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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를 취재해야 하는 이유

입력 2017-11-23 16:28

삼성전자 희귀병 사망 54명 확인 #임진택 기자
뉴스의 숨은 뒷얘기! JTBC 취재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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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희귀병 사망 54명 확인 #임진택 기자
뉴스의 숨은 뒷얘기! JTBC 취재수첩

[취재수첩]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를 취재해야 하는 이유


## 11월 22일 / 삼성전자 직업병 기획 보도를 하다

지난 21일은 고(故) 이혜정씨의 49재였습니다. 혜정 씨는 추석이었던 10월 4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JTBC 탐사보도팀이 준비한 삼성전자 직업병 기획 첫 보도가 나간 날이기도 합니다.

"10년만 아이들 옆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5년 생존율이 20~30%밖에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너무 무서웠거든요"

저 역시 혜정 씨처럼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그의 두려움과 절박함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혜정 씨는 몸이 굳어가는 상황에서도 걸레질을 할 수 없거나 아이들을 챙길 수 없는 처지를 아파했습니다.

혜정 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5년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 공장에 취직했습니다. 반도체 웨이퍼(칩을 꼽는 원형 기판)를 굽고 씻어내는 일이었습니다. 두통과 구토 등에 시달렸고 3년 만에 삼성전자를 나왔습니다. 이후 손발이 붓고 나중에는 몸이 서서히 굳어 주먹조차도 쥘 수 없게 됐습니다. 동네 병원에서도 병의 원인을 몰랐습니다. 결국 2013년에 가서야 '전신성 경화증' 판정을 받았습니다. 몸이 서서히 굳고 손과 발이 괴사하면서 결국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병입니다. 10만 명당 한명 정도만이 걸릴 정도로 희귀한 병입니다. 혜정씨의 산재 신청은 거절됐습니다.

삼성전자가 인도적 차원에서 준다는 '보상금'의 대상에서도 제외됐습니다.

혜정씨 가족에게는 왜 이런 시련이 닥친 것일까요. 정말 삼성반도체의 작업 환경과 그의 희귀병 사이에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일까요.

## 10월 9일 / 사전 취재를 시작하다.

탐사팀은 추석 직후 삼성전자의 직업병 실태를 다루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난 10년간 보도의 흐름과 중요 사건들을 모았습니다.

2007년 3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근무하던 고(故) 황유미 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이 문제는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당시 23살이었습니다. 반도체 노동자 인권단체인 '반올림'이 만들어 진 시점도 이때입니다. 관련 피해 제보가 잇따랐고 사회적 이슈가 됐습니다.

정부와 대학의 반도체 사업장에 대한 역학조사도 잇따랐습니다. 2008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역학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반도체 여성 노동자의 경우, 혈액암의 일종인 '비호지킨 림프종' 발병 위험이 일반의 2배에서 많게는 5배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고용노동부는 향후 10년간 심층연구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듬해 서울대 산학협력단 조사에서는 삼성반도체 기흥 공장에서 발암 물질인 '벤젠'이 검출되기도 했습니다. 2013년 고용노동부는 삼성반도체 화성 공장을 조사했습니다. 불산이 누출돼 노동자 1명이 사망한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 만든 안전진단 보고서는 작업장 안전 관리 실태를 지적했습니다.

'작업자는 발암물질인 '비소'에 노출될 수 있으나 경고표시가 없다' (505쪽)
'독성물질을 영업비밀로 분류해 관리하는 것은 부적정하다' (490쪽)
'전반적으로 문제점을 축소하려는 문화가 있다' (640쪽)

결국 2014년 5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노동자의 백혈병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했습니다.

"저희 사업장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백혈병 등 난치병에 걸려 투병하고 있고 그분들 중 일부는 세상을 떠나셨다" (권오현 부회장)

이후 삼성은 자체 '보상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현재까지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해주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삼성의 입장은 명확하고 일관적입니다. 해당 사업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난치병에 걸린 건 맞지만 그것은 사업장의 작업 환경 때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그럴 수 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해당 사업장, 해당 공정의 '발병률'입니다.

고 황유미, 고 이혜정씨 와 같은 사례가 얼마나 많이 나와야 우리는 삼성의 작업 환경을 의심할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 어떤 검증을 거쳐야 그 의심을 온전히 거둘 수 있는 것일까요?

## 10월 15일 / 반올림을 만나다.

탐사팀은 어느 일요일 오후 사당동에 위치한 반올림의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10년간 반올림 활동을 해 온 공유정옥(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씨와 임자운 변호사를 만났습니다. 이들은 지쳐보였습니다. 하긴 10년이란 긴 시간입니다. 이 시간 동안 이들은 삼성전자 등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업 재해 피해 제보를 모으고 삼성의 사과와 제대로 된 보상을 요구해 왔습니다.

"삼성이 보상위원회를 꾸려 피해자 분들에게 지원을 해주고는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전혀 안 된 겁니다." (임자운)

삼성은 질병과 사업장 근무와의 인과 관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 삼성이 정한 보상 기준에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보상(인도적 지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근로복지공단에서도 산재를 인정 받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법원을 통한 산재소송 역시 마찬가집니다.

"해당 사업장의 사망률을 확인하기가 어려운가요?" (탐사팀)
이 질문에 이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정확한 사망 숫자를 알면 일반인의 해당 질병 사망률과 비교할 수 있지 않나요?" (탐사팀)
"저희가 발표하는 피해자 숫자는 '제보'를 기준으로 한 것이라 정확한 숫자를 확인해야 해요" (공유정옥)

"그럼 저희가 그 숫자를 확인해 볼게요. 시간이 걸리겠지만" (탐사팀)

반올림은 며칠 동안 내부 논의를 했습니다. 제보 정보를 언론에 제공하는 것이 옳은지를 놓고 고민한 겁니다. 결국 반올림은 제보자들의 동의를 얻어 인적 정보(이름, 성별, 나이, 입사년도, 근무한 공정 라인, 퇴사년도, 발병 년도, 사망자의 경우 사망 년도 등)를 탐사팀에 제공했습니다.

## 10월 16일 / 삼성전자DS 사망 제보 80건 확인을 시작하다

반올림에 지난 10년간 제보된 삼성전자 반도체, LCD(일부 협력업체 포함) 근무 사망 건수는 모두 80건입니다. 올해에도 두 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먼저 근로복지 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던 명단부터 확인했습니다. 다음엔 산재 소송을 했던 분들입니다. 이런 식으로 22명을 확인했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그야말로 발로 뛰어서 존재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확인은 쉽지 않았습니다. 전화번호가 바뀐 경우가 많았습니다. 본인이나 가족이 아닌 제3자가 제보를 한 경우엔 확인이 더 어려웠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54명(협력업체 6명 포함)을 확인했습니다. 확신할 수 없는 경우는 모두 제외했습니다.

[취재수첩]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를 취재해야 하는 이유


여성 33명의 평균 사망 나이는 31.1세, 남성 21명은 41.5세였습니다.
발병 나이의 경우 20대, 30대에 압도적으로 몰려 있었습니다.
질병별로는 백혈병이 20명이었고 림프종이나 재생불량성빈혈, 골수이형성증후군 등 혈액암 전체는 28명이었습니다. 전제 사망 확인 54명의 절반이 넘는 숫자입니다.

[취재수첩]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를 취재해야 하는 이유


이밖에 뇌종양 6명, 폐암 4명, 유방암과 난소암도 각각 3명이었습니다.
10만 명당 한 두명이라는 희귀질환인 전신성경화증 등도 각각 1명씩 이었습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의 경우 사망자가 29명에 달했습니다.
1993년 뇌종양 발병자부터 시작해 2015년까지 발병, 사망자가 지속적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1995년에는 2명이 재생불량성빈혈에 걸렸습니다.(고 양00 1989-1995 근무, 고 이00 1992-1996 근무) 당시 직원 수는 지금보다는 훨씬 적었을 터인데, 한 해 두 명이나 희귀질환인 이 병에 걸린 것입니다.

## 11월 10일 / 서울대 백도명 교수를 찾아가다

서울대 백도명 교수 연구팀은 보건학, 특히 직업환경의학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를 인정받습니다. 백 교수는 2014년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의 사회적 합의를 추구했던 조정위원 3분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삼성전자 DS 부분 근무 사망 54명'의 의미를 가장 정확히 설명해 줄 수 있는 분이라고 저희는 판단했습니다.

이른 아침, 연구실에서 만난 백 교수는 자료를 꼼꼼히 체크했습니다.
"이건 충분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겠는데요. 이런 조사가 처음이기도 하고…" (백도명 교수)

일주일 뒤 백 교수 연구팀은 분석 결과를 저희에게 알려 왔습니다. 결론적으로 삼성전자 근무자의 사망률은 일반인의 사망률보다 '충분히 높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분석에 여러 가지 가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통상 특정 작업 환경의 특정 질병 사망률을 계산하기 위해선 사망자 숫자와 같은 환경에서 일을 한 작업자 숫자를 알아야 합니다. 간단한 계산입니다. 이를 해당 질병의 일반인 사망률과 비교하면 됩니다. 하지만 삼성은 아직까지 한 번도 특정 작업장의 근무자 숫자를 밝힌 적이 없습니다.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할 수 없이 연구팀은 사망자 54명에 대해 각각의 '기대인구수'를 계산했습니다. 각 질병에 대한 일반적 사망률을 대변에 놓고 사망자 A씨의 경우를 역산한 겁니다. A씨가 일한 작업장에 위험 요인이 없다면 얼마나 많은 작업자 숫자가 있어야 일반인 사망률과 같아지는냐를 따진 겁니다.

기대인구수가 많다는 건 그만큼 그 공정에 '일반적이지 않은' 위험 요인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취재수첩]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를 취재해야 하는 이유


[취재수첩]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를 취재해야 하는 이유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기대인구수는 7576명. 일반적인 경우라면 황 씨와 같은 나이 성별 근무 년도 등의 조건에서 백혈병으로 사망할 확률은 7576분의 1입니다.

"한 라인의 오퍼레이터가 500명이 안 되는 숫자인 거에 비해 굉장히 높은 숫자여서, 위험이 몰려있다고 볼 수 있다" 백 교수의 분석입니다.

[취재수첩]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를 취재해야 하는 이유


기대인구수는 희귀질병일수록, 사망자의 나이가 어릴수록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29세 여성 폐암 사망자의 기대인구수는 6만2천5백 명이었고 26세 여성 유방암 사망자 4만 명, 28세 여성 림프종 사망자 2만5천명 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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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기대인구수는 930명. 폐암에 걸려 45세에 사망한 남성 근무자입니다.
최대 기대인구수는 11만 1111명 골수이형성증후군으로 23세에 사망한 여성입니다.

## 11월 22일 / 'JTBC가 단정적 보도를 일방적으로 했다'는 삼성에게…

이 취재수첩을 쓰는 동안 삼성이 해당 홈페이지 알림 코너를 통해 저희 보도에 대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삼성뉴스룸 해당 기사 ☞ http://bit.ly/2zunKaf

세 가지 반박을 해봅니다.

우선 'JTBC가 마치 54명의 사망자가 모두 반도체 직업병에 걸려 사망한 것처럼 보도했다'는 주장입니다. 저희는 보도에서 '직업병'을 단정한 적이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이 작업장에서 근무한 뒤 희귀병에 걸려 사망했는지'를 확인했을 뿐입니다. 이는 "저희 사업장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백혈병 등 난치병에 걸려 투병하고 있고 그분들 중 일부는 세상을 떠나셨다"(2014년 5월 14일, 권오현)고 했던 삼성전자 권 부회장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두 번째, '일반인과 비교하면 질병 발생률은 어떻게 차이 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섭니다. 일반인과 비교를 위해서는 삼성 반도체 해당 공정의 노동자 숫자를 알아야 합니다. 삼성은 10년 동안 이를 영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때문에 백도명 교수 연구팀은 여러 가정을 더해 '기대인구수'를 역산하는 방법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 교수는 "제한적 정보에도 해당 공정의 위험도를 추론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마지막, '국내 반도체 근로자의 암 사망률은 일반인 대비 0.74로, 일반인보다 더 낮은 수준이다'라는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조사 결과입니다. 삼성 자주 인용하는 통계입니다. 이 역시도 학계에선 반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역학(疫學, epidemiology / 인간 집단 내에서 일어나는 유행병의 원인을 규명하는 학문)에서는 건강노동자효과(healthy worker effect)라고 부르는 현상이 있습니다. 특정 작업 환경 근무자들이 얼마나 위험에 노출돼 있는가를 일반인과 비교할 때 종종 발생할 수 있는 분석적 오류를 지적한 이론입니다.

삼성전자의 경우처럼 특정 노동에 종사하는 근무자들은 젊고 건강한 상태에서 취업하며 몸이 아픈 경우 일찍 퇴사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다양한 연령대와 아픈 경우를 다 포함하는 일반인과 액면 그대로 비교하는 것은 오류를 부를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대법원 첫 승소 사례인 고 황유미씨 재판 때 원고 측이 제출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저희 취재는 이제 시작입니다. 여건상 '사망' 제보부터 먼저 확인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유의미한 분석 결과를 얻었기 때문에 이제 '발병' 제보도 들여다 볼 수밖에 없습니다. 300명이 넘는다는 반도체 LCD 등 관련 산업 전체의 발병 제보를 확인하는 작업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권과 학계가 이 문제에 적극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직전인 4월 13일 서울 광화문 '생명존중 안전사회를 위한 대국민 약속식'에서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해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 약속이 꼭 지켜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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