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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코로나 폐업 위기 속 1200만원 사기당하고 극단 선택…'유서'로 잡은 범인은 '대학강사'

입력 2021-03-23 20:27 수정 2021-03-2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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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어려운 사람들을 노리는 범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보이스피싱을 당한 뒤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40대 가장도 있습니다. 가게가 문 닫을 위기에 놓이자, 아는 사람들에게 어렵게 천이백만 원을 빌렸는데, 이 돈을 모두 뜯겼습니다. 이 신종 사기범을 잡기까지 피해자가 생전에 남긴 단서가 결정적이었습니다. 범인은 10년 간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친 강사였습니다.

먼저 이상엽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해 10월 30일.

자영업을 하던 42살 임정덕 씨에게 갑자기 수십 통의 전화가 쏟아졌습니다.

임씨가 캐피탈에서 대출을 받아 쓰고 있었는데, 은행에서 추가 대출을 받으면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 : 주소 알려주시면 고객님 금융 서류 다 준비해서 방문 처리를 도와드려요. 고객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든든하시죠.]

이들은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임씨는 의심했습니다.

은행과 금융감독원을 검색해 확인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사람들은 보이스피싱이 아닌 진짜 전화라고 안심시켰습니다.

하지만 임씨의 휴대전화는 이미 해킹된 상태였고, 전화는 은행과 금감원이 아닌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자동으로 연결되게 조작돼 있었습니다.

이를 몰랐던 임씨에게 이들은 캐피탈 대출금을 현금으로 갚아야 금감원 고발을 피할 수 있다며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 : 저희 직원 위치 좀 확인할게요. 지금 피자집 앞에 계시죠? 차에서 내리셔야 해요. 차 세워놓고 내려오시면 저희 직원에게 주시면 됩니다.]

현장에 나온 사람은 은행 직원 A씨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임씨는 그 자리에서 1200만 원을 건넸습니다.

코로나19로 폐업 위기에 놓이자, 지인들에게 빌린 전 재산이었습니다.

그 뒤, 이들과의 연락은 모두 끊어졌습니다.

그제야 속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날 밤 임씨는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가족과 마지막으로 갔던 여행지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며칠 뒤 경찰(경기이천경찰서) 수사에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임씨가 생전 여러 단서를 남긴 겁니다.

블랙박스 영상과 음성, A씨가 탄 택시 번호와 카드 거래내역 등입니다.

이를 토대로 경찰은 범행 한달 만에 A씨를 붙잡았는데, A씨는 10년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강사로 드러났습니다.

■ '15건 가담' 기소됐는데…재판장 "피의자도 피해자"

[앵커]

이렇게 점점 새로운 수법을 들고 나오는 사기범들은 늘고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노리면서 한 사람의 삶과 가정까지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재판 과정에선 유족에게 상처를 주는 발언도 나왔습니다. 유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판사가 "범인도 피해자"라고 말한 겁니다.

박지영 기자입니다.

[기자]

고 임정덕 씨가 당한 보이스피싱은 '스마트폰 해킹'으로 피해자의 손발을 모두 묶는 신종 범죄입니다.

은행으로, 경찰서로, 금감원으로 전화를 걸어도 보이스피싱 일당으로 연결되게 설정해 놓는 수법입니다.

가족까지 잃은 임정덕 씨의 부모와 여동생은 법정에서 또 한번 울분을 토했다고 합니다.

1200만 원을 받아간 A씨의 첫 재판은 지난 1월 13일에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렸습니다.

방청석에 나온 유족은 법정이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고 했습니다.

[고 임정덕 씨 여동생 : 벌을 받게 하기 위한 과정의 재판 중이니까. 그런데 무슨 공장에서 기계 찍듯이 '다음, 다음' 이렇게…]

임씨 가족은 재판장이 자신들의 이야기도 물어봐주길 기다렸습니다.

고인이 된 오빠를 대신해 "엄벌에 처해달라"는 말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고 임정덕 씨 여동생 : 말도 안 나오지만 '저는 피해자 누구의 동생이며 유족이 됐습니다'라고…]

그런데 재판장이 건넨 말은 뜻밖이었다고 했습니다.

[고 임정덕 씨 여동생 : 선처 없이 (처벌을) 부탁드린다고 했는데, 판사님께서 피의자도 피해자라고 하시더라고요. 손도 떨리고 다리도 떨리고. 말은 더 안 나오고…]

A씨 측은 "A씨가 은행으로부터 채권 서류를 받은 뒤 채무자에게 돈을 받아 입금하는 일로 알았다"며 보이스피싱 범죄인 줄 몰랐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습니다.

두 번째 재판을 앞둔 A씨는 반성문과 탄원서도 제출했습니다.

[고 임정덕 씨 여동생 : 떠난 저희 오빠는요. 그 사람들이 돌려줄 거 아니잖아요. 살려줄 거 아니잖아요.]

A씨는 임씨 사건을 포함해 모두 15건의 보이스피싱 관련 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기소된 상태입니다.

(영상그래픽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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