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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낯설지 않은…'일본을 형님으로 모시겠소'

입력 2017-04-06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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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일본을 형님으로 모시겠소."

5·16쿠데타 직후인 1961년 11월 12일.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회의 의장은 기시 노부스케를 비롯한 일본의 고위정객들과 만나 머리를 깍듯이 숙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일화는 그를 평가절하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었습니다. 65년 한일국교정상화의 주역인 이동원 전 외무부장관은 당시 이 만남이 꺼져가던 한일회담에 다시 불을 지핀 계기가 되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군사정변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라도 '경제'를 살려야만 했던 대통령.

고작 무상으로 받아낸 3억 달러에 위안부, 피폭자, 사할린 징용자 등 힘없는 피해자들은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는 한일청구권협정 제2조였습니다.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1965년에 던져진 이 단어들은 지금의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결코 낯선 단어가 아니죠.

"최종적 그리고 불가역적… "

우리는 50년이 지난 2015년. 그 아버지의 후계자를 자처한 대통령의 시대에 같은 말을 또다시 강요받아야 했지요.

"일본을 형님으로 모시겠소"

우리는 아직도 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잘못된 역사의 매듭은 오랜 시간 상처를 남깁니다.

그래서일까…85일 만에 다시 돌아온 일본 대사는 밀린 빚이라도 받아내겠다는 듯 대통령 권한대행을 만나 담판을 짓겠다, 위세를 부렸습니다.

그리고 일본대사가 돌아온 바로 그날, 이 봄에 떠난 또 한 소녀. 동백꽃 할머니.

꼿꼿함과 단아함으로 '동백꽃'이라 불렸던 아흔아홉 살의 소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이 외롭지 않았음은 오로지 빈소를 가득 메운 소녀들의 배웅 때문이었을 뿐….

이른바 장미대선에서 이기겠다고 벚꽃 유세는 한창인데 누군가가 이기고 나면 그 누군가에게 일본은 형님이 아닐 수 있을까….

오늘(6일)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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