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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그린 뉴딜 1년, 무엇이 달라졌나?

입력 2021-07-12 09:32 수정 2021-07-12 09:33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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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87)

우리나라가 그린 뉴딜 계획을 발표했던 '한국판 뉴딜 대국민 보고회'가 열린 지 어느덧 1년이 됐습니다. 한국판 뉴딜은 곧 '디지털 뉴딜'이라는 당초 인식과 달리, 지난해 7월 14일, 그린 뉴딜은 디지털 뉴딜과 함께 한국판 뉴딜의 양대 축이 됐죠. 이 계획에 '지각 합류'했던 그린 뉴딜이었지만, 투자 규모로는 한국판 뉴딜을 구성하는 것들 가운데 가장 큰 43조원이었습니다. 정부의 그린 뉴딜 발표 1년, 그사이 어떤 것들이 달라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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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_뉴딜이_강조했던_것들
당시 정부는 2025년까지 한국판 뉴딜에 투입되는 돈 160조원 가운데 절반 가까운 73.4조원이 그린 뉴딜에 들어간다고 설명했습니다. 디지털 뉴딜(58.2조원), 안전망 강화(28.4조) 부문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액수였죠. 정부의 그린 뉴딜은 ① 도시·공간·생활 인프라 녹색 전환, ② 저탄소·분산형 에너지 확산, ③ 녹색산업 혁신 생태계 구축 이렇게 3가지 내용을 골자로 했습니다.

이중 첫 번째와 두 번째 내용은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도시·공간·생활 인프라 녹색 전환'은 사실상 신축 건물의 제로에너지화, 구축 건물의 녹색 리모델링(또는 리노베이션) 등이 필수적으로 병행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리모델링, 재개발, 신축 등의 키워드는 모두 부동산 정책에 잠식되어버렸죠. 물론, 아무 변화가 없던 것은 아닙니다. 정부가 그린 뉴딜을 발표하기 전, 이미 제로에너지 건축물 의무화에 나섰던 상태였으니까요. 2020년, 연면적 1000㎡ 이상의 공공건물을 시작으로 2025년, 연면적 500㎡ 이상의 공공건축물과 1000㎡ 이상의 민간건축물, 30세대 이상의 공공주택 등을 대상으로 제로에너지 건축을 의무화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1년간 공공임대주택 1만여호와 어린이집 800여곳 등의 공공건축물에서 '녹색 리모델링'이 진행됐죠. 그린 뉴딜의 성과일 수도, 기존에 있던 제도나 규제가 제 역할을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뉴딜'인 만큼, 공공과 민간에 걸친 대규모의 리모델링이 기대됐지만 그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뉴딜'인 만큼, 그로 인한 다양한 일자리 창출 역시 아직은 크게 눈에 띄지 않고 있고요. 우리 생활 속 녹색 인프라인 공원은 어떨까요. 도시공원일몰제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많은 면적의 녹지의 처지도 1년새 크게 달라진 바 없습니다.

'저탄소·분산형 에너지 확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재생에너지 발전은 크게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과 투자 움직임은 많이 늘었습니다만 여전히 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은 OECD 최하위권 수준입니다. 재생에너지의 확대뿐 아니라 '분산형 에너지'에 대한 준비도 여전히 부족합니다. 여전히 우리나라의 에너지 망은 분산형이 아닌 '중앙집중식'이니까요.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전기차의 보급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제조사가 과거 대비 다양한 전기차 차종을 내놓고 있고, 소비자가 이를 선택해 구매한 결과이기도 하죠. 정부의 '저탄소·분산형 에너지 확산' 정책 때문이라고만 이야기하기엔 부족합니다.

사실, 표현이 어려울 뿐이지 저탄소든 분산형이든 모두 재생에너지를 의미하는 내용입니다. 바람이나 일조 등 입지 조건에 따라 발전 설비가 퍼져있는 재생에너지의 특성상 지금처럼 한 발전소에서 대량의 전기를 곳곳으로 보내주는 전력망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태양광의 경우 소규모로 개인이 설치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개인이 전기의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가 되기도 하죠. 이러한 '새로운 전력망'의 설치가 투자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핵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몇 년까지 몇 기가와트의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을 설치하겠다'는 목표들만 쏟아질 뿐, 어디에 어떻게 설치하겠다는 구체적인 안은 없는 상태입니다. 그 계획이 나와야 망을 짤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쏟아지는 목표는 곧 시민들에 대한 약속이기도 하죠. 약속한 것들은 많은데, 눈에 띄는 실천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입니다.

'녹색산업 혁신 생태계 구축'의 경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어떤 변화를 이끌었다기보다는 전 세계적인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 강화 트렌드 덕분에 크고 작은 변화가 목격되고 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경제 주체들은 달라지거나 달라진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이런 가운데 최근 들어 한국판 뉴딜의 중심이 이동하는 듯한 모습도 포착되고 있습니다. 사회 안전망 강화 부문이 '휴먼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청년들을 지원하고, 국공립 어린이집을 늘리겠는 목표와 함께요. 한국판 뉴딜을 통한 '청년 달래기'에 나서는 모습입니다.

#좋든_싫든_거스를_수_없게_된_ESG
지난 1년간 정부의 정책보다 더 큰 변화를 보인 것은 민간 분야의 변화였습니다. 특히, 기업들의 변화가 두드러집니다. 좋다, 나쁘다, 변화가 빠르다, 느리다, 충분하다, 충분치 않다 등 평가는 제각기 다르지만 말이죠.

최근 기업들의 광고에서, 언론의 보도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ESG입니다. 환경(Environmental)의 E, 사회(Social)의 S, 그리고 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의 G를 따서 만든 이 개념은 글로벌 기업 생태계의 핵심 가치로 떠오르고 있죠. 예전 같으면 '기업의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이를 홍보하는 것으로 그쳤겠지만, 요즘의 모습은 다릅니다. ESG에 얼마나 집중하느냐에 따라 주가가, 투자자가 움직이기 시작한 겁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자산운용사들의 변화에서 포착됩니다.

 
WWF가 최근 발간한 〈2021 책임투자 프랙티스 분석 보고서: RESPOND, 회복성 및 지속가능성 기반의 포트폴리오〉WWF가 최근 발간한 〈2021 책임투자 프랙티스 분석 보고서: RESPOND, 회복성 및 지속가능성 기반의 포트폴리오〉


WWF(세계자연기금)는 최근 '2021 책임투자 프랙티스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전 세계 주요 자산운용사 30곳의 투자를 평가한 결과입니다. 이들이 얼마나 '책임투자'를 하고 있는가를 따져본 것이죠. 이를 통해 전 세계 '돈의 흐름'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덤입니다.

일단 “유럽과 아시아의 자산운용사 모두 책임투자의 기본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 WWF의 평가입니다. 실천 여부야 조사 대상 운용사마다 서로 다른 모습이었겠지만 적어도 책임투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변화에 나섰다는 거죠. 조사 대상은 유럽과 아시아의 자산운용사 30곳으로, 이들이 운용하는 자산만도 16조 달러, 우리 돈 1경 8376조원에 달합니다.

조사 결과, 30곳 모두 '지속가능성'을 주된 전략적 이슈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29개 자산운용사가 투자의사 결정 절차에 기후변화 관련 요소를 반영 중이었고, 28곳이 SDGs(지속가능발전목표)를 사업의 목적과 전략에 명시해놨습니다. 또한 25곳은 이미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에 ESG 분석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일부 자산운용사들은 투자 대상 기업 혹은 프로젝트에 보다 구체적이고도 강력한 기후위기 대응을 주문하고 있었습니다. 6개 운용사는 포트폴리오 기업들에 자사의 기후 관련 재무정보 공시 TF가 권고하는 내용을 충족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3곳은 포트폴리오 기업들에 탈탄소화를 위한 과학기반목표(SBT, Science Based Targets)의 수립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책임투자와 탄소중립 대응 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WWF의 판단이었지만,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 비춰봤을 때 글로벌 자본의 변화는 말 그대로 '달려가는 중'이었습니다.

#남들은_달려가는데_우리는_아직도_걸음마
 
그린피스가 최근 발간한 〈10대 그룹 기후위기 대응 리더십 성적표〉 보고서 (자료: 그린피스)그린피스가 최근 발간한 〈10대 그룹 기후위기 대응 리더십 성적표〉 보고서 (자료: 그린피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 10대 그룹의 기후위기 대응을 평가한 결과가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8일, 그린피스는 국내 10대 그룹 100개사를 대상으로 재생에너지 사용 현황과 장단기 목표를 설문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시민 개개인이 제아무리 안 쓰는 콘센트를 뽑고, 전기를 아껴 쓰고, 더위나 추위를 참는다 한들… 이들 기업의 감축 노력 없이 탄소중립은 불가능합니다. 10대 그룹 100개사가 사용하는 전력량이 우리나라의 모든 가구가 사용하는 것보다 많습니다. 또한, 제조업의 경우 전기뿐 아니라 제품의 제조 과정에서도 추가로 온실가스를 뿜어내기도 하죠. 100개 기업이, 10개 그룹이, 각 그룹의 수장 1명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결정을 하느냐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사실 이 10개 그룹의 수장 모두는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던 바 있습니다. 몇몇 발언들을 살펴볼까요.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은 “지속가능한 100년을 만들어 가기 위해 환경적, 사회적 가치 창출에 더욱 힘쓸 것(창립 50주년 행사 발언)”이라고,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기후변화 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생산 시설에 대한 친환경 투자를 확대할 것(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 2020)”이라고 밝혔습니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장기적 로드맵에 따라 자동차의 제조, 운영, 폐기 등 전 과정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할 것(지난 5월 P4G 정상회의 사전 세션)”이라고도 했죠.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기후변화 대응은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부터 해결해 나서야 하는 현재의 이슈”라며 “저탄소 사회로 도달하는 방법을 찾는 데 포스코를 포함한 다양한 선도기업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한다(2020년 포스코 기후행동보고서 서문)”고도 했습니다. 손병환 농협그룹지주 회장은 “'농협이 곧 ESG'라는 인식으로 국민과 지역사회, 환경에 기여하는 금융그룹으로 나아가야(지난 4월 사회가치 및 녹색금융 협의회)”한다고 말했습니다.

“기후위기 문제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노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 기업 42곳 가운데 35곳이 “전사 차원에서 중대한 문제로 받아들이며 목표 및 이행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6개사는 이행방안은 아직 없지만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한다고 답했고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로 끌어올린다는 정부의 'RE3020'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엔 응답 기업의 60.5%가 “적절하다”, 34.2%가 “강화돼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최소한 '기후위기는 대응이 시급한 문제이며, 이를 위해 재생에너지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형성된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가슴이 웅장해지는 대표의 발언이나 설문조사 결과와 달리 실제 '성적표'는 아쉬움 투성이였습니다. 그린피스는 “말로만 ESG 경영”이라며 “실제 기후위기 대응 노력은 낙제 수준”이라고 비판할 정도였죠. 성적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0대 그룹 기후위기 대응 리더십 성적표 (자료: 그린피스)10대 그룹 기후위기 대응 리더십 성적표 (자료: 그린피스)


그린피스는 ① 사용 전력의 '재생에너지 100%' 전환 계획 여부, ② '재생에너지 100%' 목표 연도, ③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현재 사용 중이거나 계획 중인 조달 제도, ④ 기후 대응 관련 정보(전력사용량, 재생에너지 비중, 온실가스 배출량 등) 공개 여부 등을 평가해 점수를 매겼습니다. 그 결과, A에서 F까지의 점수 중 A나 B를 받은 곳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또한, 최저점인 F를 받은 그룹 가운데 현대자동차와 GS, 현대중공업은 아예 모든 계열사가 조사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룹 내 모든 계열사가 설문에 응답한 그룹은 삼성과 SK 두 곳에 그쳤죠.

조사에 응한 7개 그룹의 44개 기업 가운데 '재생에너지 100%'를 계획하고 있는 곳은 37개사에 불과했습니다. “재생에너지 100%를 할 계획이 없다”고 답한 곳도 있었습니다. 이미 300여 글로벌 기업이 RE100에 가입한 상황에서도 '재생에너지 모르쇠'의 입장을 보인 곳, 롯데그룹의 4개 계열사(롯데쇼핑, 롯데건설, 롯데하이마트, 롯데푸드)와 포스코의 3개사(포스코인터내셔널, 포스코ICT, 엔투비)였습니다.

한편, 이러한 재생에너지와 관련한 내용이 “현재 탄소중립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검토사항으로 설문에 응답할 수 없다”고 했던 현대자동차는 지난주 “RE100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가입 의사 자체는 반길 일이지만 여기서도 아쉬움은 가시지 않습니다. RE100 달성 시점으로 2050년을 내세운 겁니다. 2050년에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하는데, 전력 사용에서의 탈탄소를 2050년에야 마무리 짓겠다는 거죠. 그린피스는 “현재 RE100에 가입한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100% 달성 시점은 평균 2028년”이라며 “마감 기한에 맞춘 게으른 목표”라고 지적했습니다. 여기에 현대차 그룹의 계열사인 현대제철은 여전히 '탈탄소'뿐 아니라 '재생에너지 100%'와도 거리가 멉니다.

전기차, 수소차의 선두주자가 되겠다는 현대차의 '가슴이 웅장해지는' 목표. 그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은 여전히 석탄으로 만든 전기를 쓰고, 자동차에 쓰이는 철판은 석탄을 때어 만든다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8기통과 12기통 휘발유 엔진을 주력으로 하는 영국의 벤틀리가 재생에너지 100%의 탄소중립 공장에서 차를 만든다고 홍보하는 것도 아이러니지만 무공해차를 다배출 공정을 통해 만드는 것도 그에 버금가는 아이러니일 겁니다.

탄소중립 원년, 이제 절반이 지났습니다. 제조업의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에 있어 국제사회의 발 빠른 탄소중립 움직임은 높고 험한 파도와도 같습니다. 하지만 원하던, 원치 않든 넘어야 하는 파도라면 겉보기(생산품)보다 내실(생산 과정)에 더욱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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