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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땅땅] 매뉴얼처럼 '문 부수고 들어가 점유하라'는 공기업

입력 2021-04-27 14:52 수정 2021-04-27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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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땅땅] 매뉴얼처럼 '문 부수고 들어가 점유하라'는 공기업

"문 부수고 집에 들어가 점유하라"

'용역 깡패'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이 전세임대주택 신청자에게 한 말입니다.

처음엔 믿기 어려웠습니다.

'공기업이 그런 위법 행위를 주문했을까'라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치 매뉴얼처럼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A씨는 LH 전세임대주택 신혼부부 모집에 신청했습니다.

전세임대주택은 LH가 신혼부부나 저소득층에게 보증금의 80%를 저리로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자격 조건을 갖춘 신청자가 적당한 집을 찾으면 LH가 권리분석을 해주고, 문제가 없다면 LH 법무사가 참석한 가운데 계약이 이뤄집니다.

집주인과 계약하는 세입자는 LH이고, LH는 다시 신청자와 계약하는 구조입니다.

신청자 A씨는 지난 3월 10일 이렇게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계약금 2200만원도 그 자리에서 집주인에게 이체했습니다.

A씨는 한 달 뒤인 4월 8일 이사하기로 했습니다.

LH가 보증금의 80%를 이체하는 시점도 이 날입니다.

그런데 계약 후 1주일 뒤쯤 공인중개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입주할 집에 사는 현 세입자에게 집주인이 계약금의 일부를 주기로 했는데 연락이 끊겼다는 겁니다.

현 세입자가 집을 비워주지 않으면 A씨는 입주할 수 없기에 불안했습니다.

A씨는 이 사실을 LH 담당자에게 알렸고, 그러던 중 LH와 집주인이 연락이 닿아 예정대로 계약사항을 이행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이삿날 집주인이 직접 현장에 나와 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내주는 등 잔금처리를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A씨 측은 그래도 집주인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이에 집주인이 이사 당일 현장에 나타나면 그 후 잔금 처리를 진행해 달라고 LH에 요청했습니다.

LH 직원은 잔금처리 담당 부서에 알아보겠다고 했습니다.

불길한 예감은 이삿날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약속 시간 10분 전쯤,
대전광역시에 사는 집주인에게 공인중개사가 전화를 걸었는데 '이제 일어났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공인중개사는 부랴부랴 LH에 전화를 걸어 잔금지급을 미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두 번째 부탁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LH는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과정에 자동으로 잔금이 지급됐다며 뒤늦게 해명했습니다.

결국 이렇게 집주인은 현 세입자의 보증금은 물론, LH로부터 받은 보증금과 A씨의 계약금 등 총 4억여 원을 챙기고 잠적한 상태입니다.

뒤늦게 전세 사기라는 걸 파악한 LH 직원은 A씨에게 "문을 부수고라도 집에 들어가 점유하라"는 황당한 주문까지 했습니다.

이후 이 LH 직원은 "(보증금 우선권 확보를 위해) 위험 부담이 있는데도 강행하라는 취지로 말했다"며 사과했습니다.

'황당 주문'에 뒤늦은 사과 '황당 주문'에 뒤늦은 사과

이런 사례가 처음이라면 한 직원의 실수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도 이후 또 다른 피해자이자 세입자라고 밝힌 B씨가 기자에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집주인이 잠적해 불가피하게 계속 세입자로 거주 중인데, 집을 잠시 비운 사이 또 다른 LH 전세임대주택 신청자 C씨가 문을 부수고 들어가 점유했다는 겁니다.

B씨는 이런 일이 벌어지기 직전, 전세사기 대응 방안을 놓고 LH 직원과 통화했습니다.

그때 "LH 직원은 내부적으로 대응 방안을 검토했고 그 내용은 말하기 어렵다"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집에 가보니 C씨는 이미 점유하고 있었고, 현재 점유권 관련 소송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B씨는 그러면서 "JTBC 보도를 접하고 놀랐다"라며 "LH 직원들이 마치 매뉴얼처럼 '문 부수고 들어가 점유하라'는 안내를 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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