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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 들고 손 벌벌 떠는 헤어디자이너...법과 관행의 간격 어떻게 메울까

입력 2022-01-14 13:54 수정 2022-01-14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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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JTBC〉〈사진=JTBC〉
새로 뽑은 헤어디자이너는 손님 머리를 자르면서 손을 벌벌 떨었습니다. 경력 있는 헤어디자이너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 미용실 원장은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한 순간입니다.

경남 창원에서 16년째 미용실을 운영하는 A 씨는 지난해 3월 헤어디자이너 채용 공고를 냈습니다. 5명이 이력서를 제출했습니다. 8개월 경력을 가진 20대 B 씨를 뽑았습니다. A 씨는 B 씨의 적극적인 모습에 많은 점수를 줬습니다.

하지만 B 씨는 출근 첫날부터 이상했습니다. 머리를 자르면서 손을 벌벌 떨고 비교적 간단한 남성 커트도 1시간씩 잡고 있었습니다. 머리가 삐뚤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등 고객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사진=JTBC〉〈사진=JTBC〉

A 씨는 이력서에 적혀있는 B 씨의 전 직장인 Y 미용실에 연락했습니다. B 씨가 8개월간 헤어디자이너로 일했다고 한 곳입니다.

Y 미용실 원장은 B 씨가 헤어디자이너가 아니라고 말해줬습니다. 머리 자를 때 옆에서 도와주는 스태프 겸 교육생이었다고 했습니다.

Y 미용실 홈페이지 등에는 스타일리스트로 B 씨를 올리고 직접 손님을 시술할 기회를 일부 제공했지만 기술 습득 기회를 주려고 한 조치일 뿐 B 씨는 헤어디자이너가 아니라는 겁니다. 실제 보조 스태프 수준의 월급을 줬다고도 했습니다.
〈사진=JTBC〉〈사진=JTBC〉

A 씨는 B 씨의 허위 이력을 이유로 퇴사를 요구했습니다. 입사 6일만입니다. 이후 B 씨 가족과 지인들이 A 씨 미용실을 찾아와 항의했습니다. 부당한 이유로 퇴사 당했다는 겁니다. 책상 위에 있던 B 씨 이력서를 몰래 가져가기도 했습니다. 6일 동안 일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다며 고용노동부에 A 씨를 고발했습니다.

A 씨는 고용노동부에 그동안 사정을 말했습니다. 고용노동부에선 그래도 근로계약서 쓴 대로 임금은 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B 씨는 사실상 보조 스태프인데 직급을 속인만큼 헤어디자이너 임금을 줄 수 없다고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A 씨는 애초 헤어디자이너로 책정된 임금을 지불했습니다.
B씨가 제출한 이력서B씨가 제출한 이력서

이후 A 씨는 업무방해 등 혐의로 B 씨를 고소했습니다. 경찰 결론은 혐의없음이었습니다.

헤어디자이너 자격은 미용실 원장의 주관적인 기준에 따라 부여되며 국가공인자격증과 다르다고 봤습니다.

결국 자격의 객관적인 기준이 없고 미용실 내부에서 정해놓은 직급에 불과해 B 씨가 허위 경력으로 판단할 근거 자체가 없다는 겁니다.

불송치(혐의없음) 수사결과 통지서 불송치(혐의없음) 수사결과 통지서
또 B 씨가 미용 자격증이 있으며 실제 고객 머리를 만진 적도 있는 점 등을 미뤄 보면 스스로 헤어디자이너라고 인식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손님들 만족도는 주관적인 것으로 항의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업무방해가 되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도 했습니다.

A 씨는 경찰 수사에 이의신청하면서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는데 결론은 같았습니다.

법적인 판단은 확실히 났습니다. 그런데 미용 업계는 수사 결과에 반발했습니다.

박경애 대한미용사회 경남지회장은 "미용 업계 현실과 통념을 무시했다"고 말했습니다. 헤어디자이너 직급은 본인이 스스로 부여하거나 인식하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미용사 자격증은 미용실을 열 때 필요하지 헤어디자이너 자격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불송치(혐의없음) 수사결과 통지서 불송치(혐의없음) 수사결과 통지서

정식 헤어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선 보통 7~8년, 걸린다고 말했습니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최근에는 3~4년만에 헤어디자이너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 정식 헤어디자이너 직급을 받으려면 스태프와 교육생, 초급디자이너 등 미용실에 따라 여러 단계를 거친다고 했습니다.

헤어디자이너라는 직급을 이력서에 썼을 때 기대하는 실력 수준이 있는데 이런 상황이면 더는 이력서를 믿을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대한미용사회 경남지회는 조만간 사건을 맡은 창원중부경찰서와 창원지방검찰청을 항의 방문하고 1인 시위도 준비하겠다고 했습니다.

B 씨 측은 "A 씨와 Y 미용실 원장의 거짓과 모함이며 B 씨는 지금도 헤어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과 검찰에서 무혐의가 난 만큼 허위 이력서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진=JTBC〉〈사진=JTBC〉
법이 정한 미용업 관련 규정과 1명의 헤어디자이너를 만드는 업계 현실은 차이가 큽니다.

그 빈 곳을 메우는 건 결국 관행과 통념인데 이번 사례는 그사이 어딘가에서 벌어진 이른바 '해프닝'입니다.

관습처럼 전해오던 직급에 대한 규정을 업계 자체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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