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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풀영상] 김훈 "내가 쓴 글, 무섭고 징그러운 느낌"

입력 2015-10-08 21:54 수정 2016-03-04 11:39

"사후 명성이나 작품 욕심 없어"
"기계 공포증 있어…운전도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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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명성이나 작품 욕심 없어"
"기계 공포증 있어…운전도 못 해"

[앵커]

네. 목요일 이 시간 오늘(8일)도 매우 특별한 문화계 인물 한 분을 모셨습니다. 사실 조금 어렵게 모셨습니다. 잘 나오시질 않는 분이어서 어렵게 모셨는데요, 작가분이십니다. 소설가이지만 산문집을 가끔 내시죠. 이번에 바로 산문집을 또 내셨습니다. '라면을 끓이며'라는 제목의 산문집을 내셨는데 오늘 특별히 모셨습니다.

김훈 작가이십니다. 안녕하십니까

[김훈/작가 : 네. 김훈입니다. 반갑습니다.]

[앵커]

이번에 내신 산문집 제목이 '라면을 끓이며'입니다. 그런데 책을 열자마자 나오는 저자 약력이 굉장히 간단합니다. 사실 약력을 안 적어도 다 아시는 분이지만. 1948년 서울 출생, 1948년생 중에 문화계 인물들이 많이 계신 걸로 제가… (많이 있죠, 제 또래들이) 그렇습니다. 2000년까지 여러 직장을 전전. 소설 <칼의 노래>, 산문 <풍경과 상처> 외 여럿. 왜 다 생략하셨습니까?

[김훈/작가 : 그 정도면 나는 충분하다 생각했고 그 안에 모든 게 다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빈약하다고 해서 한 줄 더 쓰라고 출판사에서 그래서 내가 이걸 써놨어요, 처음에는. 육군 만기제대 괄호하고 예비역 병장이라고 해놨는데, 그 또한 내세울 만한 경력이 안 돼서 그것도 없애버리고 그렇게 했는데 (육군 병장은 대단한 이력입니다) 그래도 내 48년생 또래 중에 예비역 병장 아닌 사람이 없는데, 나만 거기다 만기제대 예비역 병장이라고 써놓으니 웃을 것 같아서 그걸 뺐어요.]

[앵커]

그러시면서 이전 산문집 세 권에 실린 글의 일부, 또 후에 새롭게 쓴 글들을 합쳐냈지만, 이 책을 출간하면서 앞에 세 권하고 남은 글들은 모두 버린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버리신 겁니까?

[김훈/작가 : 버린다는 말이 참 내 마음에 들었는데, 이 버린다는 말은 앞서 세 권의 책 제목과 제목 아래 들어간 모든 편제를 버린다는 뜻이고, 거기에 남겨진 글들을 더 이상 복제하거나 유통시키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야말로 버린 거죠.]

[앵커]

왜 그러셨습니까?

[김훈/작가 : 그 글들이 낡아서요. 낡고 세월의 풍화를 견디지 못해서 바래버렸고, 더 이상 유효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걸 보면은 내가 왜이랬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리고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나는 책을 써서 사는 사람이지만, 내가 책을 써내면은 무슨 생각이 드느냐면 다시는 이 짓을 안 한다고 결심을 해요. 다시는 안 하겠다.]

[앵커]

매번 책을 쓰실 때마다?

[김훈/작가 : 내가 쓴 책을 잘 거들떠보지 않아요. 너무 무섭고 징그럽고 참 아득한 느낌이 들어서 안 보는데. 다시는 쓰지 말아야겠다 그렇게 맹세를 해놓고 한 두어 달이 지나면 또 쓰는 거예요. 그것이 참 나의 팔자고 나의 비극이로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앵커]

그렇게까지 대중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닫으려고 하는 자의식 같은 것은 얼핏 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김훈/작가 :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은, 나는 내 글로 여론을 형성하는 데 기여해야겠다는 목표나 그런 허영심을 갖고 있지 않아요. 그럼 왜 글을 쓰느냐. 나는 오직 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이 있어요. 나 자신의 진실 나의 슬픔과 고통과 기쁨과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과 추함, 내가 느끼는 악과 억압 이런 것들을 표현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고. 또 하나의 소망은 내가 나의 진실을 표현함으로써 그것을 남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소망도 사실은 있어요. 없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그것이 이해받지 못한다면은 그 또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선 나를 정확하고 과장 없이 표현해야 한다. 이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죠.]

[앵커]

알겠습니다. 다시 책 얘기로 잠깐 돌아가겠습니다. 가장 처음 보게 되는 글은 책 제목과 같은 겁니다. 라면을 끓이며.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고 난 다음에 라면을 다시 봤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마는. 라면을 주제로 삼은 이유는 뭡니까?

[김훈/작가 : 라면. 이게 1960년대 초에 나왔잖아요? 이 시대에 많이 먹는 음식이 됐는데. 내가 살아온 60년대 이후 시대의 풍경과 표정, 시대의 질감과 정확하게 닮아있다고 생각했어요. 이것은 뭐냐면 우리가 이렇게 모든 대중들이 개별적으로 소외돼 있잖아요? 그렇게 소외된 고립. 고립된 다수의 대중들 위에 자본이나 권력의 그 거대한 전체주의가 형성이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무지막지한 전체주의와 또 대체 없이 개별적으로 고립된 이 양극단의 풍경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이 시대에. 그 시대의 먹거리가 바로 이 라면인 것이죠.]

[앵커]

사실 제가 6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라면이 나온 날, 바로 그날, 처음 라면을 먹었던 사람 중에 하나인데요. 그로부터 50여년 뒤에…

[김훈/작가 : 깜짝 놀랐지요? 이렇게 맛있는 게 있나…]

[앵커]

예. 그로부터 50여년 뒤에 라면에 이렇게 많은 함의가 있다는 것은 처음 느끼게 됩니다. 알겠습니다. 조금 분위기를 좀 바꾸기 위해서 쓰신 책의 일부를 직접 낭독해주실 수도 있을까요? 작가분께서 읽어 주시는 그…

[김훈/작가 : 제가 그 '라면을 끓이며'라는 글의 마지막 페이지를 반쯤만 읽어보겠습니다. 결론부에 해당하는…]

[앵커]

고맙습니다.

[김훈/작가 : 라면을 끓일 때 나는 미군에게 얻어먹던 내 유년의 레이손 맛과 초콜릿의 맛을 생각한다. 라면을 끓일 때 나는 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양계장의 닭들과 사지를 결박당한 과수원의 포도나무 사과나무 배나무들과 양식장에서 들끓는 물고기들을 생각한다. 라면을 끓일 때 나는 사람들의 목구멍을 찌르며 넘어가는 36억개 라면… 그 라면의 분말스프의 맛을 생각한다. 파와 계란의 힘으로 조금은 순해진 내 라면 국물의 맛을 36억개의 라면에게 전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한눈을 팔면서 라면이 끓어 넘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라면의 길은 아직도 멀다… 여기까지입니다.]

[앵커]

예. 고맙습니다. 라면 잘 끓이십니까? 그런데? 그 책에 보면 그렇게 아주 잘 끓이시는 거 같진 않습니다.

[김훈/작가 : 아니 그래서 내가 그… 개발한 조리법이 있는데 굉장히 많은 실험과 실패를 거듭해서 도달한 레시피인데. 라면 껍데기에 조리법이 쓰여 있잖아요? 그대로 하면은 라면밖에는 안 되는 거예요. 내 조리법으로 하면은 라면을 조금 넘어설 수가 있어. 그것은 굉장히 사소한 것이 아니고 중요한 차이입니다. 이것이 사소한 것이 아니에요.]

[앵커]

책에서 본대로 하자면요? 대파를 한 2분쯤 끓인 뒤에 넣고.

[김훈/작가 : 아뇨 아뇨 대파를 나중에 넣어야 해요]

[앵커]

그러니까요.

[김훈/작가 : 물은 먼저 끓인 다음에]

[앵커]

물을 끓인 뒤에…

[김훈/작가 : 대파를 처음부터 넣고 끓이면 파가 다 곯아서 이게 빠져가지고 아무 맛도 없어요]

[앵커]

그런 다음에 대파를 넣어가지고 스프는 3분의 2만 넣으라고 하셨죠?

[김훈/작가 : 스프를 넣고 계란을 넣어야 하는데. 계란은 처음부터 넣으면 안 돼요. 딱딱하게 굳어버려서 다 망치는 거예요.]

[앵커]

처음부터 넣어서 풀면 되지 않습니까?

[김훈/작가 : 아뇨 아뇨 풀면 이게 실처럼 돼서 엉켜버려 이게.]

[앵커]

아, 예. 글을 쓰시는 거나 아니면 라면 하나 끓여 드시는 거나 너무 자기 인생을 피곤하게 만드시지 않으십니까?

[김훈/작가 : 그렇죠. 피곤하고 너무 나 자신이 지쳐가지고 아까도 그 말씀을 드렸지만 그만하겠다는 것도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앵커]

그러다 한 두 달 지나면 다시 쓰시고

[김훈/작가 : 또 써야지.]

[앵커]

아무튼 김훈 셰프의 라면 끓이는 법이였습니다.

아버지의 대한 글도 눈에 띄고 있습니다. 근데 어찌 보면 좀 비슷한 삶을 사신 부분이 있지 않나, 물론 아버님께서는 임시정부를 따라서 망명생활을 하신 김광주 선생이라는 것은 저희들이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데… 역시 기자를 하셨었고.

[김훈/작가 : 돌아오셔서 기자를 하셨죠.]

[앵커]

그리고 또 작가도 하셨고 그래서 비슷한 삶의 궤적.

[김훈/작가 : 생애가 비슷하죠. 근데 저는 아버지를 닮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저의 돌아가신 아버지는 1910년생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우리나라가 망해서 없어진 해에 태어났어요.]

[앵커]

그러시군요.

[김훈/작가 : 저는 1948년생입니다. 나는 우리나라 정부수립을 하는 해에 태어났죠. 아버지의 생애와 나의 생애는 참 그 한국 근대사의 뭔가 비극을 상징하고 있는 거지요. 아버지는 젊었을 때 만주를 유랑하다 오셨는데, 유랑병이 계속 남아가지고 그렇게 평생을… 말하자면 이 현실에 안주를 못 하고 떠돌고 헤매고 그렇게 그 시대와의 갈등, 불화를 참지 못하고 자기 몸을 갈구고 다녔어요. 집에도 안 오시고… 그래서 나는 아버지는 나보다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거든요. 그러니까 이제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어요. 아버지가 왜 그러셨는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나는 아버지를 묻었는데 울지를 않았어요. 울지를 않고. 나는… 나는… 내 아버지,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앵커]

김훈 작가 하면 사실 문체에 대한 이야기가 꼭 나옵니다. 글에 힘이 있다.

[김훈/작가 : 내가 주어와 동사만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실현할 수 없는 어떤 허영심을 말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 또한. 참 심한말을 했구나 싶은데. 그것은 냉험하고 간단명료하고 사실에 토대를 하고 감정을 억제하고. 나는 JTBC 뉴스를 볼 때 손석희 앵커가 뉴스를 다루거나 진행하는 것을 보고, 아 저것은 내가 지향하려는 문체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점은 아주 기분이 좋게 동지를 만나는, 내가 글이라면 저쪽은 말인데. 그러나 사실의 바탕은 같은 것이잖아요 그게. 그런 안도감 같은 것을 느꼈어요.]

[앵커]

네, 고맙습니다. 여전히 육필로 쓰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김훈/작가 : 네. 저는 기계를 다루는 건 기계 공포증이 있어가지고. 나는 자동차 운전도 못하고 사진도 안 찍어요. 난 평생 사진을 안 찍어요. 카메라를 만지는 것을 싫어해요. (아, 본인이 찍질 않으신다고요?) 네. 안 찍죠, 나는. 그리고 내가 다루는 기계는 오직 자전거뿐이에요. 자전거 이외에는 기계를 일체 만지지를 않고 가까이 안 가요]

[앵커]

요즘도 그러면 하루에 5장만 쓰십니까? 원고지로?

[김훈/작가 : 그거는 어려워요. 하루에 5장을 쓰면 근 한 달에 150장을 쓰는 거잖아요.]

[앵커]

책상 앞에 '일필오'라고 이렇게 붙어 있다고 제가 들었는데.

[김훈/작가 : 예. 하루에 반드시 5매를 쓰지. 하루에 5장만 쓸 수 있다면 만사가 해결이 돼요.]

[앵커]

그러니까 제가 의미를 거꾸로 읽었는데, 더 쓸 수 있어도 5장으로 하는 게 아니라.

[김훈/작가 : 아니요. 최소한 5장은 쓰자는 거죠.]

[앵커]

아, 그러면 원래 5장도 잘 안 나오십니까?

[김훈/작가 : 5장이면 한 달에 150장이면 10달이면 장편소설 하나가 나온다는데,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게 따지고 보니까 그렇군요) 그건 안 돼요. 하루에 5장을 쓰는 그 행위가 2, 3일은 됩니다. 2, 3일은 되는데 4, 5일 지나가면 그게 안 돼요.]

[앵커]

산문집도 반갑지만, 소설을 기다리는 분들도 많이 계신데요. 혹시 가까운 시일 내에 출간 계획이 있으십니까? 하루 5장씩만 꼬박꼬박 쓰시면.

[김훈/작가 : 하루 5매를 해야 되는데 그 소설을 쓰다가 나로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해가지고 옆으로 밀쳐놨어요. 그 밀쳐놓은 건이 한 두세 건이 되는데 그걸 뭐 어떻게 해야 될지는 모르죠. 역시 제일 급한 사람이 저 아니겠습니까 독자보다도. 오직 기다려달라는 말 이외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요]

[앵커]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질문을 한 가지만 드리겠습니다. 김훈 작가님 본인이 되고 싶거나, 하고 싶거나 하는 것이 분명 있으실 텐데 그것과 본인이 지금 하고 있는 것에 괴리가 많습니까?

[김훈/작가 : 난 뭐가 꼭 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없어요 내가 무슨 사후에 나의 명성을 독자들이 나를 기억해줄 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런 욕심이 없어요. 진짜 없어요. 나는 그냥 매일매일 살아갈 뿐이에요 단지 살아갈 뿐이고 그런 목표를 갖고 있지 않아요 그날그날 그저 그냥 꾸역꾸역 다섯장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이것이 나의 고민이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당장 문장을 쓰다 내 마음에 드는 문장을 쓸 수 있느냐 없느냐 그런 것이 저의 고민입니다.]

[앵커]

오늘 이렇게 모셔서 말씀 나눠주셔서 즐거웠습니다. '라면을 끓이며'의 산문집을 내셔서 모셨는데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은 라면은 너무 많이 드시지 마십시오.

[김훈/작가 : 이미 많이 먹었습니다]

[앵커]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고맙습니다.

[김훈/작가 :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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