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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노동자들, 작업복 들고 세탁소 전전…왜?

입력 2020-05-12 21:11 수정 2020-05-12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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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12일) 밀착카메라는 기름때나 쇳가루로 얼룩진 작업복을 퇴근할 때도 그대로 입고 가야 하는 노동자들 얘기입니다. 공장에서 일하다 오염된 작업복을 세탁하는 건 누구 몫일까요. 법에는 회사에서 세탁시설을 마련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서효정 기자의 밀착카메라입니다.

[기자]

[강호진/여수국가산업단지 노동자 : 얘들아, 아빠 왔다. (아빠, 잘 다녀오셨어요?) 아빠 옷 더러우니까 저 뒤로 가 있어. (네~)]

일터에서 퇴근한 강호진 씨, 아이들과의 인사도 뒤로 한 채 향하는 곳은 세탁실입니다.

[강호진/여수국가산업단지 노동자 : 여보, 오늘 기름이 많이 묻었네. (에휴, 세탁기 또 누가 돌려?)]

강씨는 정유공장에서 원유를 끓이는 기계를 분해하고 청소하는 일을 합니다.

기계 안에 들어가 일하다 보면, 깨끗한 옷으로 퇴근하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문제는 빨래를 하는 아내가 이따금씩 가려움증을 호소한다는 것입니다.

[김향미/강씨 부인 : 가려워서 빨갛게 두드러기처럼 올라오는 그런 게 한 번씩 있어요. (연관성 있는 것 같으세요?) 네, 있는 것 같아요. 세탁기를 같이 쓰니까, 작업복이랑.]

석유화학 공장이 모여 있는 전남 여수의 국가 산업단지, 퇴근길엔 강씨처럼 분진과 먼지가 묻은 작업복을 그대로 입고 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오염된 작업복을 입고 퇴근해도 괜찮은 것일까.

공장 안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공장을 해체하는 작업 현장에선 옷에 스치기만 해도 유리섬유가 묻습니다.

[김태곤/민주노총 전국플랜트노조 여수지부 노동안전국장 : 이게 다 유리섬유거든요? 이렇게 하면 날리죠, 반짝반짝.]

유리를 가늘게 잘라 압축한 것인데, 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피부 가려움과 호흡기 자극을 유발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쇠를 가는 작업을 할 땐 쇳가루가 옷 구석구석에 묻습니다.

오전 작업을 마친 조끼 모습이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윤성은/여수국가산업단지 노동자 : (이거 손으로 만져도 돼요?) 아, 예. 만져 보세요. 근데 더러운데?]

가스로 철을 용접하는 현장에선 중금속 연기 '흄'이 나옵니다.

철을 용접해서 나오는 흄은 산업안전보건기준의 관리를 받는 '유해물질'로도 지정돼 있습니다.

이들은 이런 부산물이 묻은 빨래를 스스로 빨아야 합니다.

[윤성은/여수국가산업단지 노동자 : 빨아야죠. (세탁소엔) 너무 더러워서 맡기기가 미안하더라고요.]

실제로 취재진이 작업복을 가지고 세탁소를 찾아가자, 세탁소 주인도 손을 내두릅니다.

[박희석/세탁소 운영 12년차 : (지울 수 있어요?) 이거 뭐예요? 기름 같은데. 포기하는 게 안 낫겠나. 안 빠지겠는데?]

7000개 넘는 중소기업이 있는 경남 김해에는 노동자들의 수고를 덜고 이들을 보고하기 위해 특별한 세탁소가 들어섰습니다.

공장 작업복을 수거해 세탁해주는 작업복 전문 세탁소입니다.

[민경식/세탁소 팀장 : (오늘 돌아야 하는 곳이 많은 날인가요?) 아닙니다. 비슷비슷합니다.]

이들의 하루는 작업복 수거로 시작됩니다.

[민경식/세탁소 팀장 : (이런 게 뭐예요?) 기름때가 이렇게 있다 아닙니까.]

윤활유나 금형을 찍어내는 약품이 옷에 자주 튀는데, 공장 입장에서도 큰 고민을 덜었습니다.

[김학만/세탁소 고객 : 우리가 세탁기 사서 해봤는데 몇 개월 못 가 (고장 나.) 기름도 안 지워지고. 쇳가루도 주머니에 들어가 있고 하다 보니 세탁이 안 되더라고요.]

수거해온 작업복들은 이 대형 세탁기 안에 작업복끼리 넣어서 세탁을 하게 되는데요.

이 세탁기 안에는 최대 80벌까지 옷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작업복 전용 세제도 따로 있습니다.

[박경자/세탁소 직원 : 마지막에 넣은 게 기름때 제거하는 약품. 맨 처음에 넣은 건 선명하게 해주는 거고. 두 번째는 세제. 집에선 이런 세제 안 쓰잖아요.]

세탁과 건조를 마치는데 2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기름때가 끼었던 청바지가 이렇게 깨끗해졌습니다.

회사에서 입는 작업복들은 기름이나 액체가 튀지 않도록 이렇게 코팅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옷들이 하루에도 200~300벌씩 들어옵니다.

[김재한/김해시청 일자리정책과장 : 현재는 3월달 기준으로 한 3000벌 이상 작업복이 나오고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유해물질을 다루는 노동자들의 세탁시설은 회사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하지만 큰 현장에만 적용되고, 안 지켰을 때에 처벌 조항도 없습니다.

국가 산단 노동자들은 세탁시설을 만들 수 있게 지자체에서라도 도와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건강을 위협하는 물질이 묻은 이런 옷을 그대로 입고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가야 한다면 어떨까요.

몇 평 안 되는 작은 세탁소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시작점일 것입니다.

(VJ : 서진형 / 인턴기자 : 정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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