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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뉴스+]우리 곁의 성소수자…웨딩드레스 입은 두 신부의 혼인 서약 "함께라면 해결 못할 일 없을 거야"

입력 2021-04-06 05:02 수정 2021-04-13 13:02

신부가 둘이면 '스ㆍ드ㆍ메'도 2배…성소수자와 변화 만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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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가 둘이면 '스ㆍ드ㆍ메'도 2배…성소수자와 변화 만드는 사람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혼인ㆍ이혼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21만4000건으로, 1970년 이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코로나 19 탓이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혼인 건수는 2012년 이후 지난해까지 9년 연속으로 줄어드는 추세였습니다. [구스뉴스+]에서는 점점 결혼하지 않는 세태 속에서, '또 다른 결혼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결혼입니다.

이번 [구스뉴스]에서는 동성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은 친구, 트렌스젠더가 되겠다는 고3 아이의 고백을 받아들인 아버지 등 성 소수자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뉴스룸에서 못다 한 결혼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언니에게, 결혼이란 무엇일까?"
 
김규진 님 결혼식 사진김규진 님 결혼식 사진

"우리는 지금 웨딩드레스를 입고 하객들 앞에 서 있지만, 내일 같이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면 거절당할 거야."


2019년 두 사람이 낭독한 혼인서약엔 '안 되는 일'이 가득합니다. 가족 마일리지 합산도, 신혼부부 대출도, 아파도 보호자로 병원에 갈 수 없다. 말합니다. 부부라면 당연할 것 같은 일들이지만 안 되는 이유는, 성별이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두 명의 신부는 '힘든 일 많지만, 해결 못 할 일 없을 거야'라고 결혼을 다짐합니다. 서로가 골라준 웨딩드레스를 입고, 많은 하객의 축복 속에 '재미있게 살아보자'고 말하는 두 사람, 둘의 결혼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뉴욕과 서울에서 결혼식을 치른 유부녀 레즈비언, 김규진 님은 현재 잠시 파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책과 미디어를 통해 동성 결혼을 공개했고,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보여줘 화제가 됐습니다.

 
김규진 님과 화상 인터뷰김규진 님과 화상 인터뷰

규진 씨의 결혼 생활은 어떨까. 1초 만에 "행복하다"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성적 지향과 관계없이 '결혼 생활의 행복이 무엇인지' 물으면 나올 수 있는 정답 같은 말이었습니다.

"어떤 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우선 제가 선택한 사람이 가족이 되고, 선택한 사람이 삶의 동반자가 된다는 게 아주 큰 삶의 안정감을 줍니다. 지금은 잠시 떨어져 있지만, 결혼 후 퇴근해서 제가 언니를 기다린다든지, 집에 가 보니 언니가 저를 기다리고 있다든가 하는 매일매일의 순간들이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 신부 두 명이면 '스·드·메(스튜디오 사진, 드레스, 메이크업)'도 2배…"자본주의의 힘은 강력하다고"

한국에서 규진 씨의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았던 이성애자 친구 서지수 님을 만났습니다. 대학교에서 수업을 늘 같이 듣던 두 사람이 3학년 때 서로 다른 수업을 듣자 친구들은 "혹시 규진이가 네게 고백을 해서 서로 멀어진 거야?" 이런 오해를 했다 합니다. 규진 씨는 "왜 내가 차였다 생각하냐""내 이상형은 따로 있다"고 펄쩍 뛰었다고 하는데요.

규진 씨가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를 하자 인터넷 댓글엔 혐오 발언이 늘었습니다. 변호사인 지수 씨는 직접 댓글들을 살펴보며 법적인 자문을 도왔습니다. '동성애자라는 사실만으로 이 친구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이렇게 심한 말을 할 수도 있구나' 충격도 받았습니다. 소중한 친구이기 때문에, 규진 씨의 커밍아웃은 지수 씨에겐 아무 일도 아니었습니다.

"결혼 드레스를 고를 때 신부가 두 명이다 보니 담당자 두 분이 배정됐는데, 본인이 담당하는 신부가 더 예쁠 거라고, 드레스를 여러 벌 갈아입히면서 경쟁적으로 호응을 유도하시더라고요. 역시 자본주의의 힘은 강력하다고 느꼈습니다(웃음). "

"너는 계속 내가 발전하게 동력을 주기도 하고, 동기도 부여해 주는 친구라고 나는 생각해. 많이 응원하고 있고, 사랑해!"

 
서지수 님서지수 님
친구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받은 규진 씨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대학교 때는 그렇게 많은 친구가 제 성 정체성을 알지 못했는데, 한명이라도 그걸 알고 있고, 문제 삼지 않고, 얘기를 들어주고,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게 큰 힘이 됐습니다. 1∼2학년 때 제가 답답하지 않게 잘 살 수 있게 도와준 소중한 친구입니다."

◇"혈액형, MBTI…소소한 얘기 다 하는데 성 정체성은 안 될까요?"
규진 씨의 삶을 바꿔 놓은 건 두 번의 커밍아웃이었습니다. 한 번은 부모님, 한 번은 회사.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밝힌다는 건 더는 거짓말로 자신을 꾸밀 필요가 없다는 얘기라고 했습니다. 거짓말을 항상 지어내고, 기억해야 하는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직장ㆍ학교ㆍ가정에서 살아가는 성 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기회는 무척 적습니다. '좀 조용히 살면 안 되느냐'는 사람들에게 규진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혈액형 얘기, MBTI 얘기, 소소한 얘기 다 하는데 성 정체성에 대한 얘기 정도에 시끄럽게 산다고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기홍ㆍ변희수ㆍ이은용…, 연이은 성 소수자들의 죽음이라는 충격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픈 말을 물었습니다.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생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건강하셨으면 좋겠고, 덜 힘드셨으면 좋겠고, 큰 벽을 한 번에 허무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죠? 조금씩 이겨나가다 보면 축하할 일도 많지 않을까 싶고. 저는 다들 잘 사셨으면 좋겠고, 같이 생존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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