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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죽어가는 나무, 잊혀가는 나무…곳곳서 들리는 '지구의 경고'

입력 2021-09-27 09:32 수정 2021-09-27 09:32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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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98)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그 대응의 시급성을 알리는 '신호'는 잇따르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여름은 1980년대 113일에서 2010년대 127일로 2주가 늘었습니다. 폭염일수는 1980년대 9.8일에서 2010년대 14.9일로 늘었고, 열대야일수 또한 같은 기간 4.1일에서 9.9일로 증가했습니다. 30년 전부터 거론되던 해외의 '탄소세 도입'은 이제 현실로 찾아왔고, 탄소중립은 원하든 싫든 피할 수 없는 선택지가 됐습니다. 그럼에도 심각성도, 시급성도 여전히 체감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되곤 합니다. 감축은 미루고, 지금의 생산과 소비 방식은 유지하려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이런 가운데 환경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감축에 나서야 한다고, 즉각적인 에너지 전환과 산업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이죠.

#앓고_있지만_알지_못하는
 
취재진은 녹색연합과 함께 오대산 국립공원을 찾아 아고산대 침엽수의 고사 상황을 살펴봤습니다.취재진은 녹색연합과 함께 오대산 국립공원을 찾아 아고산대 침엽수의 고사 상황을 살펴봤습니다.

지난 3일, 녹색연합과 함께 찾은 오대산 국립공원엔 선선하고도 상쾌한 공기가 가득했습니다. 꽤나 더운 날이었고 한낮이었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온은 18℃ 안팎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산을 따라 올라가면서 하나, 둘 잎사귀 하나 없이 말라 죽은 나무가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얼핏 멀쩡해 보이지만 이파리 끝이 갈색빛으로 변한 나무, 잎 하나 없이 말라 죽어버린 나무, 맥없이 쓰러진 나무, 아예 뿌리째 뽑힌 나무… 벌레 때문도, 병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기온은 높고, 눈이나 비는 적게 내리면서 고사한 겁니다.

흔히 우리가 '고산 침엽수'라고 부르는 아고산대 침엽수의 고사는 나무의 밑에서 위로,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진행됩니다. 그 과정은 크게 초기, 중기, 말기 총 3가지 단계로 구분 지을 수 있습니다. 초기엔 잎끝이 갈색으로 변하다 조금씩 떨어져 나갑니다. 그러다 중기엔 나무의 윗부분에서도 잎의 갈변이 나타나면서 침엽수의 '숱'은 줄어들기 시작하죠. 결국 말기엔 남은 잎이 거의 없이 줄기만 남고, 급기야 나무의 껍질이 벗겨집니다.

 
고산 침엽수의 고사 과정고산 침엽수의 고사 과정


발걸음을 옮기다 고사가 진행 중인 나무를 볼 때마다, 취재진과 함께 오대산을 오른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오대산에서 고산 침엽수의 고사가 본격화한 것은 2016~2017년 즈음. 서 위원은 “한 번 고사가 시작되면 정상적인, 건강한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며 “고사가 시작한 나무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넘는 시간 동안 시름시름 앓다 죽고 만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현재 능선에 멀쩡한 상태로 있는 분비나무는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대부분이 고사했거나 고사가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분비나무만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산줄기를 따라 자라던 잣나무와 주목 역시 고사 현상에서 자유롭지 못 한 상태였습니다. 잣나무의 잎은 노랗게 변하며 떨어지기 시작했죠.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나무들이 받는 '기후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기온이 오르고, 비나 눈도 적게 오는 등 전에 경험한 적 없는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겁니다. 서 위원은 “활엽수와 달리 침엽수들은 사시사철 상록을 유지한다”며 “그러려면 겨울에도 충분한 광합성과 수분 공급이 필수”라고 설명했습니다. 아고산대 침엽수의 경우, 연평균기온 10도 안팎의 기온에서 살아가는데, 한반도의 기온 상승은 이 나무들에 치명적이었습니다. 또한, 한겨울 내린 눈은 봄철까지 쌓여서 상록수의 '수분 공급원' 역할을 했는데, 이제는 눈이 많이 내리지도 않을뿐더러 과거엔 한 번 내린 눈이 1주일 넘게 쌓였다면 최근엔 이틀 안팎에 다 사라져버리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고산 침엽수들은 기후변화를 오롯이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취재진은 오대산 두루봉 정상과 중턱서 직접 드론을 띄워 심각한 고사 상황을 살펴봤습니다. 취재진은 오대산 두루봉 정상과 중턱서 직접 드론을 띄워 심각한 고사 상황을 살펴봤습니다.


그렇게 병든 나무와 아직 상태가 괜찮은 나무들을 지나 해발 1421m의 두로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등산로 주변의 상황만 지켜보다 정상에서 바라본 산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 고사목의 특성을 알고 난 후 바라본 산의 모습은 '건강한 녹음'이 아닌, '병든 숲'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곳곳에 악성 종양이 퍼진 것처럼, 산의 구석구석엔 하얗게 말라 죽은 나무들이 퍼져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드론을 통해서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알고_있지만_잊혀져버린
 
2019년 4월 4일 JTBC 뉴스룸. 당시 취재진은 녹색연합과 함께 발왕산 정상을 찾았습니다.2019년 4월 4일 JTBC 뉴스룸. 당시 취재진은 녹색연합과 함께 발왕산 정상을 찾았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한 경고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수년 전부터 이어졌습니다. 2년 전에도 취재진은 강원도 발왕산을 올라 집단 고사 현장을 살펴봤습니다. 당시에도 녹색연합, 그리고 서재철 전문위원과 함께였죠. 당시에도 분비나무, 구상나무, 가문비나무, 주목 등 고산 침엽수들은 이미 고사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이대로라면 “길어도 10년 안에 모두 다 고사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랐습니다.

 
2019년 4월 4일 JTBC 뉴스룸. 당시 취재진은 녹색연합과 함께 발왕산 정상을 찾았습니다.2019년 4월 4일 JTBC 뉴스룸. 당시 취재진은 녹색연합과 함께 발왕산 정상을 찾았습니다.


같은 해, 국립산림과학원은 국내 고산지역 멸종위기 침엽수종 실태조사 분석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2017~2018년, 2년간의 조사 결과입니다. 전국 모든 구상나무의 33%, 분비나무의 28%, 가문비나무의 25%가량에서 고사가 시작된 상태였습니다. 산마다, 나무마다의 고사 통계도 나왔습니다. 한라산에선 구상나무의 39%가 고사 상태였고, 지리산에선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의 쇠퇴도가 각각 25%였습니다. 소백산에선 분비나무의 38%가, 태백산과 청옥산에선 분비나무의 35%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고요.

과학원은 “기온 상승과 가뭄, 폭염, 적설량 감소 등으로 인한 수분 스트레스로 고산 침엽수의 쇠퇴가 가속화하고 있다”며 “생리적 스트레스로 고사목들이 발생하면 숲의 구조가 변화하면서 강풍과 차고 건조한 바람으로 인한 피해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위성 영상을 토대로 시대에 따른 침엽수림의 변화도 나타났습니다. 전국 54곳을 분석했는데, 고산 침엽수림의 분포 면적은 20년 새 평균적으로 25%가량 줄었습니다. 한라산의 고산 침엽수림 분포면적은 2010년대 중반, 1990년대 중반보다 30.5% 줄어들었습니다. 같은 기간, 설악산에선 30.5%, 지리산에선 14.6% 감소했습니다.

 
(자료: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자료: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알면서도_모르는_척
 
오대산 아고산대 침엽수 고사 모습. 하얗게 변한 나무는 완전히 말라 죽어버린 나무들이다. (사진: 녹색연합)오대산 아고산대 침엽수 고사 모습. 하얗게 변한 나무는 완전히 말라 죽어버린 나무들이다. (사진: 녹색연합)

2년 전, 서 위원은 발왕산 정상에서 이렇게 사라져가는 고산 침엽수를 지키기 위한 첫걸음으로 '멸종위기종 등재'를 꼽았습니다. 고사 현황을 정기적으로 면밀히 들여다보고, 앞으로의 관리 대책 등을 수립하려면 제도적 근거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구상나무의 경우 우리나라 자생종으로, 한반도에서 구상나무가 고사해 사라진다면 더 이상 이 지구상엔 구상나무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이 때문에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2013년 구상나무를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했습니다. IUCN의 '적색목록'에 Korean Fir라는 이름으로 올라있는 겁니다. 미평가(NE, Not Evaluated)-정보 부족(DD, Data Deficient)-관심 대상(LC, Least Concern)-위기 근접(NT, Near Threatened)-취약(VU, Vulnerable)-절멸 위기(EN, Endangered)-절멸 위급(CR, Critically Endangered)-야생 절멸(EW, Extinct in the Wild)-절멸(EX, Extinct) 총 9개로 나뉜 등급 가운데 '절멸' 단계로 분류됐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의 멸종위기 야생생물 목록엔 빠져있었습니다. 서 위원은 바로 이 부분을 지적했던 겁니다.

 
설악산 대청봉의 아고산대 침엽수 고사 모습. 하얗게 변한 나무는 완전히 말라 죽어버린 나무들이다. (사진: 녹색연합)설악산 대청봉의 아고산대 침엽수 고사 모습. 하얗게 변한 나무는 완전히 말라 죽어버린 나무들이다. (사진: 녹색연합)

올해, 오대산 정상에서 서 위원에게 이 문제에 대해 다시 물었습니다. 당시 녹색연합도 강조했던, JTBC 뉴스룸을 통해서도 지적했던 이 문제가 해결됐는지 말입니다. 서 위원은 “여전히 그대로”라고 토로했습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등재가 시급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시민단체와 국회 등에서 환경부에 멸종위기종 등재를 요구했음에도 별다른 조치가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아무런 제도적, 법적 근거 없이 그저 죽어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태라는 겁니다. 그는 “구상나무 등 고산 침엽수의 집단 고사는 기후위기에 의한 멸종으로, 이는 곧 생물다양성의 위기”라며 “환경부가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에 통합 대응을 하는 국제적 추세에 발맞추지 못 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지리산 천왕봉의 아고산대 침엽수 고사 모습. 하얗게 변한 나무는 완전히 말라 죽어버린 나무들이다. (사진: 녹색연합)지리산 천왕봉의 아고산대 침엽수 고사 모습. 하얗게 변한 나무는 완전히 말라 죽어버린 나무들이다. (사진: 녹색연합)

그나마 다행인 점은, 산림청과 산림과학원 등 관계 기관에서 본격적인 연구 및 조사에 나섰다는 겁니다. 하지만 중앙 부처의 무관심이 이어진다면, 연구는 연구로, 조사는 조사 보고서로만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현장을 바꿀 '정책'과 그 원동력은 부처에서 비롯되니까요.

국가 차원의 탄소중립 선언 이후, 온실가스 감축과 생물다양성 보전,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저감 등 다양한 '정책 선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년 전과 마찬가지로 멸종위기임에도 멸종위기종에 등재되지 않은 구상나무처럼, 온실가스도, 생물다양성도,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도… 그대로이진 않기를 바라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죽어가는 나무, 잊혀가는 나무…곳곳서 들리는 '지구의 경고'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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