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밀착카메라] 일제 패망, 백범의 '눈물'…또 다른 의미는

입력 2019-08-15 21:52 수정 2019-08-15 23:45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트위터


[앵커]

1945년 8월 10일. 일본의 패망 때까지 광복군은 우리 손으로 직접 일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온 힘을 다했습니다.
일제의 패망은 우리에게 기쁜 일이었지만, 백범 김구 선생은 또 다른 의미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당시의 기록과 증언을 밀착카메라가 담았습니다. 

윤재영 기자입니다.

[기자]

[고 윤경빈 선생 (2013년 11월 23일 임정 환국일 기념 강의) : 백범 선생이 그날 저녁에 주석실에서 만찬을 하고 계셨어요. 산시성 주석이 잠깐 나갔다 들어오더니 '일본이 손들었다'.]

한국광복군이 미국 OSS와 국내 침투를 준비한 독수리작전.

1기생 50명의 훈련이 1945년 8월 4일 끝나고 투입이 결정됐지만, 8월 10일, 일제의 항복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우리의 도청에 해당하는 중국의 산시성 공관.

안에 있는 한 건물에서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 선생이 성 주석과의 식사 중 일제 항복 소식을 들었습니다.

[왕메이/시안박물원 부관장 : 그(김구 선생)가 광복군 활동에 대한 시찰을 끝낸 이후 여기서 일본 투항 소식을 들었습니다.]

광복군 스스로의 힘으로 일본을 패망시키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했습니다.

김구 선생의 경위대장이자 광복군이었던 고 윤경빈 선생이 생전에 남긴 말입니다.

[고 윤경빈 선생 (2013년 11월 23일 임정 환국일 기념 강의) : 헤어지고 나오시면서 백범 선생이 눈물을 보이셨어요. 우리가 뭔가 하나만 이 전쟁에 공을 세울 수 있는데. 그것도 이루지 못하고 일왕이 손을 들어버리니…]

하지만 8월18일 OSS 대원과 함께 서울 여의도에 처음 진입한 것 역시 광복군 대원들이었습니다.

[한시준/단국대 사학과 교수 : 혼자 싸워서 이길 수 없으니까 연합군 지위를 얻는 걸 목표로 독립군 하시던 지혜.
한국의 역사는 한국 민족이 주인공이 돼야 되는데 미국, 일본이 주인공이 돼서 한국을 바라보니까 한국 역사가 왜소해지죠.]

충칭에 복원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물.

광복군 군의처장이자 김구 선생의 주치의였던 유진동 선생의 아들 유수동 씨를 만났습니다.

[유수동/한국광복군 후손 : 이분이 제 아버지 유진동. 아버지는 자신의 신념을 따라 끝까지 행동하셨고 자식으로서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달 선생 등 광복군과 조선의용대원들이 묻혔다고 알려진 충칭시 한 산기슭.

현재는 무덤 흔적도 찾을 수 없고 재개발 공사로 가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 곳을 찾아 헌화하는 한국인들이 있습니다.

[마채운/헌화객 : (현장에) 아무것도 없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만큼 그분들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으니까 저희가 기억을 하고 소중히 여겨야겠다…]

과거 광복군 묘소 관리가 허술하다고 지적됐던 한국에서는 어떨까.

일본과 싸우다 중국 각지에서 숨진 광복군 17명의 합동묘소입니다.

2년 전까지만해도 봉분 하나가 전부였지만 최근 추모 조형물이 세워지면서 새단장을 했습니다.

서울 서대문독립공원은 광복군 대원을 비롯해 독립지사 30명의 발바닥 조형을 전시한 길을 만들었습니다.

[김영관/한국광복군 생존자 : 우리가 만든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서 우리 앞날을 위해서 힘쓰잔 얘기예요. 고맙습니다. 만져봐야겠다.]

현재까지 광복군으로 확인된 사람은 567명, 생존자는 18명입니다.

'통한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오늘과 내일에 대비하자.'

광복군 김영관 지사는 자신의 발바닥 조형에 이런 글귀를 남겼습니다.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후손에게 전하고자 했던 뜻일 것입니다.

(영상취재 : 최진)

관련기사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