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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진실규명, 추징금 미납…전두환 사망 뒤 남은 과제는

입력 2021-11-24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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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보도 시 프로그램명 'JTBC 아침&'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JTBC에 있습니다.
■ 방송 : JTBC 아침& / 진행 : 이정헌


[앵커] 

1980년 광주 학살의 책임자, 전직 대통령 전두환 씨가 어제(23일) 아침 90세의 나이로 자택에서 사망했습니다. 12.12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유혈 진압하면서 현대사에 씻을 수 없는 비극을 안겼지만 끝내 사과 한마디 남기지 않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5.18 단체들은 전 씨의 죽음으로 진실을 묻을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두환 씨는 세상을 떠났지만 끝나지 않은 아픔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남아 있는 과제들이 많습니다. 최영일 시사평론가 자리 함께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최영일 / 시사평론가 : 안녕하세요.] 

[앵커] 

지난달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한 지 29일 만에 전두환 씨도 숨졌습니다. 12.12 군사쿠데타의 주역 2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전두환 씨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광주 시민과 국민들에게 단 한마디 사과도, 단 한 줄의 반성문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최영일 / 시사평론가 : 맞습니다. 80년대가 시작이 돼서 90년대 초반까지 10여 년 동안 한국 사회가 사실은 민주화가 정체된 시기였습니다. 경제는 그 당시에 호황이었다고 합니다마는 상당히 많은 인권유린과 문제는 이제 정권이 시작되는 출발점에서부터 군사반란 심지어는 시민학살이 있었던 아픈 역사인데요. 말씀하신 대로 그 주역이었던 전두환 씨가 사과를 남기지 않고 이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면서 오히려 지금 5.18 관련 시민단체 또 유가족들 지금 허망하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결국은 치유되지 않은 역사가 21세기까지 넘어와서 결국은 또 살아남아 있는 자들의 과제로, 숙제로 남게 된 것 같습니다.]

[앵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것뿐만 아니고요. 각종 인권유린을 저질렀습니다. 부산형제복지원에 3500여 명이 끌려갔고요. 500여 명이 폭행을 당하거나 강제노역에 시달리다가  숨졌습니다. 삼청교육대에도 무고한 시민들이 많이 끌려가서 큰 피해를 입었고요. 

[최영일 / 시사평론가 : 그렇습니다. 지금 형제복지원이나 삼청교육대 같은 경우에는 일부 깡패들을 수용해서 사회 정화한다 이런 명분으로 당시에는 또 일부 시민의 호응을 얻기도 했었습니다마는 시간이 흘러서 나중에 진상을 밝혀지고 나니 형제복지원 같은 경우는 저만 해도  방송에서 알게 된 희생자분들이 계신데요. 그야말로 10대 중학생 나이에 지방에 있는 친척 집을 방문했다가 고속터미널 앞에서 납치되듯이 잡혀가서 끌려들어간 겁니다. 거기서 이제 사상자가 굉장히 많이 나오죠. 그 안에서의 어떤 문제들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한다든가 또는 이제  탈출을 시도한다든가 그랬을 때 구타당해서 사망한 분들도 상당히 됐고 시간이 흘러서 또 암매장된 상황들이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는 정권의 비호 아래에서 그것이 일부 사회 정화라는 좀 터무니없는 이유로 무고한 많은 시민들이 인권탄압을 받았던 시기였고요. 그런 일들이 여러 부문에서 특히 이제 정치적인 탄압이라든가 민주화를 주장하는 시민과 또 정치 세력들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가혹한 인권유린이 이어졌기 때문에 지금 돌이켜본다면 정말 있을 수 없는 정권이었던 거 아닌가. 정말 선진화되는 과정에서 10년 동안 우리 사회의 진화의 발목을 잡았다, 이렇게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전두환 씨의 최측근입니다.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 전 씨의 자서전 일부 내용이 유서다, 이렇게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유서의 내용을 보면 사과는 단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과를 했느냐 이렇게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서 굉장히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이건 어떻게 보셨어요? 

[최영일 / 시사평론가 : 그러니까 기자가 어제 사죄 얘기를 꺼내자마자 잘못된 질문이라고  바로 즉답을 하면서 육하원칙에 근거해서 뭘 사죄해야 되는지를 다시 물으라는 취지예요. 그러면서 이미 회고록 안에는 말씀하신 대로 유지가 들어 있다. 그리고 여러 차례 광주 문제에 대한 사과를 했다라고 얘기했어요. 그러니까 청문회라든가 과거에 벌어졌던 5공 청문회. 그리고 95년도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이었죠. 군사반란에 대한 재판이 있었고 이때 정말 엄중한 선고를 받기도 했는데 이때 이제 유감이라는 표현도 했고 또 일부 사과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된 건 맞습니다. 맞습니다마는 문제는 뭐냐 하면 민정기 전 비서관이 주장한 회고록이 4년 전이거든요. 그럼 이제 전두환 씨의 역사 관련 발언으로는 회고록이 가장 최근에 나온 이야기다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안에서 지금 헬리콥터에서 기관총 사격이 당시에 있었다는 고 조비오 신부의 증언을 거짓말쟁이다, 심지어는 사죄의 가면을 쓴 사탄이다, 이렇게 해서 지금 사자명예훼손 재판이 벌어지고 있었던 거고요. 수많은 왜곡이 있었던 회고록에 대해서 민사소송도 나와 있고요. 심지어는 5.18 당시에는 이야기하지 않았던 절대로 북한군은 내려올 수 없다라고 얘기했는데 북한군 개입설이라든가 광주는 폭동이었다, 이런 표현이 들어 있는데 그걸 어떤 국민들이 사과로 받아들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오히려 마지막 가는 길에 회고록을 들이민다고 한다면 이 안은 정말 수많은 역사 왜곡으로 점철돼 있고 역시 사죄의 어떤 정황은 없다, 이렇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앵커]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전두환 씨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어제 저희 뉴스룸에서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말이죠. 전두환 씨 측에서 전두환 씨가 혹시 재판에서 치매로 무슨 말을 할지 모른다 그래서 수면제를 먹였다 뭐 이런 얘기가 나왔거든요. 이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재판을 고의로 방해했다는 그런 의혹을 또 살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최영일 / 시사평론가 : 맞습니다. 지금 그러니까 재판에서 안 그래도 재판 태도도 논란이 됐었어요. 재판에 들어갈 때도 기자들의 질문에 이거 왜 이래 뭐 이런 얘기도 화제가 되곤 했는데요. 문제는 재판에 3번밖에 안 갔습니다마는 그 3번의 재판에서도 마지막 재판은 건강이 좋지 않다라고 결국은 재판을 중단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일이 벌어졌고 그 전에도 재판 과정에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보였었는데 지금 나중에 알고 보니 알츠하이머라고 주장은 했었죠. 그런데 어떤 발언을 할지 몰라서 수면제를 먹였다, 그럼 이건 고의로 재판에 참석한 피고인을 잠재웠다는 얘기가 되는 거거든요. 말씀하신 대로 이건 명백하게 재판을 방해하려는 고의적인 의도로 수면제라고 하는 약물을 통해서 재판에 피고인이 참여하지 못하게 막은 것이 아닌가 이렇게 볼 수밖에 없겠습니다. 논란이 될 것 같습니다.] 

[앵커] 

조비오 신부의 사자명예훼손에 대한 재판은 공소기각으로 이제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마는  민사재판은 이어지잖아요. 

[최영일 / 시사평론가 :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피고인이 사망하면 형사재판은 중단되기 때문에 지금 다가오는 29일 월요일에 마지막 변론이 잡혀 있었는데요. 결국은 피고인 사망으로 공소는 기각될 것으로 보여지지만 민사는 결국은 지금 고 조비오 신부도 이제 고인이기 때문에 유족들이 재판을 하고 있는 거거든요. 여전히 전두환 씨의 유족을 상대로 해서 민사재판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앵커] 

헬기 사격도 그렇고요. 최초 발포를 명령한 그 사람을 밝히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은 5.18의 진상, 진실을 규명해야 될 텐데 전두환 씨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와 함께 같은 길을 걸었던 5공 핵심인사들이 있고요. 또 헬기사격의 목격자, 5.18들의 피해자들이 여전히 많이 있지 않습니까? 진실규명을 위한 작업 멈춰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최영일 / 시사평론가 : 지금 국회에서 특별법을 제정해서 지금 광주의 진상을,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2023년까지 앞으로 2년 더 가동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기서 밝혀야 될 게 말씀하신대로 많은 부분들이 풀리기도 했지만 누가 발포를 명령했는가. 처음에 발포 상황은 어떠한 것인가. 왜냐하면 당시 계엄군의 주장은 시민들의 위협 때문에 우발적인 발포가 일어난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고 현장 상황이라고 보고 있는 거고 명령권자가 없었다는 식으로 지금은 둘러댔는데 문제는 기관총에 총탄을 무장하고 헬기가 날아가서 기관총 사격이 있었던 등 당시 전투기도 출격 대기를 하고 있었다 이런 정황들 지금 명령서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따른다면 이것은 조직적으로 군의 어떤 상부에서 지시가 없이는 이루어지기 어려웠던 일들이 이제 확인되고 있거든요. 국방부는 헬리콥터 사격은 사실이다. 지금 탄도 분석을 통해서 또 입장을 최근에 밝히기도 했고요. 그렇다면 이제 진상규명회의 조사위원들의 활동이 중요한데 말씀하신 대로 정점인 전두환 씨는 사망했지만 그 세력이 살아 있고 그 당시에 참여했던 군인들이 있기 때문에 제가 관측컨대는 오히려 더 많은 증언이 지금부터 봇물처럼 나올 수도 있다. 진실의 조각을 맞춰야 한다. 심지어는 실종자와 사망 추정자들의 암매장 장소도 찾아야 합니다.]

[앵커] 

1997년 전두환 씨는 뇌물수수 혐의로 2205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가진 돈은 29만 원밖에 없다. 뭐 이런 말로 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956억 원을 미납했는데 이것도 추징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최영일 / 시사평론가 : 추징을 해야 되는데 이제 검찰은 법리 검토에 들어갔죠. 그런데 본인 명의의 재산이 아니라면 본인 명의의 재산이 남아 있다면 상속 재산도 추징의 재산이 되는데요. 문제는 차명으로 비자금을 다 은닉해버렸고 본인 명의가 드러나지 않으면 어렵다. 지금 이제 남아 있는 것이. 물론 3자 명의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명백한 비자금이 불법적으로 이전된 것이라면 확인이 되면 추징은 가능한데 찾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이 최선을 다해 주기를 기대하면 지금 연희동 자택도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본채와 정원은 이게 쿠데타 이전, 집권 이전의 재산이기 때문에 손댈 수가 없고 비자금으로 이제 매입한 것으로 보여지는 별채 이 정도는 지금 추징 대상이 될 것 같거든요. 끝까지 추징하기를 국민들이 바라고 있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광주 학살의 책임자 전두환 씨는 세상을 떠났지만 5.18의 아픔과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명확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영일 시사평론가였습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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