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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 '30년 가로수' 실종 사건의 전말

입력 2022-04-12 09:00 수정 2022-04-1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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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밀착카메라팀은 지난 6일, 경기도 분당에서 한 호텔을 지으며 수령 30년 넘은 가로수 수십 그루를 잘라낸 사실을 취재해 보도했습니다. 나무가 왜 잘려나가야만 했는지 조금 더 자세한 내막을 전해드립니다.

[취재썰] '30년 가로수' 실종 사건의 전말
└관련기사: [밀착카메라] 그 멋졌던 '30년 가로수들'…이틀 만에 사라진 이유
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2054166

■ 밑동만 덩그러니 남은 70그루

취재진에게 '나무 실종' 제보가 온 건 지난달 30일입니다. 20년 넘게 그 길을 다니며 봐 온 나무가 참 예뻤는데 갑자기 사라져 속상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보를 한 김모 씨는 "어른이 안기에도 모자랄 만큼 큰 거목을 막 잘라도 되는 건가요?"라며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현장으로 가 봤습니다. 제보자의 말처럼 나무 수십 그루가 밑동만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안전 고깔이 저마다 올려져 있었습니다. 시공사 측은 "야간에 보행자 안전을 위한 식별표시"라고 했습니다. 잘린 나무는 메타세쿼이아 70그루로, 밑동만 봐도 상당히 컸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취재썰] '30년 가로수' 실종 사건의 전말

나무가 잘리기 전 사진을 살펴보니, 도로 양측으로 메타세쿼이아가 울창해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풍경이었습니다. 실제로 이곳은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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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만난 시민 이조숙 씨는 나무가 잘려나가는 걸 직접 봤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기톱으로 여러 번 해서 잘라버리더라고. 너무 마음 아프잖아. 여기 여름이면 그늘져서 우리 산책하기 좋은데…. 그래서 딸하고도 이런 얘기 했어요. 이걸 어떻게 자르라고 허락을 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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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사라진 바로 옆에선 호텔을 짓고 있습니다. 2018년 착공해 오는 10월이면 준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건물을 올리는 공사는 어느 정도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나무가 그대로였으니 주민들은 나무에 닥칠 운명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 30년 나무, 이틀만에 사라졌다

나무의 비극은 이미 예정된 일이었습니다. 호텔 건립을 하며 받는 교통영향평가 결과, 차선이 하나 더 필요하다는 판단이 나온 겁니다. 호텔을 지으면 교통량도 늘어나고 호텔 진출입로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무가 심겨 있던 보도를 차도로 만들며 나무를 처리해야 했던 겁니다. 그렇게 지난달 26일과 27일, 이틀간 나무를 베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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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의문은 '옮겨 심으면 안 됐냐'는 겁니다. 이에 대해 분당구청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식은 불가능했습니다. 나무가 굉장히 크고 높죠. 장비로 이식하는 데 제한이 있었습니다. 또 워낙 오래된 나무이다 보니 뿌리끼리 서로 얽혀 있습니다. 이식하려면 뿌리를 절단해야 하는데, 많은 양의 뿌리가 절단됐을 경우 다시 심어도 도복(쓰러짐)의 우려가 컸습니다."

이런 판단의 근거가 된 건 성남시의 '도시 숲 등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조례'입니다.

[ 제12조(가로수 조성ㆍ관리 비용 부담금) ]
② 시장은 제1항에 따른 가로수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이를 제거하고, 별표9에 따른 비용 부담금을 징수한다.
1. 가슴높이 줄기 지름 25센티미터 이상(뿌리 지름 30센티미터 이상)의 대경목, 병해충 피해목, 노쇠목 등 옮겨심은 후 활착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수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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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뿌리 지름이 30㎝ 이상인 큰 나무였기에 옮겨심기 어렵다고 판단해 제거했다는 겁니다. 이미 호텔이 건립되기로 결정된 이상, 나무를 보존할 가능성은 사라졌던 셈입니다.

■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나무

그렇다면 애초에 호텔 건립을 허가하는 과정에서 가로수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을지 궁금해집니다. 결론은, 아니었습니다. 성남시청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건축 허가는 접도가 돼 있으면 나는 거고요. 차량 출입 불허 구간 등으로 제한하고 있지 않으면 출입구도 어디든 낼 수 있습니다. 가로수를 벌목하거나 이식하는 건 관련 부서와 협의하는 사항이에요. 허가 자체랑은 상관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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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관계자는 "시에서 이렇게 울창하고 특색있는 길은 거의 유일했기에 많이 아쉬워하시는 건 안다"면서도 "가로수를 바꿔 심거나 이식하는 조건으로 도로를 넓히는 건 대규모 건축물 건립에 있어 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나무가 사라진 자리에는 새로운 나무를 심을 예정입니다. 다만, 기존에 자리를 지켜온 메타세쿼이아는 불가능합니다. 도로 확장 공사를 하며 띠 녹지 폭이 1m밖에 안 남았기 때문입니다. 시행사가 낸 분담금으로 새로운 종류의 나무를 선정해 심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 "나무 관리 데이터 시민들에게 공개해야"

보도가 나간 뒤 많은 분이 속상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동네의 자랑으로 생각해온 게 그 어떤 멋진 건물도 아닌 이 나무 길이었다며, 상실감이 크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지자체 조례에 따라 절차적으론 문제없이 진행됐다고 하더라도 이 문제가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이식을 위한 노력은 충분했는지, 가로수 존치라는 가치는 얼마나 고려되고 있는지,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볼 창구는 없었던 건지 논의도 이어져야 할 겁니다.

[취재썰] '30년 가로수' 실종 사건의 전말

또 현행 지자체 조례나 가로수 관리 매뉴얼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매년 무분별한 가지치기 등으로 고사하는 가로수만 1만 6천여 그루입니다. 결국 보다 못한 시민들은 '가로수시민연대'를 만들어 현장을 수집하고, 또 가로수 관리를 강화하도록 지침 개정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가로수시민연대 최영 활동가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무는 도시의 기초적인 인프라 중 하나에요. 공사를 하면서 '위험 수목이라 베어버리겠다'는데, 회복할 수 있는 조치를 하는 방법도 있는 거거든요. 뿌리가 거슬리니까 큰 나무를 베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한 번은 그 나무가 왜 위험한지 알아보려고 전화한 적이 있는데 (판단의) 기록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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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활동가는 나무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성이 확보돼야 한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언제 어떻게 잘랐고,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기초적인 데이터를 남겨놔야 하지만 잘 안 되고 있어요. 이 나무가 어떤 나무고 언제 심어졌고, 어떻게 관리돼왔는지 공공에서 정보를 공개하고 시민들이 참여도 할 수 있는 과정이 마련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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