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외안구단] '핵무력 완성' 그날…말없이 사라진 '로케트공업절'

입력 2021-11-30 17:54 수정 2021-11-30 17:58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JTBC 온라인 기사 [외안구단]에서는 외교와 안보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알찬 취재력을 발휘해 '뉴스의 맥(脈)'을 짚어드립니다.

어제(29일)는 북한의 '로케트공업절'이었습니다. 바로 4년 전 이날 이뤄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발사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당시 북한은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이 실현됐다"고 선언했습니다.
북한에서 발간된 2021년 달력 표지. 〈사진=통일부 북한자료센터〉북한에서 발간된 2021년 달력 표지. 〈사진=통일부 북한자료센터〉

북한은 올해부터 11월 29일을 '로케트공업절'로 기념하기로 했습니다. 지난해까지 없던 기념일이 올해 처음 생겼다는 사실은 중국에서 유통되는 북한 달력을 통해 지난 2월 알려졌습니다. 남·북·미 회담 국면이 지속되던 2018년과 2019년을 건너뛰고 2020년 검토 기간을 거친 뒤 비로소 올해부터 자신들의 '핵 무장' 날짜를 기념하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북한에서 발간된 2021년 북한 달력. 11월 29일에 로케트공업절이 올해 처음 지정됐다. 〈사진=통일부 북한자료센터〉북한에서 발간된 2021년 북한 달력. 11월 29일에 로케트공업절이 올해 처음 지정됐다. 〈사진=통일부 북한자료센터〉
■ 북한의 침묵 속 달력에서 없어진 '로케트공업절'

그런데 의아한 대목이 있습니다. 로케트공업절이 북한 입장에선 상당한 의미가 있는 기념일일 법도 한데, 관영매체 등은 단 한 번도 로케트공업절을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북한 주간지 통일신보 같은 선전매체가 “지금도 사람들은 공화국의 전략적 지위를 더 높이 올려 세운 4년 전의 11월 29일을 잊지 못하고 있다”며 화성-15형 발사에 의미 부여를 한 정도에 그칩니다. 때 맞춰 ICBM 시험발사 등 무력 시위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북한에서 발간된 2022년 달력 표지. 〈사진=본사 입수〉북한에서 발간된 2022년 달력 표지. 〈사진=본사 입수〉
북한이 최근 발간한 2022년도 달력을 보면 더욱 아리송합니다. 11월 29일이라는 날짜에 로케트공업절이 지워진 채 기존 기념일인 항공절(북한 항공대 창설일)만 적혀 있습니다. 이렇게 로케트공업절은 북한의 침묵 속에서 짧은 수명을 다하게 됐습니다.

북한에서 발간된 2022년 11월 달력. 11월 29일에 로케트공업절이 사라진 채 항공절만 남았다. 〈사진=본사 입수〉북한에서 발간된 2022년 11월 달력. 11월 29일에 로케트공업절이 사라진 채 항공절만 남았다. 〈사진=본사 입수〉
■ “로케트공업절로 '핵 운운'은 실익 없다 판단”

북한 입장에서는 로케트공업절이 기념일로서 실익이 크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북·미 탐색전이 이어지는 데다 내치와 자력갱생에 주력해야 하는 북한이 '핵 무력'을 운운하며 당장 판을 흔들 필요성은 적어 보이는 상황입니다.

이에 대해 정대진 한평정책연구소 평화센터장은 “로케트공업절이 대외적으로 핵과 미사일을 강조하는 호전적 성격의 기념일로 해석되는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북한이 대화의 군불을 지피면서 지금 상황을 관리하려고 로케트공업절의 의미를 일부러 축소했다는 것입니다.

■ “항공절과 겹쳐? 기념일 지정에 시간 들 수도”

북한 내부의 절차 문제를 이유로 꼽기도 합니다. 당 차원에서 이날을 기념일로 결정했지만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않아 일단은 기념일에서 뺐다는 추론입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당에서 기념일 지정으로 뜻을 모았더라도 소관 부처 회의를 거친 뒤 최고인민회의 추인 얻어야 한다”며 “이런 법적·제도적 절차를 밟는 데 시간이 더 필요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로케트공업절이 기존 항공절과 겹쳐 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확률도 있다고 봤습니다.

■ 로케트공업절 사라진 대신 '우주항공절'?

올해 로케트공업절에는 아무 일도 없었고, 비록 내년 달력에서도 사라졌지만 로케트공업절이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핵 개발은 경제 분야 등과 달리 김 위원장이 자신 있게 내세우는 치적입니다. 북한으로서는 얼마든지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의 2017년 11월 29일 시험발사 장면. 〈사진=조선중앙통신〉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의 2017년 11월 29일 시험발사 장면. 〈사진=조선중앙통신〉

이런 이유에서 로케트공업절이 항공절과 합쳐져 새로운 기념일로 지정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정대진 센터장은 “예컨대 '우주항공절'이라는 이름의 기념일로 새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주로 북한 핵과 미사일로 해석되는 '로케트'를 빼고, 우주의 평화적 사용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ICBM 발사가 이뤄진 이날을 기념하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입니다. 북한은 이미 인공위성 발사를 주장하며 비슷한 기술이 활용되는 ICBM 개발에 나선 전력이 있습니다.
광고

JTBC 핫클릭