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박상욱의 기후 1.5] "2030년 안에 해결 못 하면 끝" 중공업 온실가스 감축에 남은 시간

입력 2021-07-05 09:32 수정 2021-07-05 09:32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85)
국제에너지기구 '2050 넷 제로' 보고서 분석 4/6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85)
국제에너지기구 '2050 넷 제로' 보고서 분석 4/6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놓고 많은 전망과 평가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여러 안들이 제시됐고, 그중 어떤 것이 최종적인 '로드맵'으로 결정될지는 아직 미지수인데도 말이죠. 그만큼 중요하고,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겁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2050년 탄소중립'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에 대한 설명과 소통입니다. 화려한 캐치프레이즈와 선언식, 박수로 시작했지만 이를 위해 얼마나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되어야 하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흐름을 선도한다면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찾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충격과 피해가 찾아온다는 것을요.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정교한 계획과 실천력입니다.

IEA(국제에너지기구)가 발표한 '2050 넷 제로: 글로벌 에너지 부문을 위한 로드맵' 뜯어보기, 네 번째 순서입니다. 국제사회의 선언과 이행에 발맞춰 마찬가지의 선언을 한 우리나라로써는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로드맵이죠. 계획을 세우고, 정책을 시행할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를 비롯한 각 부처뿐 아니라, 이러한 변화에 영향을 받는 시민 개개인과 기업 등에게도 중요한 내용입니다. '탄소중립으로 내 삶이, 혹은 앞으로의 사업 방향이 어떻게 달라져야만 하는가' 준비하지 않으면 변화의 충격을 오롯이 맨몸으로 견뎌야 할 테니 말입니다.

앞서 연재에서 줄곧 언급했다시피 IEA는 여타 글로벌 환경단체와 같은 '친환경적'인 곳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시나리오가 결코 '환경만 생각해 시민사회나 기업, 정부에 지나치게 가혹한 내용'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위의 항목들은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탄소중립이 가능한', 소위 '최소 요구 사항'입니다.

① OECD 국가의 경우 2035년까지 발전 부문에서 화석연료를 퇴출, 탄소배출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 ② 석탄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화석연료를 캐내는 행위는 지금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③ 재생에너지는 대대적으로 빠르게 확대되어야 한다. 보고서 속 핵심 내용을 첫 '뜯어보기'에서 살펴봤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2030년 안에 해결 못 하면 끝" 중공업 온실가스 감축에 남은 시간


두 번째 순서에선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최소 충족 요건들에 대해 살펴봤죠. 대략 ① 2021년 석탄발전소, 탄광, 유전, 가스전의 신규 개발이나 확장 중단, ② 2025년 화석연료 이용하는 모든 보일러의 판매 금지, ③ 2030년 모든 신축 건축물이 '탄소 제로 건축물', 선진국 석탄발전 폐쇄, ④ 2035년 내연기관 신차 판매 중단, 선진국 발전 부문 탄소 중립, ⑤ 2040년 신축·구축 모든 건축물의 50%가 '탄소 제로 건축물', 전 세계 발전 부문 탄소중립, 전 세계 석탄발전 단계적 폐쇄, ⑥ 2045년 전 세계 열 수요 50%를 히트펌프로 공급, ⑦ 2050년 모든 건축물의 85% 이상이 '탄소 제로 건축물', 전 세계 발전량 70%가 태양광 및 풍력 발전 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순서부턴 본격적인 분야별 로드맵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살펴본 분야는 바로 발전 부문이었죠. 발전 부문의 탈탄소, 즉 탈화석연료 로드맵 말입니다. 현재 우리나라가 석탄화력발전소의 대체재로 여기는 LNG 발전 역시 2025년부터 차츰 줄어들면서 2040년 즈음엔 결국 퇴출된다, 화석연료 중심의 중앙집중식 발전이 재생에너지 중심의 '탈중앙화' 발전으로 변화하면서 전력망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그 금액은 2030년 8200억 달러, 2040년 1조 달러에 이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번 주 살펴볼 것은 발전 다음으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내뿜는 부문, 바로 산업입니다.

#산업의_탈화석연료
에너지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 가운데 발전에 이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바로 산업입니다. 특히 화학(석유화학), 철강, 시멘트와 같은 중공업 분야의 경우 전체 산업부문 온실가스 배출의 70%를 차지하고 있죠. 비중도 비중이지만 이들 분야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IEA는 “위의 3가지 산업의 경우 우리 현대의 삶에 있어 필수적인 산업으로써 비용 경쟁력이 있는 대체 품목을 찾기 어려운 것들”이라며 “결국 관건은 탄소 배출 없이 석유화학 제품과 철강 제품, 시멘트 제품을 만들어나갈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분석했습니다.

 
2050년 넷 제로 달성 과정에서의 산업부문 배출량(막대)과 생산량(점선)의 변화 (자료: IEA)2050년 넷 제로 달성 과정에서의 산업부문 배출량(막대)과 생산량(점선)의 변화 (자료: IEA)


감축의 어려움이 크다는 것은 그래프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껏 봐왔던 각종 그래프와 달리 산업부문의 경우 기울기가 완만합니다.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 그래프는 당장 2030년부터 가파르게 우상향했고, 그로 인해 탄소배출량은 급감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죠.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이라는 겁니다. IEA는 “205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분 가운데 60%는 오늘날 기술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미래의 기술'을 통해 가능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지금의 기술 수준으론 큰 폭으로 줄이기 어렵다, 그래서 미래에 기술이 발전하고 나서야 비로소 큰 폭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미래의 기술' 가운데 핵심은 수소와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탄소 포집, 활용 및 저장)입니다. 엄청난 고열을 필요로 하는 이들 산업 분야의 경우 전기만으론 필요한 열을 얻을 수 없습니다. 철강 제품을 만드는 데에 전기 코일로 내는 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이죠. 수소를 연료로 이용해 지금의 석탄을 대체하고, 화학 공업 등에서 공정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를 최대한 붙잡아둠으로써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겁니다.

 
2050년 넷 제로 달성 과정에서 기존의 중공업 인프라가 뿜어내는 탄소 배출량 (자료: IEA)2050년 넷 제로 달성 과정에서 기존의 중공업 인프라가 뿜어내는 탄소 배출량 (자료: IEA)


그런데, 산업부문의 감축 속도가 느린 이유는 비단 '감축의 기술적 어려움'만이 아니었습니다. IEA는 “중공업의 경우 자본 집약적인 데다 한번 설치하면 오랜 기간 이용하는 생산 설비들을 이용하는 만큼 제아무리 혁신적인 탄소 저감 기술이라 할지라도 현장에 빠르게 적용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중공업의 생태에 있어 2050년이라는 시점까지 남은 시간은 그저 한 번의 투자주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탄소배출원으로 꼽히는 철강업의 고로나 시멘트업의 가마의 경우 한번 설치되면 약 40년간 가동한다는 것이 IEA의 설명입니다. 물론, 40년을 모두 채우기 전, 설치 25년 후에 한 차례 개보수를 거치곤 하죠. 때문에 현재 설치된 설비가 개보수하게 되는 시기, 지금으로부터 25년 후가 중공업의 탄소중립 성패를 가를 중요한 타이밍이 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지금은 그저 프로토타입에 그치는 기술들이 이때까지 상용화를 넘어 검증된 상태가 되지 못한다면 관련 업계는 결국 기존의 방식대로 생산 설비들을 가동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IEA는 “기회의 문은 지금부터 2030년까지만 열려있다”며 “이 기회의 문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2050년 넷 제로 달성을 위한 산업부문 전반(왼쪽)과 중공업(오른쪽)의 에너지원 비중 변화 (자료: IEA)2050년 넷 제로 달성을 위한 산업부문 전반(왼쪽)과 중공업(오른쪽)의 에너지원 비중 변화 (자료: IEA)


그렇다면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산업 분야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전체 산업에서 화석연료(석탄, 석유, 천연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현재 70% 가까운 수준에서 2050년 30%까지 낮아져야 합니다. 전기의 비중은 현재의 20%에서 45%까지 배 이상이 되어야 하고요. 상대적으로 고열을 필요로 하는 중공업의 경우 화석연료의 비중은 2050년에도 50%에 가까울 전망입니다. 물론, 수소 기술이 발달한다면 화석연료의 비중이 더 많이 줄어들겠지만요.

 
2050년 넷 제로 달성을 위한 (왼쪽부터) 화학, 철강, 시멘트 산업 생산 기술의 변화 (자료: IEA)2050년 넷 제로 달성을 위한 (왼쪽부터) 화학, 철강, 시멘트 산업 생산 기술의 변화 (자료: IEA)


이를 위해 '중공업 3대장' 화학, 철강, 시멘트 분야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IEA는 2030년까지 제품의 80% 가량이 기존의 생산방식대로 만들어지겠지만 2050년엔 대부분의 생산량이 CCUS 기술이나 수소 기반, 혹은 기타 신기술에 의해 만들어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 탄소중립을 이룩하려면 반드시 이렇게 돼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중공업뿐 아니라 경공업 분야에서의 변화도 필수적입니다. 다양한 산업 분야에 걸쳐 전기뿐 아니라 열도 필요하죠. IEA는 열을 필요로 하는 산업 분야가 얼마나 되는지, 또 이러한 열을 어떻게 공급할지도 따져봤습니다.

 
2050년 넷 제로 달성을 위한 경공업 분야 열 공급원 변화 (자료: IEA)2050년 넷 제로 달성을 위한 경공업 분야 열 공급원 변화 (자료: IEA)


상대적으로 낮거나 중간 수준의 열(0~400℃)의 경우 현재 공급의 경우 현재 절반 이상의 열을 화석연료로 공급받고 있습니다. 이 비중은 점차 줄어들어 2050년엔 대부분의 열을 전기 히터와 히트 펌프로 공급받게 됩니다. 고온(400℃ 초과) 영역의 경우, 마찬가지로 화석연료의 비중이 매우 작아질 전망입니다. 이는 대부분 전기 히터와 수소 히터로 대체되고요.

글로벌 스케일의 오늘과 미래에서 다시 오늘의 한국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국제사회의 2020년보다 앞서 있나요. 내일의 우리는 국제사회의 내일을 쫓아갈 준비가 되어 있나요. 오늘도, 내일도 보조를 맞추지 못한다면 '2050년 탄소중립'은 말뿐인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에너지의_변화는_곧_일자리의_변화
에너지의 변화는 곧 일자리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IEA는 국제에너지기구라는 본연의 전문성에 입각해 이번 보고서에서 에너지 공급과 관련한 일자리 변화를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IEA는 “에너지 전환은 시민 개개인이나 지역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영향을 반드시 감안해야 하는 일”이라며 “영향을 받는 시민 개개인을 능동적인 참여자로 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변화의 주체가 국가나 정부, 기업이고 시민과 노동자는 그저 주어진 상황에 휩쓸려가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국제사회도, 정부도, 기업도, 시민도, 노동자도 모두가 전환의, 변화의 주체인 겁니다.

 
2050년 넷 제로 달성 과정에서 에너지 공급 분야의 글로벌 일자리 변화 (자료: IEA)2050년 넷 제로 달성 과정에서 에너지 공급 분야의 글로벌 일자리 변화 (자료: IEA)


이미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그린뉴딜 정책을 통해 알려졌다시피 '넷 제로'로의 여정에서 새로운 고용 창출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청정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늘고, 새로운 경제활동이 늘어나면서 2030년, 2019년 대비 1400만개의 일자리가 더 만들어진다는 것이죠. 또한 전기차나 연료전지차, 빌딩 그린 리모델링 등으로 1600만개의 일자리가 추가로 창출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밝은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화석연료 산업의 쇠퇴로 인해 2030년 5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이 IEA의 예측 결과입니다. IEA는 사라지게 되는 이들 일자리가 “새롭게 창출되는 일자리들과 근무지, 노동기술, 업무분야 등 다양한 면에 있어 다른 일자리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대부분 화석연료와 관련된 '좋은 보수를 받던 일자리'일텐데, 이는 에너지의 구조적 변화가 공동체에 꽤나 오래 충격을 안길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요.

IEA는 “사라지는 일자리들과 관련해 세심한 정책적 관심이 기울여져야 한다”며 “노동자들을 재교육하고, 가능한 전환의 타격이 가장 큰 지역에 새로운 청정에너지 시설을 구축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등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기후위기가 비단 날씨의 위기가 아닌 경제위기, 보건위기, 안보위기, 통상위기를 의미하는 만큼 IEA의 이러한 우려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위기를 맞닥뜨릴까'라는 측면에서 '안전지대'는 없으니까요. 그렇다 보니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라는 측면에서도 말 그대로 전방위적인 대응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전환'이 지금 당장은 그저 발전(發電) 측면에서의 변화를 의미하지만 이는 곧 발전의, 수송의, 산업의, 주거의 탈화석연료를 의미하니까요.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라고 부르는 것들은 지금의 우리 문명에서 연료 그 이상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석유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이용하는 전자제품의 플라스틱으로도, 세수하고 샤워할 때 쓰는 비누나 샴푸로도, 우리가 입는 옷의 옷감으로도, 그 옷을 세탁하는 세제로도, 매일 같이 이용하는 운송수단의 바퀴로도, 그 운송수단이 다니는 도로로도… 탈탄소, 탈화석연료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말 그대로 '무거운', 그리고 중요한 이유입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