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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청에 알려달라"…이통사 고객센터 상담원의 죽음

입력 2014-11-06 22:00 수정 2014-11-1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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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JTBC가 집중 보도하고 있는 갑을 관계, 오늘(6일)은 한 통신 대기업의 고객센터 상담사가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소식으로 시작합니다. 취재 결과 이른바 악성민원인의 횡포와 회사의 부당한 압박이 이제 막 서른 줄에 들어선 한 젊은이를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이 젊은이는 마지막으로 남긴 메모에 상담사들의 열악한 근무 실태와 회사의 부당한 업무 강요를 폭로하면서 노동청에 알려달라고 썼습니다.

이호진 기자의 보도부터 보시겠습니다.

[기자]

지난달 21일 오후, 한 통신 대기업 전북 지역 고객센터 상담사 30살 이모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자신의 승용차에서 번개탄을 피웠습니다.

이 씨의 가방에서는 봉투에 담긴 유서가 발견됐습니다.

봉투 표지에는 유서 내용을 노동청과 미래부, 방통위에 꼭 알려달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아버지 : 거리 지나가다 젊은 사람 보면 우리 아들 같고, 여태까지 서른 살 먹을 때까지 손가락질 한 번 안 받고 컸어요. 애가 그렇게 착했어요.]

숨진 이 씨는 고객센터 '민원팀' 소속이었습니다.

민원팀은 일반 부서에서 처리하지 못하는, 이른바 '악성 민원인'을 전담하는 부서입니다.

입사 동기 대부분이 그만뒀지만 여유가 없었던 이 씨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퇴직 동기 : 처음에 들어갔을 때 오리엔테이션 하잖아요, 그때만 하고 출근 안 하는 사람이 반 정도 돼요. 화장실도 갈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그만두는 사람이 대여섯 명 정도 되고.]

거의 매일 퇴근 시간을 넘겨 10시까지 일을 하며 회사를 다니던 이 씨에게 위기는 찾아왔습니다.

성실함과 능력을 인정받아 3년 6개월 만에 팀장을 맡았던 때였습니다.

당시 이 씨는 퇴직한 동기에게 괴로움을 호소했습니다.

고객 한 명과 무려 6시간 동안 통화를 했습니다.

정상적인 상담은 아니었습니다.

고객이 전화기를 스피커폰으로 돌려놓은 채 다른 볼일 보면 혼자 전화기를 붙잡고 있어야 했습니다.

[퇴직 동기 : 고객님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다 말 없으면 그냥 계속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어요. 고객님 다른 것 하겠죠. 그러다가 가끔 소리가 나면 고객님, 그러다 또 아무 말 없으면 가만히 있는 거예요.]

회의를 느끼던 이 씨는 결국 말꼬리를 잡던 한 고객과 문제가 생겼습니다.

감정이 상해 형식적으로 대답했던 겁니다.

고객은 이 씨를 해고시키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회사에 항의했습니다.

결국 4월 말, 이 씨는 책임을 지고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친구 : 쉬운 말로 진상 손님인데 직접 찾아가서 손님한테 사과 드리고 만나려고 해도 안 만나주고, 그런 스트레스가 있었나 봐요.]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이 씨는 6개월 만에 다시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민원팀 복귀 일주일여 만에 이 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친구 : 저희도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에요. 진실된 것은 OO만 알고 있겠죠.]

이 씨가 남긴 유서는 '노동청에 고발합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부서에 상관없이 단순 문의하는 고객에게도 IPTV와 홈 CCTV 등을 팔아야 하는 지침이 있었다고 돼 있습니다.

[퇴직 동기 : 계속 권유를 하다 보면 고객이 짜증 나니까 민원을 또 걸어요. 왜 내가 하기 싫은데 왜 너는 자꾸 하라고 시키냐, 욕을 퍼붓죠.]

회사가 정한 목표만큼 팔지 못하면 퇴근 못 한다고도 적혀 있습니다.

해지 담당 부서는 해지 막는 부서라고도 털어놨습니다.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면 질책받고, 해지 건수가 많으면 토요일에도 강제 출근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추가 근무를 해도 한 번도 근로계약서에는 있던 시간 외 수당은 없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개인 휴대폰으로 터무니없이 싼 가격을 안내하게 한 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회사는 모르는 척한다고도 돼 있습니다.

노동청에서 조사를 나오면 예상 질문과 답변을 교육시킨다며, 지금까지 이 같은 사실들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적어놓기도 했습니다.

유서는 이 집단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담당자 처벌, 진상규명을 부탁드린다며 마무리됩니다.

[아버지 : 편하게 대기업이니까 편하게 있는 줄 알았지. 이렇게 부대끼고 있는 줄 알았나. 죽고 나서 지금도 편하게 있는 줄 알지. 이런 줄 알았나.]

취재진이 만난 고객센터 측은 유서 내용 대부분을 부인했습니다.

실적이 낮다고 강제로 남긴 적이 없고, 직원들이 스스로 부족한 점을 메우려고 추가 근무를 했다는 겁니다.

일을 시킨 게 아닌 만큼 시간 외 수당을 줄 이유도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00고객센터 관계자 : 개인적으로 남아서 일하는 경우가 있어요. 가라고 했는데 안 가는 걸 어떻게 합니까.]

상품 판매 역시 판매 기법의 하나일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씨 아버지는 아들이 죽어야만 했던 이유를 알기 위해 유서대로 노동청에 진정을 할 계획입니다.

[아버지 : 자기가 목숨을 끊을 정도가 됐으면 뭔가 이유가, 깊은 내막이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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