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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 "명품 마케팅? 줄 세우고 초조하게 만드는 거예요."

입력 2021-04-26 14:10 수정 2021-04-26 15:39

[취재썰] "명품 마케팅? 줄 세우고 초조하게 만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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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 "명품 마케팅? 줄 세우고 초조하게 만드는 거예요."

매일 새벽 백화점 앞에 낚시 의자를 펼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찬 공기를 피해 패딩으로 온몸을 덮기도 합니다. 그렇게 3시간, 4시간, 심지어 하룻밤을 꼬박 새우면 오전 10시가 됩니다. 백화점 개장을 30분 앞둔 시각, 직원들은 대기 번호를 나눠줍니다. 이 번호는 그날 명품 매장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됩니다.

JTBC 밀착카메라팀은 직접 나흘간 '오픈런'을 해보며 이 안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명품 브랜드 샤넬이 가격을 인상한다는 소문이 돌았던 4월 15일부터 지켜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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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샤넬 또 오른대" 긴 줄…'오픈런' 가보니(4.20)
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2001120

오픈런 초보인 취재진은 첫날 아무런 '장비' 없이 갔다가 낭패를 봤습니다. 왜 사람들이 캠핑 의자를 챙겨오는지, 봄인데도 두꺼운 점퍼를 입는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찬 바닥에 앉아 꼭두새벽부터 3시간 30분을 기다렸지만, 취재진이 받은 대기 번호는 43번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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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개장 시간에 맞춰 왔다간 대기번호가 수백 번대까지 길어집니다. 아예 그날 입장을 못 할 수 있는 겁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기에 거리 두기는 지켜지지 않고, 자리를 두고 실랑이도 벌어집니다. 리셀을 목적으로 아예 전날부터 자리를 맡아두는 소위 '업자'들을 향한 다른 소비자들의 분노도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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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샤넬을 향한 사람들의 마음은 식을 줄 모릅니다. 지난해 두 차례 가격을 올린 샤넬은 전년 대비 영업 이익이 34% 올랐습니다. 코로나로 면세 매출은 크게 줄었지만, 국내 사업 매출이 26% 오르며 견인했습니다. 이른바 '에루샤'로 불리는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의 국내 경영실적이 처음 공개됐는데,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만 2조4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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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취재진은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명품 구매와 관련해 '보복 소비'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코로나19는 사람들의 오프라인 생활을 최대한 억제하죠. 여행도 못 가고 우울하기도 하고요. 억제된 일상생활의 욕구가 뚫고 나오는 창구 중 하나로 구매에 대한 집착을 얘기할 수 있어요.

-MZ세대의 특징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MZ세대라고 부르는 2~30대는 기본적으로 브랜드에 익숙해요. MZ세대가 중, 고등학교에 다닐 시절 당시 사회 이슈로 이런 단어가 있었어요. 학생들이 N사 아웃도어 브랜드에 열광하면서 '등골브레이커'라는 기사들이 많이 나왔어요. 브랜드에 익숙한 이들이 명품에도 계속 관심을 이어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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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런에 온 소비자들은 소위 '업자' 얘기를 많이 하더군요.
=오픈런에 와서 줄 서는 사람 중엔 순수한 소비자도 있겠지만, 업자들도 매우 많아요. 제가 보기엔 거의 반 정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지만, 바람직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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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점에서 그렇게 보고 계신가요.
=예를 들어 한 명품 브랜드 가방이 500만원인데 도무지 500만원으로는 살 수 없는 시장 구조가 되는 거죠. 리셀하는 사람이 많이 붙어서 다량으로 구매해 웃돈을 붙여서 판다? 일반 소비자는 꼭 리셀러에게 550만원이나 600만원을 줘야 살 수 있게 되는 거예요. 바람직한 시장이 형성되는 거라고 보긴 어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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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가서 줄을 서도 못 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명품 브랜드의 공급관리를 얘기할 수 있어요. 항상 공급이 약간 부족하게끔 관리를 하면 결국 수요가 과열되죠. 사람들은 사고 싶어도 물건을 살 수가 없고, 재빠르게 획득한 사람한테 웃돈 주고 구입할 수밖에 없는 거죠. 자기네 제품을 사기 위해 안달나게 만드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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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명품의 마케팅 방법이란 거군요.
=마케팅 기법의 하나가 소비자를 초조하게 만드는 거예요. 한국에서 기업 활동도 보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버티게 하고 줄 서게 하고, 갑의 입장에서 '우리걸 너네가 그렇게 원하는구나' 이렇게만 할 건 아니에요. 그 사이 기업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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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기사가 나간 지 6일째인 오늘도 샤넬 가격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오픈런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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