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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램지어 논문 받았나' 사퇴한 학술지 편집진의 '양심선언'

입력 2021-03-04 12:22 수정 2021-03-04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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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되고 있는 존 마크 램지어 교수 논문의 최종 출간이 미뤄졌습니다. 〈국제법경제리뷰〉 3월호에 실릴 예정이었지만, 램지어 교수의 해명이 올 때까지 학술지(저널)은 출판을 늦추기로 했습니다. JTBC는 논문 출간을 둘러싼 뒷이야기를 좀 더 전해드리겠습니다. "한국인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주장한 이 논문은 사실 역사 분야의 논문처럼 읽히는데요. 애초에 저널은 왜 논문을 받아줬는지, 내부에선 이견이 없었는지, 문제가 되고도 왜 철회가 어려운지, 궁금증은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편집진 중 한 명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갈음합니다.

 
알렉스 리 노스웨스턴대 법대 교수가 부편집진을 지내다 사퇴한 〈국제법경제리뷰〉 학술지. 〈사진=국제법경제리뷰 홈페이지〉알렉스 리 노스웨스턴대 법대 교수가 부편집진을 지내다 사퇴한 〈국제법경제리뷰〉 학술지. 〈사진=국제법경제리뷰 홈페이지〉

기자=역사적 기술을 한 이 논문이 애초에 〈국제법경제리뷰〉에 싣기 적합했는지 의문이 듭니다. 왜 처음부터 편집진이 논문을 거부하지 않았나요?
알렉스 리=30명 정도 되는 부편집인이 각자 매년 5~6개씩 원고를 맡아 검토합니다. 저는 램지어 교수 논문을 직접 검토하진 못했습니다. 심지어 논문의 존재를 알았을 땐 논문 자체를 거부하거나 출간을 막을 수도 없는 시점이었습니다. 제가 지난달 1일 처음 알게 됐으니까요. 논문을 저널에 실을지 말지는 보통 편집장 혼자 결정하진 않습니다. 이번처럼 논쟁적 이슈를 담은 논문일 경우, 당시 5명이던 편집인 선에서 다 같이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자=저널의 결정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알렉스 리=〈국제법경제리뷰〉는 그 논문에 담긴 역사적인 주장을 평가할 수 없다고 봅니다. 모든 편집진이 법학자든, 경제학자든 둘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저널의 지향과 맞지 않는 논문입니다. 그 논문은 법학이나 경제학과 거의 관련이 없습니다. 애초에 이걸 출간하겠다고 받아들인 저널의 결정은 적어도 심각한 오류이고, 무책임하며,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그래서 편집진에서 사퇴하셨나요?
알렉스 리=네, 제가 사퇴하기 전 마지막으로 한 일은 램지어 교수 논문에 대해 여러 학자의 의견을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널의 허락 하에 미국, 한국, 일본에서 활동하는 역사 분야의 권위자들에게 물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 논문에 얼마나 큰 결함이 있는지 더 잘 알게 됐습니다. 저는 편집진에서 곧 물러났고, 출판물과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제 이름도 즉시 삭제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기자=다른 편집진은 반발하지 않았습니까?
알렉스 리=얼마 전 경제학자들이 램지어 교수 논문을 철회하라며 돌리기 시작한 연판장에 저와 같이 있던 부편집인들도 서명했습니다. 제가 알기론 적어도 3명이 서명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서명은 하지 않았지만, 비공식적으로 우려를 전해온 다른 부편집인도 2명은 더 있습니다.

기자=문제의 논문은 저널이 명시한 논문 철회 요건, 즉 '데이터의 부정한 사용'에 부합한다고 다른 저널의 편집장도 지적합니다. 이 정도면 당장에라도 철회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알렉스 리=사실 단순합니다. 논문이 이런저런 이유로 철회됐다고 알리는 표지를 출판물에 넣고 철회하면 끝입니다. 온라인에서도 뺄 수 있고요. 그러나 저널의 출판 윤리 강령에 따라 조사부터 끝내야 합니다. 최소한 저자인 램지어 교수에게 답변할 기회를 줘야 하고요. 엄밀히 말해 3월호에 출간이 되더라도 저널의 최종 결정은 또 다를 수 있습니다. 조사가 끝난 뒤 문제 있다고 판단되면 출간 이후라도 철회는 가능합니다.

알렉스 리 노스웨스턴대 법대 교수의 양심선언입니다. 램지어 교수 논문에 반발하며 지난 6년을 지켜온 〈국제법경제리뷰〉 부편집인 자리도 내려놨습니다. 지금은 다른 학자들과 함께 논문 철회 운동을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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