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공익소송 나섰다 상대방 변호사 비용까지 물어야…"법 개정 필요"

입력 2021-03-03 18:24 수정 2021-03-03 19:58

백혜련 의원실·대한변협·참여연대 등 공동개최 토론회 "공익소송도 돈 있어야 하나요?"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백혜련 의원실·대한변협·참여연대 등 공동개최 토론회 "공익소송도 돈 있어야 하나요?"

민사소송에서 지게 되면 상대방의 변호사 선임 비용 등까지 부담해야 하는 것, 알고 계셨나요? 예외 규정을 두고 있긴 하지만, 우리 민사소송법상 소송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는 게 원칙입니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환경 문제를 법정에서 다투는 경우에도 예외 없이 적용됩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백혜련 의원, 참여연대 등은 "공익소송도 돈 있어야 하나요?"라는 온라인 토론회를 오늘(3일) 열었습니다.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몇 가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사례 1]
집에서 실수로 살충제를 마셔 사지절단 상태가 된 A씨. 들어둔 상해보험이 있어 보험금을 청구하려 했더니 거절당합니다. A씨가 자살할 의도로 마셨다는 게 보험사 주장이었습니다.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고, 보험사는 A씨에게 약 953만원의 소송비용을 청구했습니다.

[사례 2]
지하철역 계단에서 미끄러진 B씨, 119에 신고했지만 도착이 지연됐고 급히 도착한 병원에선 보호자가 없단 이유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사지마비, 배뇨 장애 등 후유증을 얻었죠. B씨는 지하철역을 담당하는 공사, 그리고 지자체, 병원에 소송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법정 싸움에서 진 B씨는 1억 원의 소송비용까지 내야하게 됐습니다.

발제자로 참석한 박호균 변호사는 이런 사례를 소개하면서, 경제적 약자인 시민들이 소송비용에 위축돼 재판 청구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B씨는 소송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상고를 포기하면 소송비용을 청구하지 않겠지만, 계속 소송한다면 비용을 청구하겠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국가 책임 물었지만 돌아온 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오히려 거액의 소송비용을 물게 된 사례는 더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씨도 오늘 직접 토론회에 나와 목소리를 냈는데요. 김 씨가 가해 공무원들과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재판부는 1억여 원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소송비용의 4/5는 김 씨가 부담하라고 했습니다. 김 씨는 "국가의 범죄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고자 한 소송인데, 왜 소송비용을 원고에게 부담하게 하느냐"고 꼬집었습니다.

고리원자력발전소 인근에 살다가 갑상선암에 걸려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소송 전에 뛰어들었던 '균도네 가족' 사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2019년 항소심 재판부는 "피폭 량과 암 발병 사이 상관관계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냈고, 소송비용도 원고가 물라고 했습니다. 대법원에서도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되면서 많게는 약 2300만원의 소송비용을 내야 하게 됐습니다. '균도 아빠' 이진섭씨는 오늘 토론회에서 "국가기관 책임에 대한 궁금함이 결국 마지막에 돈으로 둔갑해 돌아왔다"고 호소했습니다. 신안군 염전노예 사건 피해자들이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 지자 700만원 상당의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했던 사례도 대표적으로 언급됩니다.


◇공익소송엔 '패소자 부담' 예외 둬야
이 때문에 공익소송에서는 소송비용을 패소자가 부담하게 하는 원칙이 예외적으로 적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박호균 변호사는 '패소자 부담 원칙'이 1990년도 이전에는 없었다고 소개합니다. 그 전까지는 소송비용 중 변호사 선임료는 원고와 피고 각각 부담하게 돼 있었는데, 1990년도에 '패소자 부담 원칙'으로 민사소송법이 바뀌었다는 것이지요. 당시에는 "승소한 사람에게 '상처뿐인 영광'을 주는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는 취지였다는데, 오늘날엔 패소자에게 상처를 더 안겨주는 셈이 됐습니다. 또 박 변호사는 미국과 일본에선 '변호사 보수 각자 부담 원칙'을 취하고 있다고도 소개했습니다.

법조계에서도 민사소송법 또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자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최용문 변호사는 개정안을 제안했습니다. 인권의 보호와 향상, 소비자 보호, 환경 보호 등을 원인으로 하는 소송에선 패소자가 부담할 소송비용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또 패소한 당사자의 경제적 자력이나 패소 사유 등을 고려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특히 정보공개청구소송에선 패소자부담주의의 예외가 돼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어디까지 공익소송일까?
법원과 법무부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토론회에 참석한 법원행정처 정혜림 사무관은 공익소송의 개념과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사익을 기초로 한 집단소송이 공익소송으로 분류될 수 있는데, 이럴 땐 해석상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최용문 변호사는 '소비자 보호', '환경 보호' 등 소송 원인을 개정안에 구체적으로 언급했을 뿐 아니라, 법원 내에서 공익소송에 대한 판례와 해석이 쌓이면 충분히 해소되는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서울대학교 공익산업법센터 김태호 위원도 공익소송에는 사회적으로 분산된 이익을 대변하거나, 사회제도와 정책의 변화를 꾀하려는 공통분모가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송의 본질 상, 공익 소송이라도 사적 권리를 추구하는 것이 배제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어떤 것이 사익을 기초로 한 소송인지 분별하는 시도가 무의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송이 남발되지는 않을까?
법원과 법무부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소송의 남발'입니다. 패소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원칙이 공익소송에서 예외가 된다면, 소송이 남발(남소)되거나 불필요한 상소(남상소)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박호균 변호사는 패소자 부담 원칙이 만들어진 뒤 소송이 남발되는 경우가 줄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최용문 변호사도 남소와 남상소에 대한 해결책은 법관을 늘리는 것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공익소송 당사자들의 재판청구권을 막는 논의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토론에 참석한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씨와 균도 아빠 이진섭씨는 남소와 남상소 논의에 불쾌감을 표했습니다. 자신들의 법정 싸움이 '남소'와 '남상소'에 불과하냐는 것입니다. 또 소송비용을 패소자에게 기계적으로 물리는 것은 공익을 건 법정 싸움에서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민변·백혜련 의원실 등 공동주최, '공익소송 등 패소비용제도개선을 위한 입법방안 모색 토론회'민변·백혜련 의원실 등 공동주최, '공익소송 등 패소비용제도개선을 위한 입법방안 모색 토론회'

◇헌재로 간 '패소자 부담 원칙'
앞서 몇 차례 헌법재판소는 소송비용을 패소자가 부담하도록 한 규정이 재판청구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균도네 가족이나 참여연대 등은 다시 헌법재판소 문을 두드린 상태입니다.

공익소송의 개념과 범위는 어떻게 정할 것인지, 소송비용을 감경하거나 면제하는 절차는 어떻게 만들 것인지 등 빈 칸은 남아 있습니다. 오늘 발제자들과 토론자들은 이 빈 칸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공익소송 사건은 승패를 떠나서 문제제기 자체로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줍니다. 없던 판례가 조금씩 만들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의 응어리가 풀어지는 기회가 되기도 하죠. 하지만 현 제도 아래에선, 누군가가 커다란 바위에 돌을 던지기 전에 한참 망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 보입니다.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