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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지나도 죄책감"…방치되는 산재트라우마 골든타임

입력 2021-06-24 11:44 수정 2021-06-24 12:00

센터 관할 산재 사고 700건 중
트라우마 관리 제안은 단 9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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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관할 산재 사고 700건 중
트라우마 관리 제안은 단 99건

'시간이 다 해결해 준다'
산재 트라우마를 겪는 노동자들에게는 전혀 해당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몇 달이, 또 몇 년이 지나도 사고는 또렷이 남아 일상을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출처=JTBC 캡처〉〈출처=JTBC 캡처〉


만났던 노동자 5명 중 사고를 목격한 지 가장 오래됐지만, 고봉진 씨는 여전히 불안정한 모습이었습니다. 4년 전 일어난 사고를 말하는데도 내내 땀을 닦고, 손을 떨었습니다.

"부모님 돌아가시는 것도 보는데 왜 그걸 못 잊냐? 그렇게들 말하더라고요. 마음 강하게 먹어야겠다 하다가도 어느 순간 생각나서…4년이 지나도 가장 힘든 것은 죄책감입니다." (고봉진/ 2017년 10월 사고 목격자)

1년 전 작업 현장에서 동료를 구조한 박 모 씨는 그때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재해자는 3년 전 처음 회사에 왔을 때 적응하도록 도와준 친한 형이자 동료였습니다.

"저를 보면서 '나 좀 살려줘, 숨을 쉴 수 없어, 너무 힘들어…' 형의 그 눈빛도 계속 생각납니다. 이러다 나도 죽을 수 있겠구나…" (박 모 씨/ 2020년 4월 사고 목격자)

〈출처=고용노동부 직업적트라우마 관리 매뉴얼〉〈출처=고용노동부 직업적트라우마 관리 매뉴얼〉


전문가들은 사고 발생 후 7일에서 4주가 트라우마 예방의 골든타임이라고 말합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시기란 뜻입니다. 하지만 이 골든타임은 대부분 방치됩니다.

사고가 나면, 사고 수습 및 경위 조사, 책임자 규명 등의 과정이 이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목격자 등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은 자연스럽게 우선순위에서 밀립니다. 먼저, 목격했다는 이유로 경찰, 고용노동부 조사관 등 여러 기관에 사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사업장은 작업 중지된 현장을 수습해 하루라도 빨리 다시 공장을 운영하는 데 여념 없습니다. 이 사이 노동자들은 불면증, 불안 등 정신적인 고통에 맞닥뜨립니다. '내가 왜 이리 마음이 약하지?' 하며 덮어버리거나 '그 정도 쉬었으니 됐다. 현장 복귀하라'는 회사의 지시에 일터로 향하기도 합니다.

〈출처=JTBC 캡처〉〈출처=JTBC 캡처〉


산재 트라우마에 대해 사회가 관심을 갖게 된 건 최근입니다. 지난 2017년 31명의 사상자를 낸 삼성중공업 크레인 전도 사고를 계기로 '직업트라우마 센터'가 세워졌습니다. 2018년 대구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했고, 2020년에 8개, 2021년 현재 13곳으로 늘어났습니다.

운영은 잘 되고 있을까. 지난해 전국 센터 관할 지역 내 산재 사망사고는 696건 일어났습니다. 재해가 발생하면 고용노동부 조사관은 사업장에 '직업적 관리 프로그램에 대한 권고 및 실시유도'를 할 수 있습니다. 또 트라우마 센터는 사업장에 트라우마 관리 프로그램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센터가 사업장에 제안한 건수는 99건입니다. 발생한 사고 건수의 15%도 안 되는 수치입니다. 고용노동부는 이에 대해 "센터와 사업장 접근성과 실제 상담 가능 인원(보통 센터당 2명) 등을 고려해서 제안한다"면서 "인적인 부분 등 추후 확충해야 하는 필요성 있다"고 했습니다.

제안하면 받아들여지기는 하는 걸까. 99건 중 사업장의 동의를 받은 건 47건이었습니다. 사업장 절반 이상이 제안을 받아도 '희망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맹점은 트라우마 예방이 '권고'일 뿐이라는 겁니다. 사업주가 거부하면 진행할 방법이 없어요. 당장 심리치료 하려면 시간을 빼야 하는데, 사업주 협조가 필수죠."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 대표)

전문가들은 트라우마 예방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중대 재해 관리 매뉴얼 안에 트라우마 예방이 필수 요소로 들어가게끔 해야 한다는 겁니다. 작업 중지 명령 해제 요건에 트라우마 예방 및 관리를 넣는 것이 하나의 방법으로 제안하고 있습니다.

※자료 제공=강은미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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