위약벌 규정이 있었을 가능성입니다. 다시 말해 감독의 잘못이 없을 경우 연봉 외에 추가로 손해배상을 더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최악의 경우입니다.

계약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법조인들도 현재 언론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내놓은 분석일 뿐입니다.

다만 협회가 불성실해 보이기까지 했던 클린스만 감독과 헤어질 결심을 했던 만큼 좀 더 단호한 대응을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요구하는 돈을 전부 주거나 사비까지 털어 수습하는 모습만 보이면 대한민국 축구계가 클린스만 감독에게 끌려다니다 그의 주머니만 더 채워준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도움말 주신 분들

국내 스포츠 및 축구 관련 법률자문 경험이 있는 변호사들

노동과 민사 사건을 다뤄본 판사와 변호사들.


※ 참고 논문

장달영, '축구 국가대표 감독계약의 법적 성격', 스포츠와 법 제16권 제3호, 2013

정다운, 위임계약 해지에 따른 손해배상의 범위, 인하대학교 법학연구 제25집 제1호, 2022

백경일, 위임계약의 종료에 관한 고찰, 충남대학교 법학연구 제34권 제3호, 2023
서초동 사활(死活)

서울 서초동에는 대법원과 각급 법원들, 검찰청, 그리고 수많은 변호사 사무실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법조인의 절반 이상이 밥벌이를 하는 곳입니다. 시민들에게 멀지만 가까운 곳으로 이 곳의 변화가 대한민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서초동'이 법조계의 고유명사화 되었습니다.
사활(死活)은 바둑에서 돌의 삶과 죽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사활문제를 잘 풀어야 바둑 실력이 늡니다. 사법개혁 검찰개혁 등등 이곳에서 시민들은 잘 모르지만 벌어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잘 모르지만 중요한 일들, 모두의 사활을 건 사건과 현상, 정책을 분석하고, 정리해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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