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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철창에 구겨진 채 도살되는 개들...어디까지 허용되야 하나

입력 2021-07-10 18:42 수정 2021-07-10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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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식용은 개인의 선택이다

개고기를 먹느냐. 마느냐. 온전히 개인의 선택 문제입니다. '몸에 좋다. 맛있다' 생각하면 먹겠지요. '개는 우리 친구야. 먹으면 안 돼'라고 접근하면 두 입장은 끝까지 평행선일 겁니다.

'똑같은 고기인데 왜 하필 개만 갖고 그러느냐'는 질문도 있습니다. 맞고도 틀린 말입니다. 포유류가 다른 동물을 먹는 건 자연스런 일이죠. 하지만 인간은 그저 고기라는 이유로 모든 동물을 다 먹지는 않습니다. 문명은 최소한의 윤리 의식과 규칙을 요구하니까요.

“개고기를 먹어도 되느냐. 금지해야 하느냐”

이 오래되고 단순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보시죠.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이 지난해 10월부터 8개월 동안 개고기 생산-도살-소매까지 유통 과정 전반을 뒤쫓았습니다. 이 관찰 내용은 특별하거나 과장된 케이스가 아닙니다. 우리 주변 개고기 소비의 가장 일반적인 패턴입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유통의 뒷모습입니다. 귀한 자료입니다.

동물권 단체의 성향이나 주장을 배제하고 기록을 중심으로 해답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개고기, 먹을 수 있는 수준인가

전문가에게 물었습니다. “소 닭 돼지라면 고기로 출하될 수 있는 수준입니까” 대답은 “식품으로는 절대 유통 불가능하다”였습니다. 차태규 청주동물원 수의사의 얘기입니다.
 
도살장 곳곳에 피와 부속물이 방치되어 있다 도살장 곳곳에 피와 부속물이 방치되어 있다

도축 시설 곳곳은 오물과 분뇨, 사체 부속물이 뒤섞였습니다. 개고기는 식품위생법 대상이 아닙니다. 따라서 개 도살장은 위생 검사를 받지 않습니다. 도축 작업자들은 위생 교육도 자격도 가진 게 없습니다. 그저 개를 들여오고 전기봉으로 지지고 가죽을 벗길 뿐입니다.

개 도살장은 구석구석 감염원 덩어리였습니다. 한 대형 돼지 농장 대표에게 도축장 사진과 영상을 보여줬습니다. 이 대표는 “이런 수준으로 시설을 운영하면 농장 문을 닫는 게 아니라 형사 처벌 위험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정도로 운영될 줄은 몰랐고, 솔직히 놀랐다”고도 했습니다. 가축을 매일 일정 두수 이상 도축하는 사람의 평가입니다.

개는 식품위생법이나 축산물위생관리법에 해당하는 축산물이 아닙니다. 그래서 완전한 사각지대입니다. 감시가 없는 곳은 온전히 이윤이 지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깨끗하게 규격에 맞추고 절차를 지키려면 돈이 들어갑니다.

 
도살한 개들의 털과 부속물이 방치되어 있다도살한 개들의 털과 부속물이 방치되어 있다

업자들이 극도로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개를 도살하는 건 당연한 자본주의 논리입니다. 개고기 시장이 줄어들면서 업자들의 이윤도 줄고 있습니다. 이윤이 줄면 생산 단가를 줄여야지요. 도살 환경이 앞으로 점점 더 열악해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개고기는 어떻게 생산되나

워낙 언론에 많이 노출된 장면입니다.

뜬장 위에서 분뇨 오물과 뒤섞인 채 자랍니다. 사료 대신 음식물 쓰레기를 먹습니다. 음식물 쓰레기의 수준은 천차만별입니다. 급여자가 정성이 있다면 한번 끓여서 먹입니다. 그것조차 귀찮으면 그대로 먹이로 줍니다.

 
뜬장에서 태어난 개들은 도살 직전에야 처음 땅을 밟아본다뜬장에서 태어난 개들은 도살 직전에야 처음 땅을 밟아본다

그대로 급여한 음식물 쓰레기 안에는 어떤 성분과 병원균이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불특정 많은 수 사람들의 침과 분비물이 뒤엉켜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썩어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또 다른 병원균이 배양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먹이를 다시 극도로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개에게 공급합니다. 눈으로만 관찰해도 개들 대부분 피부병과 각종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래도 1년은 키워야 고기로서 상품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항생제를 다량 투여합니다. 항생제나 약품 투여 규제가 없으니 '다량'의 수위도 알 수가 없습니다. 소 닭 돼지와의 차이점입니다.

 
개들은 음식물 쓰레기를 사료 대신 먹는다개들은 음식물 쓰레기를 사료 대신 먹는다

최태규 수의사는 “어떤 화학 물질을 얼마나 썼는지 도저히 검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고기로서 가치는 없다”고 설명합니다. “위험하다”고 까지 표현했다가 온전히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취소했습니다.

◇개고기 식용은 위험할 수 있을까

사스, 코로나19 같은 신종 전염병 기원을 예로 들겠습니다. 김혁민 연세대 진단검사과 교수는 “지구 상에 바이러스는 150만 종 정도인데 언제든 인간계로 들어올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인간이 자연계를 침범하고 이전에 만나지 않았던 바이러스와 접촉하는 상황이 생긴다”는 전제입니다.

 
중국 가축 시장에서 판매대에 고기가 진열되어 있다중국 가축 시장에서 판매대에 고기가 진열되어 있다

사스는 정확히 그런 환경에서 발생했습니다. 중국 남부 가축 시장에서 야생 동물과 가축의 피, 분뇨, 고기가 뒤섞였습니다. 피와 고기는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동안 바이러스는 뒤엉키고 변이했고 신종 전염병이 탄생했습니다.

한국에서 이런 환경과 가장 유사한 게 개 사육과 도살 과정입니다. 대부분 개농장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숲 가까이 있습니다. 야생 동물은 썩은 먹이가 널려 있는 개농장 주변을 어슬렁거립니다. 극히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개는 각종 질병에 시달립니다. 야생 동물과 개, 그리고 인간의 바이러스가 뒤섞일 최적의 조건입니다.

 
뜬장 속에 개 사체가 방치되어 있다뜬장 속에 개 사체가 방치되어 있다

이런 개를 다시 위생 규제가 전혀 없는 공간에서 도살합니다. 피와 살이 뒤섞이고 인간 대 인간으로 전해집니다. 인간 바이러스가 개에게 전파된 사례는 이미 다수 보고되어 있습니다. 실명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한 한 감염병 전문가는 “개 독감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염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언제든 어떤 질병이든 생길 수 있는 겁니다. 차태규 수의사가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허용할 수 있는 잔혹함은 어디까지인가

동물해방물결이 촬영한 영상을 보면 도살 이전부터 이후까지 전 과정이 호러 영화를 넘어서는 잔혹함의 연속입니다. 어떤 동물 도살이든 근원은 잔혹합니다. 실제로 '소, 닭, 돼지 도살도 마찬가지 아니냐'는 물음을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이 물음에 대한 제 대답은 “아니다. 분명한 차이가 있다”입니다.

개 도살장과 다른 가축 도살장에는 분명한 위생 수준 차이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도살 방법도 다른 가축에게는 최소한의 기준이 있습니다. 인간이 단백질 섭취를 위해 고기를 먹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생명을 뺏는 일에는 최소한의 존중이 필요합니다. 동종이 보지 않는 공간에서 한 마리씩 도살하고 고통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인간이면 그 정도는 하라고 법으로 정해놨습니다.

 
철창에 갇힌 개가 도살되기 전까지 다른 개 사체를 바라보고 있다철창에 갇힌 개가 도살되기 전까지 다른 개 사체를 바라보고 있다

개 도살장은 이런 법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공간입니다. 개들은 도살 이전, 블록처럼 이리저리 구겨진 채 철창에 갇혀 이동합니다. 움직일 공간은 물론 고개를 돌릴 작은 틈도 없습니다. 공산품을 쌓듯 생명체를 공간에 맞게 욱여넣었습니다. 필요 이상의 그로테스크한 행위이고 명백한 동물보호법 위반입니다. 상식의 문제입니다.

한 번에 몇 마리를 운송하느냐는 '경제성의 문제' 때문에 나온 모습일 겁니다. 기름값과 통행료, 인건비를 개의 고통과 맞바꿔 최소화한 거로 보입니다. 공간에 맞춰 밀어 넣은 몸뚱이는 기이하게 구부러지고 휘어집니다. 공간에 안 맞는 뼈는 부러졌습니다. 피부가 벗겨지고 상처가 터져 나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수준의 고통은 다른 도축 과정엔 없습니다.

 
도살 직전 개들이 철창 속에 구겨져 있다도살 직전 개들이 철창 속에 구겨져 있다

전기봉 사용은 지난해 대법원이 불법으로 판단했습니다. 도살업자들은 “전기봉 사용이 가장 고통을 적게 주는 방법”이라고 항변합니다. 어떤 방법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동물해방물결 영상을 보면 핵심은 전기봉 사용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개들은 끊임없이 다른 개의 사체와 도살 과정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개 사체 가죽을 벗기고 불에 그슬리는 과정을 가림막 하나 없이 노출했습니다. 같은 철창 안에서 한꺼번에 뒤엉킨 채 감전되고 서로 죽음을 지켜보며 발버둥 치는 모습도 포착됐습니다.

 
옆 철창에서 도살되는 개의 모습을 다른 개가 바라보고 있다. 옆 철창에서 도살되는 개의 모습을 다른 개가 바라보고 있다.

그 어떤 가축도 이런 도살 과정을 거치지는 않습니다. 역시 명백한 불법이고 다시 상식의 문제입니다.


◇인간은 포유류이면서 문명을 가진 존재다

인간은 포유류입니다. 포유류는 다른 동물을 잡아먹습니다. “모든 육식은 어차피 잔혹한 것 아니냐”는 말은 이런 지점에서 일면 맞습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먹는 건 괜찮고, 개고기만 문제 있다고 하는 건 편견 아니냐”는 말도 근원적으로 맞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른 포유류와 구별되는 특징을 가졌습니다. 문명을 가졌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인간 세계는 그저 서로 먹고 먹히는 야만의 공간일 겁니다. 포유류의 잔혹함과 야만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고문, 강간, 대량 살인도 그저 당연한 일이어야 합니다.

 
철창 속에 개들을 욱여넣어 기괴한 형태로 포개져 있다철창 속에 개들을 욱여넣어 기괴한 형태로 포개져 있다

문명은 다른 이의 고통에 공감하고 최소한의 윤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오랜 시간 인류는 이렇게 진화해 왔습니다. 우리 본능엔 포유류의 잔혹함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절제해 가는 과정이 바로 인간의 역사입니다.

먹을 동물이라서, 나보다 약자라서 함부로 잔혹할 수 있다면 우리도 상대적으로 강자에게 그런 취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잔혹함을 통제하지 않는 건 인간의 역사와 반대 지점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앞서 본 개 도살 과정이 문명에 적합하다고 느끼셨는지요”
자신 있게 “이 정도 잔혹한 수준은 괜찮아”라고 대답할 분이 있을까요.

 
철창 속에 가둔 개들을 마구잡이로 도살하고 있다. 철창 속에 가둔 개들을 마구잡이로 도살하고 있다.

◇마치면서… “나는 개식용 문화에 감사한다”

한반도는 산이 많고 초원이 적습니다. 가축 키우기 척박한 환경에서 우리 조상들은 일 년에 한·두 번 개고기 먹는 거로 단백질을 얻었습니다. 살기 위한 '필요조건'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살아남은 결과가 바로 우리입니다. 어찌 보면 개 식용 문화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단백질과 칼로리가 넘치는 세상입니다. 보신탕이 보신하지 않는다는 건 앞서 설명했습니다. 오히려 위험하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그럼 왜 먹어야 할까요. 이런 잔혹함과 고통, 비위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먹어야 할까요. 저는 이유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뜬장에서 자라던 개는 도살될 때야 처음 땅을 밟는다뜬장에서 자라던 개는 도살될 때야 처음 땅을 밟는다

오랜 기간, 도살장과 개고기 유통 과정을 추적한 '동물해방물결'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그 어떤 언론이나 조사 기관도 만들지 못한 자료를 남겼습니다.

지난 9일 새벽 3시 동물해방물결은 해당 도살장에서 도축 직전인 개 60여 마리를 구출해 격리 조치했습니다. 도살장 업주는 여주 시에 소유물 반환 신청을 한 상태입니다.

JTBC는 여주시의 결정을 지켜보겠습니다. 해당 도살장의 운영 형태도 앞으로 계속 관찰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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