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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노역 아픈 역사…경제논리에 묻혀 철거 앞둔 '삼릉마을'

입력 2018-09-23 21:31 수정 2018-09-23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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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범기업 미쓰비시는 한국인과 중국인 등을 억지로 끌고 가 노동을 착취해놓고는 유독 한국인 피해자들에게는 사과 한 번 없었습니다. 그 사이 우리나라에 남아있던 강제동원의 흔적은 점점 사라졌습니다. 유일하게 그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 인천 부평 일대인데, 박물관으로 만들려던 이곳도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어떤 사연인지 박창규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도시 주택가 가운데 네모난 공간은 섬처럼 고립됐습니다.

주변 건물들이 높게 올라가는 동안 이곳은 시간이 비껴갔습니다.

납작한 기와는 깨져나갔고 삼각 지붕 서까래는 부서졌습니다.

전형적인 일본식 주택.

일제 강점기 미쓰비시 군수 공장에서 노역하던 조선인들 사택입니다.

강제징병이나 위안부로 끌려가는 걸 피하려는 수천 명이 군수품 생산에 동원됐습니다.

[송백진/당시 미쓰비시 공장 근무 : 징용은 해제시켜줘. 말하자면 군수공장이거든. 징용은 가지 않고 거기만 잘 근무해라]

이곳 주변 행정 구역명은 부평 1동.

하지만 주민들은 삼릉마을이라고 부릅니다.

삼릉은 일본어로 미쓰비시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건물은 헐었지만 아픈 기억은 아직 지명에 남았습니다.

이곳 조선인들 삶은 고되고 또 험했습니다.

무거운 포탄과 총기를 만들다 뼈가 부러지고 살이 불에 탔습니다.

제대로 된 치료는 받지 못했습니다.

[송백진/당시 미쓰비시 공장 근무 : 다치면은 무섭게 아프지. 공장에서 해주는 건 빨간약 소독약이나 바르고…]

5평 안 되는 좁은 공간에서 8명 정도가 함께 먹고 잤습니다.

외벽과 지붕은 벽돌 한 장, 널빤지 하나 두께입니다.

하지만 참상은 그저 이야기로만 전해질 뿐,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김현아/부평 역사박물관 학예사 : 그렇게 많은 사업장이 있었음에도 지금 남아있는 건 이곳 부평에 있는 미쓰비시 사택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 일제 강제 노역 현장은 8400여 곳.

650만 명이 동원됐습니다.

그 많던 현장은 이제 다 사라지고 이곳도 내년이면 재개발을 위해 철거됩니다.

단 한 채라도 남겨 기억 공간으로 만들자는 호소는 경제 논리에 묻혔습니다.

(영상디자인 : 이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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